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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추천 과잉 시대

신뢰할 수 없는 막대한 양의 AI 활용 신간이 전자책 또는 종이책으로 매일 쏟아지고, 지도 위에 표시된 맛집은 무한대로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독후감이나 후기 콘텐츠를 찾아보지만, 아무리 스크롤을 내려도 정보의 끝은...

추천 과잉 시대

디자인 배정진

요즘은 누구의 추천이냐에 따라 제품의 운명이 뒤바뀐다. 박정민이 추천사를 쓰면 베스트셀러가 보장되고, 안성재 추천이라는 말 한마디가 있으면 허름한 음식점 앞에도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나의 선택에 앞서 누군가의 추천이 구매 결정에 영향을 주는 시대가 온 것이다. 우리는 왜 남의 평가를 중시하는가?

천선란의 책 표지. 사진 교보문고

성해나의 책 표지 사진 교보문고

# 선택을 결정짓는 추천사

지난 여름, 서점가에서 큰 화제를 일으킨 책이 성해나의 소설 《혼모노》이다.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라고 띠지에 적힌 배우 박정민의 문장은 단번에 그 책을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려 놓았다.

천선란의 소설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가 8쇄를 발행해 5만 부를 판매한 것도 박정민의 추천사 효과라고 한다. 신뢰감 주는 추천자의 이름이 있으면 저자가 누구든 사람들은 사서 읽으려 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책의 경우, 최재천이나 정재승 교수가 추천인 명단에 들어 있으면 대중의 교양서로 금방 알려진다. 누구의 추천이 판매에 영향을 주는 시대이다.

출판사 대표로 활동하는 배우 박정민. 사진 출판사 무제 홈페이지

이런 현상은 출판계에 국한하지 않는다. 유명 셀럽의 추천은 모든 영역에서 동일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흑백요리사2’ 심사위원 안성재가 방문한 식당은 그냥 맛집이 아니라 가볼 만한 이유가 검증된 ‘신뢰의 장소’로 변한다.

패션과 뷰티, 교육과 자기계발 시장, 헬스 및 의료 웰니스, 테크 및 전자 기기, 금융과 투자 영역에서도 유명인의 추천 파워는 여전히 막강하다. 소비자인 우리는 제시한 선택지 중에서 뭔가 고르는 일을 할 뿐이다.

셰프 안성재의 음식 평가는 맛의 기준이 되고 있다. 사진 출처 넷플릭스

# 선택지 많은 지금, 추천의 명과 암

우리가 추천자에게 선택을 위임하는 데엔 나름 이유가 있다. 신뢰할 수 없는 막대한 양의 AI 활용 신간이 전자책 또는 종이책으로 매일 쏟아지고, 지도 위에 표시된 맛집은 무한대로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독후감이나 후기 콘텐츠를 찾아보지만, 아무리 스크롤을 내려도 정보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너무 많은 선택지 앞에서 우리는 지치고 만다. 심리학은 이를 두고 ‘결정 피로(decision fatigue)’라고 부른다. 결정할 것이 많을수록 우리는 판단을 포기하고, 믿을 만한 누군가의 판단에 의지하려 한다.

그때 추천은 그 피로를 대신 짊어지는 안전 장치이다. “이건 믿어도 돼.” 유명 연예인이나 전문가의 추천은 보증서처럼 다가온다.

모든 사물에 장단점이 있듯이, 추천 역시 명과 암이 존재한다. 추천은 내가 알지 못했던 책, 가 보지 않았던 장소, 생각하지 않았던 관점을 알려준다. 그런 면에서 추천을 잘 활용하면 미지의 영역으로 건너가는 새로운 다리를 만날 수 있다. 좋은 추천은 나의 세계를 더 확장시켜주기도 한다.

반면에, 추천을 맹신하면 모두가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식당에 가고, 같은 말을 한다. 개인의 취향은 빈약해지고, 세상은 균일해진다.

인플루언서로 영향력을 가진 최재천 교수.사진 최재천 인스타그램

그의 추천이 들어간 책. 사진 예스24

# 그럼에도 왜 추천에 의지하는가

그 이유는 단순하다. 틀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좋지 않은 책을 골랐다는 사실보다, 맛없는 식당을 선택했다는 사실보다, 잘못된 판단을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더 두려워한다.

이에 비해, 추천은 실패의 책임을 공동 분담해준다.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 골랐으니까.” 하며 따라 가면 결국 자유의 확장이 아닌 자유의 포기 상태를 맞이한다.

그래서 “이걸 OOO가 추천했대!”로 끝내면 안된다.

“그는 이래서 좋다고 했는데 내 생각은 어떻지?”

누군가의 추천으로 선택을 했으나, 끝은 자기 언어로 마무리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추천을 읽고,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추천을 먹고,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추천을 소비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그래도 명백한 사실은, 추천이 우리의 사고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추천 때문에, 내가 사고해서 얻은 관점이 어디론가 휘발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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