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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차용범 칼럼] '현인(賢人)' 버핏은 왜, '애플' 팔고 'NYT'를 샀을까?

경영진은 "인공지능(AI)이 당장 NYT를 대체하지는 않을 것"으로 장담했다. 전통언론의 침체 속 NYT는 독보적... 버핏의 NYT 투자는 AI 시대의 통찰을 담고 있다. 정보의 과잉 속 저질 콘텐츠가 쏟아질수록, "누가 검증했는가...

[차용범 칼럼] '현인(賢人)' 버핏은 왜, '애플' 팔고 'NYT'를 샀을까?

‘세계적으로, 신문의 권위와 위상은 추락 중이다’, 이 명제는 현실이다. 신문산업은 오늘 단순한 수익성 악화 단계를 넘어, 존재의 근간이라 할 신뢰와 영향력에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한국의 종이신문 열독률은 지속적 하락세 끝에 2025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 종이신문 열독률은 8.4%, 10년 전 25.4%의 1/3 정도다(한국언론재단). 종이신문의 열독시간 역시 계속 줄고 있다.

그동안 종이신문 열독률이 느슨하게 감소한 것은 50대~70대 연령층의 충성 독자층 덕분이다. 그러나 이제 50대의 이탈이 뚜렷하다. 2025년 50대의 열독률은 10.4%, 2024년 대비 4.9%p 감소했다. 세계적으로, 전통적 언론매체(신문·TV)의 신뢰도 역시 30% 아래로 하락, 역대 최저치다(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과거, 신문은 '무엇이 중요한 뉴스인가'를 결정할 독점적 권한(게이트키핑)을 가졌다면, 지금은 그 주도권을 거의 상실했다.

신문은 저널리즘의 위상 저하 속 경제적 가치 상실까지 겪고 있다. 구글·메타 같은 빅테크가 광고시장을 독식하며, 신문사의 수익 모델은 무너졌다. 그 뿐인가. 격렬한 정치적 양극화 흐름 속, 신문은 수익을 위해 정파성을 띄거나 ‘낚시성’ 기사에 기대며, 권위 있는 '공론장'의 위상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2025년 저널리즘, 미디어, 그리고 기술의 경향과 전망’, 신문과방송 2025-3).

그럼에도, 모든 신문이 몰락하는 것은 아니다. 신문의 위기가 깊어질수록 뉴욕타임스(NYT)나 월스트리트저널(WSJ)처럼 강력한 권위를 가진 매체들은 '유료구독 모델'을 통해 살아남고 있다. "가짜 뉴스가 범람할수록, 비용을 내서라도 검증된 정보를 보겠다"는 고관여 독자층이 많아지면서, 신문산업 전반의 위상 하락과 상위 1% 브랜드의 권위 유지라는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1. ‘오마하의 현인(賢人)’ 워런 버핏은 최근 버크셔 해서웨이 CEO에서 물러나며, 뉴욕타임즈(NYT) 주식 510만 주(지분가치 5100억 원)를 매입했다. 애플ㆍ아마존 같은 핵심 기술주 지분을 줄이면서다. 그날, NYT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제전문지 ‘블룸버그’는 이를 두고 “평생 신문에 매료당해 온 억만장자의 향수와 자신감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버핏은 스스로 “신문 중독자”라고 부르며 종이매체에 각별한 애정을 밝히곤 했다.

그는 매일 5~6시간씩 여러 신문을 읽으며 “지식이 복리(複利)처럼 쌓인다”고 했다. ‘복리’처럼 쌓인 지혜는 그 투자 철학의 바탕이다. 그의 ‘신문 사랑’은 취향을 넘어 사업으로 이어졌다. 10대 시절 워싱턴포스트(WP)를 배달한 인연에, 한때 수십 개 지역신문을 포함한 미디어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그는 온라인 서비스 시대에 들며, “대부분의 신문 산업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다만 “전국적 브랜드와 강력한 디지털 모델을 갖춘 NYTㆍWSJㆍWP 등은 살아남을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전통언론의 침체 속에서, NYT는 충성 독자를 기반으로 특출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4분기 디지털 신규 구독 45만 명을 추가, 구독자 수 1,200만 명을 돌파했다. 뉴스 외에 온라인 게임ㆍ요리ㆍ스포츠ㆍ영상 콘텐트 등으로 사업을 확장한 결과다. 지난해 순이익은 3억4,400만 달러(약 5000억원)로 전년 대비 17% 증가했다. 경영진은 “인공지능(AI)이 당장 NYT를 대체하지는 않을 것”으로 장담했다.

