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공개된 스페이스X의 기업공개(IPO) 신고서(S-1)에는 화성이라는 단어가 63번 나온다. 우주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짓고 달과 화성에 산업기지를 세우겠다는 구상이 담겼다. 장밋빛 청사진만 담긴 건 아니다.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스타십 시험 발사의 연쇄 폭발 리스크, 심지어 일론 머스크라는 창업자 자체가 위험 요인이라는 고백까지 담았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하는 IPO 신고서는 투자자가 기업의 가능성과 위험을 함께 판단하기 위한 법적 문서다. 잘 포장된 재무 수치로 채워지기 마련이지만 빅테크는 다르다. 수십 쪽에 달하는 ‘위험 요인(Risk Factors)’ 섹션에서는 천문학적 액수의 투자 부담과 불확실성, 실패 가능성까지 가감 없이 드러난다. 2017년 상장된 소셜미디어 기업 스냅은 영영 이익을 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썼고, 2019년 우버도 흑자 전환을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26일(현지시간) 공개된 앤트로픽의 신고서는 더 충격적이다. 300쪽이 넘는 문서 중 92쪽을 위험 요인에 할애했다. AI가 통제를 벗어나 인류에게 실존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으며, 화학·생물학 무기 개발에 악용될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까지 가감 없이 담았다.
재무 수치는 더 충격적이다. 상반기 매출 163억달러를 올리는 동안 장부상 순손실이 807억달러(약 112조원)에 달했다. 미래에 지급할 청구서는 상상을 초월한다. 10년간 컴퓨팅 자원에 지출하기로 한 금액만 8000억달러(약 1060조원)에 이른다. 실패하면 거대한 파국을 맞을 수 있다고 적시했다. 창업자들은 “무책임할 정도로 커 보일 수 있다”면서도 “무모하지만 합리적”이라고 했다. 동시에 상장 후 의결권 50.1%를 사수하며 ‘인류를 위한 최고 가치’라는 비전을 고수하겠다고 선언했다.
빅테크의 IPO 신고서는 “이렇게 해서 돈을 잘 번다”를 보여주는 문서가 아니다. 인류의 거대한 꿈에 동참하게 만드는 강력한 ‘비전 서사시’에 가깝다. 이것이 실리콘밸리가 자본시장에 미래를 약속하는 방식이다.
이심기 수석논설위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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