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일하느냐”보다 “어떻게 일하느냐”
-생산성 혁신, 주 4.5일제 논의, 현장 실험까지
-한국 사회에 던져진 질문…‘덜 일하고 잘 사는 법’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전경 [사진=고용노동부]
AI 시대, 반복 업무를 덜어내고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기술이 확산하면서 AI가 만들어낸 효율의 이익이 과연 노동시간 단축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장시간 노동에 익숙했던 한국 사회에서 주 4.5일제 논의가 다시 힘을 얻는 배경에는, 기술이 앞당긴 변화와 그 과실을 둘러싼 갈등이 놓여 있다.
김동연 전 경기도지사 / 알티케이뉴스 DB
최근 경기도의 주 4.5일제 시범사업 결과는 노동시간 단축 논의에 강한 동력을 제공했다. 경기도는 1년간 시범사업 분석 결과를 토대로 노동시간이 주당 4.7시간 줄어 연간 약 240시간 단축 가능성을 보였고, 노동생산성은 2.1% 상승했으며 이직률은 22.8%에서 17.4%로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채용경쟁률은 10.3대 1에서 17.7대 1로 뛰며 중소기업난 구인난 해소에도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주 4.5일제 시범사업 효과분석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1년간 효과를 분석한 결과 직원 삶의 만족도는 높아졌고 기업 매출과 고객만족도도 확대됐다”고 밝혔다.
주당 노동시간은 줄어 근로자의 스트레스 지수가 개선됐으나,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업무량 증가 체감 등 과제도 확인돼 직무 프로세스 재설계 필요성이 함께 제기됐다.
주 4.5일제가 실험에서 제도로 옮겨지게 되면 쟁점은 훨씬 더 복잡해진다. 임금은 유지할 수 있는지, 업종별 격차는 어떻게 메울 것인지, 중소기업과 교대제 현장은 어떤 방식으로 전환할 것인지 등이다.
정치권도 이 문제를 단순한 노사 갈등으로 보지 않는다. 경사노위와 국회 사회적 대화가 동시에 움직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국회 사회적 대화에서 여야와 경제·노동단체는 AI 시대의 경쟁력과 노동 약자 보호를 함께 논의했고, 국회와 경사노위의 투트랙 사회적 대화가 병행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 대통령실 사진 제공
지난 3월 19일 출범한 이재명 정부 제1기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와 일자리’를 첫 공식 의제로 채택하고 산업현장의 AI 도입에 따른 고용 불안 해소, 신규 일자리 창출, 기술 도입에 따른 노사 상생 방안을 다루기로 했다.
경사노위는 공론화 기법을 도입해 해법을 단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하는 과정으로 가겠다고 밝혔다. 이는 AI 전환을 정부와 기업의 일방적 발표가 아닌 사회적 합의의 과정으로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의 길은 아직 멀다. 국회와 경제계, 노동계가 참여한 사회적 대화에서는 지난 17개월간 54차례 회의를 거치며 AI와 플랫폼 노동자 보호를 함께 논의했다. 그러나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플랫폼 노동자 관련 산업재해보험 적용 확대 등 잠정적으로 합의했지만, AI 등 첨단산업 경쟁력 관련 의제에 있어 일부 노동계에서 동의하지 않아 공동합의문이 최종 채택되지 못했다.
경영계는 AI를 통한 생산성 향상 없이는 근로 시간 단축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고, 노동계는 AI가 높인 생산성의 과실을 노동시간 단축과 삶의 질 개선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맞선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 알티케이뉴스 DB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AI가 이미 기업 생산을 좌우할 정도로 일상에 들어와 있다며 혁신 의제의 속도감 있는 논의를 주문했고,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산업전환이 가져오는 노동시장 문제에 노사가 공동 대응하고 사회안전망을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은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에 나서기까지 많은 고민과 어려움이 있었다”며 “대표하는 영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해, 더더욱 대화 필요성 강조된다”고 밝혔다. 양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의 마무리가 아니라 관련 법의 통과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숙의의 장으로 발전해 나갈 것을 믿는다”고 덧붙였다.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 / 알티케이뉴스 DB
지난달 19일 국가AI전략위원회 릴레이 간담회 종합 토의에서는 AI 전환에 따른 고용 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직무 재설계와 사회안전망 확충, 전환 훈련 체계 정비를 하나의 패키지로 설계해야 한다는 점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3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열린 ‘AI 로봇과 노동의 미래: 공존인가, 종말인가?’ 토론회에서 한국노총 측은 이미 현행 ‘근로자 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이 새로운 기계·기술 도입과 공정 개선을 협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만큼, AI와 로봇 역시 도입 전부터 노사 공동 영향평가와 전환 배치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민우 한국노총 정책1본부 국장은 산업 내 AI 도입으로 노동 시장엔 △자동화를 통한 일자리 소멸 △고숙련·비정형 업무 대체 △AI 활용을 포함한 직무 교육 필요성 증대 등 변화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반면 경영계는 AI·로봇 도입으로 대체된 인력을 빠르게 새 직무로 옮길 수 있는 통로와 유연한 재배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맞섰다.
김동희 한국경영자총협회 근로기준정책팀 팀장은 AI·로봇 도입으로 대체된 인력을 빠르게 재배치할 수 있도록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희 팀장은 “AI 시대에 맞춰 기업도 인력을 재배치해야 하지만 한국 노동 시장은 고용 경직성이 높다. 기술이 인력을 대체할 무렵엔 직무 이동이 빠르게 이뤄질 수 있도록 새 직무로 이동할 통로를 열어주되, 노동 시장 전체로 봤을 땐 고용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며 “대신 적응력을 높일 수 있도록 기업이 정부와 협력해 직무 전환 프로그램을 구축하고, 중장년층이나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맞춤형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 이상임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총괄과장은 “AI 도입은 인력 재배치, 직무 재교육, 임금체계 개편 등 노동시장 전반의 재설계를 요구한다”며 “두려움보다 전환 대응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AI를 단순한 자동화 도구로 보지 말고 직무 구조를 바꾸는 전환기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상욱 한양대 교수는 AI 전환이 일자리 총량 감소보다 직능 변화와 재훈련 부담으로 더 크게 나타날 수 있으며, 청년이 전문가로 성장할 기회 자체가 줄어드는 탈숙련화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식 대규모 해고보다는 한국에서는 신규 채용 축소와 업무 재편이 먼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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