전통언론의 침체 속 NYT는 독보적 ‘의제설정’ 기능과 강력한 디지털 모델 위에, 특출한 권위를 유지하고 있다. NYT는 최근 아마존과 저작권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 ‘뉴스의 가치’를 재정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구글 이미지.

NYT와 한국 신문의 비즈니스 모델은 질적 차이가 크다. 가장 큰 차이는 "누구에게 돈을 받는가"다. NYT는 ‘돈 받을 가치 있는 독보적 심층보도’에 주력, 수익 70%를 디지털 구독에서 얻고 있다. 헌국은 포털 클릭을 유도하는 자극적·속보성 기사로 포털의 전재료를 받으며 지면광고에 의존한다. 온라인 플랫폼 역시 독자 직접유입(NYT) 대 포털 플랫폼 종속(한국)이다. 한국 신문은 광고주와 포털 권력에 눈높이를 맞추며 독자의 외면을 받기 예사이고.

2. 버핏의 NYT 투자는 AI 시대의 통찰을 담고 있다. 정보의 과잉 속 저질 콘텐츠가 쏟아질수록, "누가 검증했는가"는 가장 비싼 가치로 작용한다. 버핏은 NYT가 가진 '편집권의 권위'가 AI 시대의 가장 강력한 경제적 해자(성 주위를 둘러싼 못)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본다. 신문산업의 총체적 위기 속에서, '생존을 넘어 번영'하고 있는 사례는 분명히 존재한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은 최근 애플·아마존 주식을 팔고 뉴욕타임즈(NYT) 주식을 매입, 언론이 역할에 충실한 신문에의 각별한 애정을 과시했다. @구글이미지

그 공통점? 신문을 더 이상 종이 뭉치가 아니라, '디지털 구독 서비스'나 '브랜드 커뮤니티'로 재정의한 부분이다. 그 성공적 모델은 뚜렷한 결실을 얻고 있다. '번들링(일괄 서비스)'의 정석 NYT, 단순한 뉴스 회사를 넘어, '라이프 스타일 구독 플랫폼'이다. 뉴스 그 이상의 가치 NYT, 뉴스만 파는 것이 아니라 생활정보를 한데 묶어 판다. 독자가 뉴스를 안 읽는 날에도 NYT 앱을 열게 만드는 '생활 침투형' 전략이다.

반면 한국 언론은 정파성 논란에, '복붙(Copy & Paste)' 기사 비중은 높아간다. AI로 쉽게 대체 당할 위험도 크다. 이것이 권위와 위상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규모의 경제도 무시할 수 없긴 하다. NYT는 전 세계에서 유료 구독자를 확보한 글로벌 미디어 테크 기업이다. 한국은 좁은 내수시장 안에서 수많은 매체가 출혈 경쟁을 벌이고 있다. 차별적 심층보도보다 보편적 뉴스를 쏟아내며 위상의 동반 추락을 자초하고 있다.

버핏은 결국, ‘디지털 전환 성공+독보적 신뢰 구축=독점적 플랫폼’(NYT)에 투자했다. 한국 신문의 열독률 하락은 ‘종이 매체의 종말'이라기보다, ‘신뢰·차별화의 경쟁력 상실’에서 오는 현상이다. 한국에서도 새 흐름에 주목한 의미있는 사례는 있다. 중앙일보의 '더중플'은 한국에서도 (포털 의존에서 벗어나)‘돈을 내고 뉴스를 보는 독자가 존재한다’는 가능성을 확인시켜 준다. 조선일보의 ‘탈 포털’과 ‘디지털 독자 확보’ 전략도 주목할 만하다. 독자가 직접 앱으로 들어오도록 전용 콘텐츠를 강화하며, 로그인 독자에게만 기사를 보여준다.

3. 신문의 위상 추락 속 살아남는 법은 두 가지다. "포털에서 주는 대로 먹지 말고, 우리 식당(앱)으로 직접 오게 하라", "공짜 뉴스는 AI에게 맡기고, 유료 뉴스는 인간만이 줄 수 있는 통찰을 담아라". 신문들이 이 변화에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따라 한국 언론의 지형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기술이 화려하게 변하고 구독 모델이 정교해져도, 결국 신문의 본질, ‘의제설정’과 ‘신뢰’라는 기둥이 무너지면 그 위의 상업적 전략은 모두 모래성에 불과하다.

