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민준 청주흥덕경찰서 청소년보호계 경사
“용돈 벌이로 계좌 하나만 빌려달라”는 친구의 부탁, “며칠만 아이디 빌려주면 몇만 원 준다”는 SNS 메시지.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이 한마디가 청소년을 전자금융사기의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동시에 만들고 있다.
최근 경기북부경찰청이 검거한 중고거래 사기 조직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텔레그램에 이른바 ‘매입방’을 만들어 청소년 명의 중고거래 계정을 1만~2만 원에서 많게는 수십만 원에 사들였다. 거래가 많아 신뢰도가 높은 계정일수록 더 비싸게 거래됐다. 검거된 42명 중 절반가량이 10대였고, 계정을 확보하기 위해 학교 친구를 협박하거나 폭력을 쓰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렇게 확보한 계정으로 벌인 중고거래 사기의 피해자만 1,400여 명, 피해액은 67억 원에 달했다.
대포통장 명의 대여도 심각하다. 최근 적발된 한 자금세탁 조직은 대포통장 107개를 이용해 약 5,062억 원의 범죄수익을 세탁했는데, 통장 명의를 넘긴 사람이 160명에 이르렀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통장 모집·관리, 입금 확인, 자금 이체, 현금 인출 등 역할을 나누고 텔레그램으로 지시·보고하며 조직적으로 움직인 것으로 드러났다. “월 150만 원을 주겠다”는 식의 소액 대가에 넘어가 통장이나 체크카드를 빌려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고수익 아르바이트’ 미끼도 흔한 수법이다. “일은 쉬운데 시급은 높다”는 구인 광고에 속아 지원했다가, 다른 사람 돈을 대신 인출·전달하라는 지시를 받고서야 자신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인출책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사례가 반복된다.
한 고교생은 팬미팅 티켓 판매를 사칭해 37명으로부터 1,230만 원을 편취해 검거되기도 했다.
문제는 청소년 스스로 “심부름 몇 번 해준 것뿐”이라고 여긴다는 점이다. 그러나 계정이나 통장 명의를 단순히 빌려주거나 전달만 해도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한 번의 판단 착오가 평생 남는 전과와 무거운 책임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초기 대응’이다. 경찰청은 지난 2월부터 보이스피싱·스미싱 등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 신고번호로 국번 없이 ‘1394’를 운영하고 있다. 1394는 ‘일상(13)을 구(9)하는 사(4)람들’이라는 의미를 담은 번호로, 365일 24시간 피해 상담은 물론 의심스러운 전화번호·사이트 제보, 관계기관 연계까지 한 번에 지원한다. 계정이나 통장 명의를 빌려달라는 수상한 연락을 받았다면, 응하기 전에 먼저 1394로 문의하면 된다. 이미 피해가 발생중인 긴급 상황이라면 112로, 피해 우려가 있는 의심 상황이라면 1394로 나누어 기억해두면 좋다.
결국 핵심은 단순하다. 의심스러운 전화나 메시지를 받았을 때 망설이지 않고 바로 끊는 것, 그리고 궁금하거나 불안하면 곧장 확인하는 것이다. 충북경찰청이 강조하는 “어서끊자!”라는 말처럼, 의심스러운 전화는 어서 끊는 것이 가장 확실한 예방이다. 학교와 가정, 경찰이 함께 1394 번호를 알리고 반복해서 안내할 때, 청소년들도 위험한 순간 스스로 전화를 끊고 신고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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