충청논단
권혁두 국장(영동주재)
절묘한 한 수였다. 유권자들은 어느 한쪽에 승리를 안기는 대신 준엄한 명령을 내려 민심과 담쌓은 방자한 정치를 심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산술적으로는 대승을 거뒀지만 샴페인을 터트리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처참하리란 예상을 비껴가는 성적표를 받았으나 웃을 수 없었다. 민주당은 오만과 독주를 멈추고 겸허하라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의 잔재를 완전히 청산하고 당 재건에 나서라는 주문을 각각 받았다. 과연 두 당은 국민의 엄명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인가? 누군가 묻는다면 답은 `글쎄올시다' 이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한 유튜브 방송을 통해 “국민이 저와 생각이 비슷해 압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도 했다. 16개 광역단체 선거구 중 12곳에서 이겼으니 명백한 승리이다. 4년전 12대 5의 참패를 설욕하며 지방권력을 되찾았으니 압승이라 할 만도 하다. 하지만 내용과 추세를 살펴보면 이같은 자평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은 당운을 걸고 당력을 쏟아부은 대부분 격전지에서 패했다. 오세훈이 막판 역전극을 펼친 서울시장 선거 패배는 결정적이다. 부산 북구 보궐선거도 뼈아프다. 보수 진영에서 유력 후보 두명이 출마해 적진이 쪼개지는 호조건 속에서도 무소속 한동훈에게 패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출마해 진보의 진정한 적자를 가리는 선거구로 주목받았던 평택 을도 국민의힘이 어부지리를 누리는 허망한 결과로 끝났다. 더욱이 3곳에서 패한 정원오, 하정우, 김용남 모두 대통령이나 당 대표가 점지하거나 특별 지원했던 인물들이다. 당 내부에서 `사실상 진 선거‘라는 자탄이 나오는 이유이다.
국민의힘의 지리멸렬로 현격하게 기울었던 판세를 지키지 못한 과정도 민주당엔 두고두고 곱씹을 대목이다. 경북을 제외한 전 광역선거구 독식이 예고될 정도의 민주당 초강세 구도는 시간이 갈수록 흔들렸다. 서울에서 부동산 정책이 역풍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무엇보다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 해소를 겨냥한 조작기소 특검법 강행 탓이 컸다. 내란 단죄와 권력 균형 사이에서 고심하던 중도층의 견제 심리를 자극했다. 정 대표가 유권자의 진의를 제대로 읽었다면 자신과 유권자의 생각이 비슷했다고 우기지는 못할 것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에서 “모든 상황이 어려웠던 선거였으나 희망의 불씨를 지켜냈다”고 자평했다. 견고했던 지방정권을 4년만에 내준 정당의 대표라면 “책임지겠다”는 말부터 해야한다. 그가 보았다는 `희망의 불씨는‘ 당이나 그가 얻어낸 것이 아니라 보수 회생을 갈구하는 유권자들이 마지막으로 내려준 동아줄이다. 장 대표의 당권 유지에 필요한 명분을 지펴줄 불씨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번 지방선거의 승패를 가늠할 최대 승부처로 꼽혔던 서울시장 선거와 부산 북갑·평택 을 보궐선거에서 국힘이 극적으로 승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당선자의 면면을 볼 때 장 대표의 자찬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오세훈, 한동훈, 유의동은 모두 윤석열의 위헌적 계엄을 일관되게 부정하고 탄핵을 수긍했던 인물들이다. 다시 말해 윤 어게인 세력에 연연해온 장 대표 등 당권파와 각을 세우거나 노선을 달리했던 인물들이다.
대표적 보수 논객으로 꼽히는 조갑제씨는 페이스북에 “장동혁의 국힘은 졌지만 오세훈, 한동훈, 유의동이 대표하는 진짜 보수는 이겼다“고 썼다. 또 그들이 승리한 것은 “윤석열, 장동혁, 황교안과 손절하고 맨정신 국민들과 손잡은 덕분”이라고 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격전지에서 이긴 3명의 당선자야말로 백척간두에 섰던 당에 `희망의 불씨'를 선사한 주인공들이다. 이들이 친윤 세력과 야합하는 대신 민의를 좇는 독자 행보로 중도 유권자의 호응을 얻었다는 분석도 부인할 수 없다. 계엄과 친윤의 굴레를 떨쳐내지 못한 장 대표의 낯뜨거운 자찬은 공감을 얻기 어렵다.
제대로 된 처방은 정확한 진단에서 나오는 법이다. 당 대표들의 아전인수 식 진단에서 옳은 처방전이 나올 수는 없다. 이번 선거결과에 대한 양당의 깊은 성찰을 촉구한다. 유권자들이 이번에 유보한 심판은 2년뒤 총선에서 엄혹하게 내려질 것이다.
권혁두 국장(영동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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