버핏이 NYT에 투자한 것도 특출한 성장세의 확실한 이윤 추구만은 아니다. 새겨 보라. NYT가 어떤 신문인가? "두려움도, 편애도 없이(Without Fear or Favor)" 그 사시(社是) 아래, 권력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진실을 보도해 온 역사가 있다. 언론의 자유와 진실 추구를 위해 그들이 쏟았던 열정은 오늘도 선명하다. ‘펜타곤 페이퍼’ 보도, NYT 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이다. 설리번 판결, 현대 언론자유의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 워터게이트 사건 지원과 탐사보도,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이끌며 미국 탐사보도의 황금기를 열었다.

진실 추구+권력 감시, 그건 NYT의 DNA 자체다. NYT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민주주의를 수호할 언론의 법적·윤리적 방어선을 구축한 투쟁의 역사다. NYT의 정신을 보여주는 상징적 문구, “All the News That's Fit to Print(인쇄하기에 적합한 모든 뉴스)”, “The Truth is worth it”(진실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그 철학은 객관적 진실만을 보도할 의지와, 하나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기자가 감수할 위험을 강조하고 있다.

NYT 역사에 영광만 있었겠나. 2003년 이라크 전쟁 때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오보를 냈던 뼈아픈 과거도 있다. 하지만 NYT가 위대한 이유는 있다. 자신들의 과오를 지면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자기 반성적 보고서를 발간하며 신뢰를 회복하려 애쓴다는 점이다. 진실을 추구하는 것은 '완벽함'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실수했을 때조차 진실할 수 있는 용기'라는 것을 보여준다. 버핏이 NYT에 투자한 이유, "NYT 보도는 믿을 수 있다"는 그 브랜드가 AI 시대에도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지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독자들이 신문을 외면하는 진짜 이유는 뭔가? ‘종이’가 불편해서가 아니라, "이 신문이 나의 삶과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확신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체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진실을 향한 집요함’과 ‘공정한 시각’, 그 저널리즘의 고전적 가치는 신문의 가장 강력한 생존 무기다. 신문은 ‘단순히 정보를 파는 곳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신뢰를 파는 곳’이라는 명제에, 한국 신문은 얼마나 진지할수 있나? 그건 한국 신문이 직면한 '존재론적 위기'의 핵심이다.

돌아보면, 눈앞의 개정 정보통신망법에 신문들이 보여준 유보적·정파적 태도는 언론의 정체성을 의심케 한다. 정부의 외교적 혼선이나 국익이 걸린 대외정책, 특히 한국 민주주의의 본질적 위기 앞에서 언론이 보여주는 '질책 기피' 현상은 또 어떤가? 그건 언론의 비판기능 상실을 넘어, '의제 은폐'라 할 만하다. 전통 언론이 얼마나 미덥지 못했으면, 대학신문이 나서서 <사법 3법 통과, 사법 독립 흔든다> 같은 사설을 게재하겠나.

한국 종이신문들이 민주주의의 본질적 위기 앞에서 ‘의제 은폐’에 침몰할 때 대학신문 ‘고대신문’은 사설을 통해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했다.(사진; ‘고대신문’ 2026년 3월 7일자 사설 알림판) @고대신문 언론 스스로 ‘언론자유’라는 보편적 인권을 정치적 판단에 따른 가변적 가치로 전락시킬 때, 언론의 신뢰자산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나. 한국 신문이 직면한 신뢰의 붕괴는 결국 산업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처럼 눈앞의 진영 논리에 탐닉하며 언론의 본질을 외면할 때, 결국 ‘신문’ 자체가 ‘사회적 흉기’로 취급받을 위험도 크다. 그때면, 우리가 잃는 것은 단순한 ‘신문’이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객관적 사실의 기준 몫을 다하던 ‘공통의 문법’일 것이다. 한국 신문이 직면한 진통은 과거의 권위 뒤에 숨어있던 구태가 디지털화+정파성의 극대화라는 격랑 앞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과정이라 해도 좋다.

그나마 비관의 끝에서 찾는 작은 위안은 있다. 비록 지금은 진영 논리가 본질을 가리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언론은 늘 극심한 혼란기 끝에 '신뢰의 자본'으로 회귀하곤 했으니. 워런 버핏이 굳이 이 시대의 NYT를 골라낸 안목 역시, 대중의 눈이 다시 '진실’로 향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 아니었을까. 곧 ‘신문의 날’이다. 민주주의와 국민의 알 권리, 그 본연의 신뢰를 되새기는 상징적 기점이다. 한국 신문도 그런 ‘진실’을 추구하며 생존할수 있을까? 그 답은 간명하다. 그들이 아는대로다. 그들은 살려 들면 살 것이고 죽으려 들면 죽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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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차용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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