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남원·목포·순천서 유치 열기 반복
많은 대학들, 서열·인지도 올라간다 믿어
정작 학생들에 쏟아야 할 교육·연구 방기
최훈 강원대 교수·삼척자유전공학부
지난해 세계인문학포럼 참석차 안동에 갔다가 놀란 적이 있다. 국립경국대(옛 안동대)가 의대 유치를 홍보하는 배너와 현수막이 시내 곳곳에 걸려 있었고, 홍보 굿즈까지 나눠주고 있었다. 2025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기간 동안 운영된 국립의대 유치 홍보부스에는 1만여 명이 참여해 서명 운동과 응원 메시지 작성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고 한다. 심지어 서울 광장에서 열리는 행사에서도 홍보 부스를 운영하며 수도권 시민을 대상으로 한 홍보 활동을 벌였다고 한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2017년 전북 남원의 서남대가 부실 운영으로 폐교 위기에 몰렸을 때, 놀랍게도 서울시립대가 이 대학의 의대를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남원에 있는 의대를 서울에 있는 대학이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목포대와 순천대가 통합 후 의과대학과 부속병원을 어느 캠퍼스에 둘 것이냐를 놓고 몇 달째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두 대학 모두 의대와 병원을 함께 논의하고는 있지만, 협상이 어려운 진짜 이유 중 하나는 정원이 정해진 의대라는 확실한 자산과 달리, 병원 건립비와 운영 적자를 누가 떠안을 것이냐는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한 국회의원은 대학들이 대학 병원보다 의대를 선호하는 배경에는 병원 건립비와 운영 적자를 대학과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해야 하는 재정 구조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동, 남원, 목포, 순천에서 반복되는 이 열기는 결국 같은 욕망을 가리킨다. 대학들은 의대가 있으면 대학의 서열과 인지도가 올라간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세계적인 명문 대학인 프린스턴이나 MIT에는 의대가 없다. 그렇다고 이 대학들의 명성이 흔들리는가? 전혀 아니다. 두 대학 모두 의대 없이도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력과 학문적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반대로 의대가 명문의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국내 반례도 있다. 앞서 말한 서남대는 의과대학을 가지고 있었지만 부실 운영과 재정난 끝에 2018년 폐교됐다. 의대라는 간판이 대학을 지켜주지도, 명성을 만들어주지도 못한 것이다. 서남대뿐만 아니라 의대가 있지만 정작 그 대학의 이름조차 낯선 경우도 적지 않다. 의대의 유무와 대학의 명성 사이에는 우리가 막연히 믿는 것만큼 강한 상관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학생들 역시 자신이 다니는 대학에 의대가 생기면 정말로 도움이 될지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의대가 다른 단과대학 학생들에게 손해가 될 가능성도 짚어봐야 하기 때문이다. 의대는 학생 수에 비해 교수진과 실습 시설에 들어가는 비용이 압도적으로 많다. 소수의 학생을 위해 값비싼 실습 장비와 전임 교수진을 유지해야 한다.
물론 서울의 유명 대학 병원은 흑자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방 대학병원 가운데 상당수는 재정 부담을 겪고 특히 신설 대학병원은 막대한 건립비와 초기 운영비가 필요하다. 이런 건립·초기 운영 부담이 교비 회계로 흘러들어가면, 그 시기 동안은 다른 단과대학의 예산, 도서관 확충, 장학금에 쓰일 재원을 끌어다 쓰는 구조가 될 수 있다. 의대 유치를 열망하는 대학의 다른 단과대 학생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비용을 나눠 부담해야 한다. 물론 의과 대학을 유치하려는 대학들이 대학의 서열과 인지도를 높이려고 한다고 대놓고 내세우지는 않는다.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은 지역 의료 불균형 해소다. 그러나 지역에 병원이 필요하면 공공 병원 확충을 촉진해야 하고, 의사 인력이 부족하다면 공공 의료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고민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대학들이 있는 지역의 이른바 ‘거점 대학’에는 이미 의과 대학이 있으니, 부속 병원을 추가로 설립하거나 지역 정착 의무를 조건으로 한 선발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시간이나 재정 면에서 훨씬 효율적이다.
대학의 인지도를 높이는 길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좋은 연구를 하고,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그 성과가 쌓여서 명성이 되는 것이다. 프린스턴과 MIT가 증명하듯, 이 길에는 지름길이 없다. 서남대의 사례가 보여주듯, 의대라는 간판만으로는 그 길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많은 대학이 의대 설립이라는, 보장되지도 않고 검증되지도 않는 방편에 기대려 한다. 이 열기가 지역과 대학 사이에서 반복될수록, 정작 그 대학에 다니는 다수의 학생들에게 쏟아야 하는 교육과 연구는 방기되고 명분으로 내세우는 지역 의료 서비스는 늦춰지는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한다.
/최훈 강원대 교수·삼척자유전공학부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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