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오후 2시경 삼성전자 경기 평택 캠퍼스 인근에서 열린 노동조합의 대규모 투쟁 결의대회에 참석한 노조원들이 자리에 앉아 깃발을 흔들고 있다. [사진=최문수 기자]
[뉴시안 = 최문수 기자] 국내 산업계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부터 촉발된 ‘영업이익 기반 성과급’ 요구의 거센 후폭풍에 직면했다.
삼성전자 노동조합(이하 노조)이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요구하며 초강수를 두자, 주요 IT 기업 카카오에서도 노조가 영업이익 10% 안팎을 요구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전방위적인 압박이 가해지고 있는 모양새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주도권 경쟁을 위해 막대한 연구개발(R&D) 투자가 시급한 상황에서, 노사 갈등이 기업의 미래 생존을 흔드는 최대 변수로 부상하고 있어 업계의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 노조는 최근 사측과의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다. 카카오 본사 창사 이래 첫 파업 위기인데, 이번 조정에는 카카오페이,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등 주요 계열사 4곳이 공동 전선을 구축했다.
카카오 노조는 삼성전자 노조와 같이 영업이익의 10%에서 15% 수준을 성과급 재원으로 명문화할 걸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이와 관련해서는 카카오 사측과 노조 모두 매우 신중한 입장이다.
노조 관계자는 “출처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단 한 번도 교섭 요구안이나 최종 합의된 내용을 공개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공개할 계획이 없다”라고 했다.
회사 관계자 역시 “노조와의 대화 창구를 항상 열어두고 원만한 합의를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 같은 현상은 삼성전자 노조가 쏘아 올린 ‘영업이익 15%’라는 숫자가 산업계 전반의 새로운 가이드라인으로 고착화된 결과라는 얘기가 나온다.
노조는 이미 SK하이닉스보다 높은 수준의 성과를 요구하며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인 가운데,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반도체 부문에서만 수조 원대의 적자를 기록했는데도 불구하고, 노조는 실적 회복기에 접어들자마자 과거의 보상 체계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배분을 요구하고 있다.
카카오와 삼성전자는 파업 절차를 밟으며 경영 불확실성이 극에 달하고 있다. 카카오 노조는 오는 18일 조정 합의에 실패할 경우 파업권을 확보하게 되고, 오는 20일에는 판교역 광장에서 대규모 결의대회도 예정돼 있다.
일각에서는 카카오톡 등 국민적 서비스의 운영 및 유지 보수 차질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삼성전자 역시 노조의 요구안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 반도체 생산 라인 가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단체 행동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 긴장감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재계와 시장 전문가들의 시각은 엇비슷하다. 기계적 성과급 요구가 기업의 장기적 생존 역량을 근본적으로 갉아먹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기업이 거둔 이익은 주주 환원과 더불어 차세대 기술 확보를 위한 신사업 투자금으로 유보돼야 하는 ‘종잣돈’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특히, AI 시대의 주도권 싸움은 수조 원단위의 설비 투자와 천문학적인 R&D 비용을 필요로 하기에, 이를 당장의 성과급으로 소진한다면 글로벌 경쟁사들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변화의 속도에서 도태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주주들의 시선도 싸늘하다.
삼성전자와 카카오 주주들은 실적 부진과 주가 정체로 인해 이미 장기간 고통을 감내한 데다가, 주가 회복이 요원한 상황에서 노조가 기업 이익의 상당 부분을 우선적으로 점유하겠다는 건 주주 가치를 정면으로 훼손하는 행위라는 비판이 거세다.
IT 업계는 이번 카카오와 삼성전자의 협상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여기서 확정되는 보상 기준이 넥슨, 엔씨소프트 등 대형 게임사와 중견 IT 기업들의 차기 협상에 도미노식 영향을 미칠 거라는 가능성이 있어서다.
인건비 급증에 의한 임금 인플레이션은 결국 한국 산업 전반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고착화하고, 글로벌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승자의 저주’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도 확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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