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 이태영 기자]올해 일본 경제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 지난 2월 총선에서 집권 자민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며 출범한 다카이치 2기 내각은 이른바 ‘사나에노믹스’를 본격 추진할 정치적 동력을 확보했다. 공격적인 재정 확대를 통해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물가 상승과 임금 상승의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사나에노믹스는 일본 총리인 다카이치 사나에가 추진하는 경제정책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일 일본 도쿄의 우주 스타트업 아스트로스케일 홀딩스를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있다. [도쿄=AP/뉴시스]
나라경제 4월호에 게재된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해외 총생산 투자 규모는 122조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단순한 자본 유출이 아니라, 공급망 재편과 첨단 산업 주도권 확보를 겨냥한 전략적 투자로 해석된다. 특히 투자 목적에서 ‘경제·기술 협력’이 88.8%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공급망 안정(80%), 첨단 산업 경쟁력 강화(78%)가 뒤를 이으며 일본 경제 정책의 중심축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사나에노믹스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정부 재정을 기반으로 반도체·배터리·첨단소재 등 전략 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이를 통해 기업 수익과 임금 상승을 동시에 견인하겠다는 구상이다. 실제로 반도체 산업에서는 투자 증가율이 두 자릿수를 기록하며 정책 효과가 가시화되는 모습이다. 일본이 강점을 지닌 소재·부품·장비 분야를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 내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금융 환경 역시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한다. 엔화 약세가 장기화되면서 해외 투자 매력도가 높아졌고, 이는 일본 자본의 대외 확장을 구조적 흐름으로 굳히고 있다. 기업 수익성 개선과 경상수지 회복세도 투자 여력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역별 투자 흐름을 보면 북미와 아시아에 대한 집중도가 두드러진다. 미국과의 기술 동맹 강화, 동남아 생산기지 확대 등은 사나에노믹스가 단순한 내수 부양을 넘어 글로벌 경제권 재편까지 염두에 둔 전략임을 시사한다. 반면 유럽은 친환경·에너지 분야 중심의 선별적 접근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성과 측면에서는 아직 과제가 남아 있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6% 수준에 머물러 대규모 투자에 비해 체감 성과는 제한적이다. 반도체 등 핵심 산업에서의 해외 의존도, 지정학적 리스크 역시 부담 요인으로 지목된다.
주목할 점은 일본 내부의 기대 심리다. 현재 경제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비율은 39%에 그쳤지만, 향후 전망에 대해서는 64%가 낙관적으로 응답했다. 이는 사나에노믹스에 대한 정책 기대감이 시장에 반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경제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일본이 첨단 산업과 공급망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경우, 반도체·배터리 등 핵심 산업에서 한일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기술 협력과 공급망 연계 측면에서는 새로운 기회도 열릴 수 있다.
결국 사나에노믹스는 일본 경제의 ‘재부상’을 겨냥한 종합 전략이자, 동아시아 산업 지형을 흔들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공격적 재정과 전략적 투자로 무장한 일본이 글로벌 경제 질서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게 될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일 경제 관계가 경쟁과 협력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게 될지 주목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