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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천수답’ 꼬리표 자른 박현주와 김남구 [편집장 레터]

박 회장은 AI(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전통 자산과 디지털 자산의 융합을 시도합니다. 김 회장은 일본 노무라를 넘어선 아시아 대표 투자은행을 꿈꾸죠. ‘2026년 금융 CEO’에서 두각을 나타낸 두 리더에게 축하와...

‘천수답’ 꼬리표 자른 박현주와 김남구 [편집장 레터]

2006년 여름, 저는 미래에셋자산운용 A팀장과 인도 뭄바이에 갔습니다. 당시 인도는 중국과 함께 친디아(Chindia)라고 불리며 칭송받았죠. 아니 인도인들은 인도를 먼저 앞세워 인디나(Indina)라고 부를 만큼 자신감에 차 있었습니다. 11억명 인구를 자랑하는 거대 시장, 인도 경제를 살펴보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솔직히 제 눈에 인도는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인도인이 명석하다고 알려졌지만 특유의 신분 제도가 경쟁력을 갉아먹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예스’인지 ‘노’인지 알 수 없는 고갯짓도 마뜩지 않았죠. 인도 최고 경제 도시라는 뭄바이 거리가 지저분한 것마저 싫었고요. 이래저래 당시만 해도 제가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미숙했던 것 같습니다.

글로벌 무대서 초라했던 ‘우물 안 개구리’ 韓 자본 시장

독립계 금융사 두 리더가 해외 개척하고 IB 실력 키워

하지만 저의 ‘소시민(小市民) 마인드’와 달리,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멀리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취재를 다녀오고 몇 달 뒤, 저와 열심히 뭄바이 현장 조사를 다녔던 30대 A팀장이 뭄바이 법인장으로 발령 났습니다. A팀장은 귀국하자마자 10페이지 안팎의 간략한 출장 보고서를 올렸는데, 박 회장은 단박에 법인 설립 중책을 맡겼습니다. 20년 전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인도 진출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A팀장은 적잖이 고생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현지 직원을 채용하고, 생소한 현지 법규를 익혀가며 법인을 세웠죠. 그 결과, 2008년 미래에셋은 인도 내 유일한 독립 외국 자본 운용사로 1호 펀드를 선보였습니다. 은행이나 재벌 계열 금융사가 못한 일을 미래에셋이 해낸 겁니다.

이후 미래에셋은 거침없이 해외 영토를 뚫었습니다. A팀장은 인도 개척 이후 두바이, 미국, 캐나다 법인 설립까지 관여했습니다. 당연히 창업주인 박 회장의 적극적인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2026년 미래에셋그룹은 19개 지역에서 52개 해외법인·사무소를 운영 중입니다. 1997년 자본금 100억원으로 출범한 미래에셋의 고객자산은 1000조원을 넘어셨죠. 박 회장의 국경 없는 투자 덕분에 한국 자본 시장은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났습니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 역시 한국 증시에 따라붙는 ‘천수답(天水畓)’ 꼬리표를 잘라버린 인물입니다. 국내 증권사는 과거 매매 수수료에 매달렸습니다. 시황이 좋으면 돈을 벌고 거래가 없는 박스권에선 수익이 줄어드는 구조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김 회장은 이를 완전히 바꿨습니다. 자기자본금을 늘려 적극적으로 투자은행(IB) 역할을 감당했고, 개인이나 기관투자가의 거래 수수료(브로커리지) 비중을 낮췄습니다. 자기자본을 적극적으로 운용하며 수익을 챙겼고요.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국내 증권사 가운데 처음으로 영업이익과 순이익 모두 2조원을 넘어섰습니다. 10년 만에 수익이 10배 늘어난 겁니다.

독립계 금융사 오너인 이들의 기업가 정신은 진행형입니다. 박 회장은 AI(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전통 자산과 디지털 자산의 융합을 시도합니다. 김 회장은 일본 노무라를 넘어선 아시아 대표 투자은행을 꿈꾸죠. ‘2026년 금융 CEO’에서 두각을 나타낸 두 리더에게 축하와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명순영 편집장·경영학 박사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2호(2026.03.25~03.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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