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홍 인피니언코리아 오토모티브 사업부 기술총괄 부사장이 20일 기자간담회에서 "현대차 등 완성차 고객사가 궁극적으로 RISC-V로 옮겨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사진:인피니언코리아).
세계 최대 차량용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공급업체인 독일 인피니언이 오픈소스인 RISC-V 코어를 자사 MCU에 탑재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인피니언은 현대차그룹과도 긴밀한 협업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회사인 만큼 국내 자동차 업계의 전장 개발 생태계에도 변화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인피니언테크놀로지코리아는 20일 오전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월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RISC-V 기반의 신규 차량 MCU 제품군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규 제품은 인피니언의 차량용 MCU 브랜드인 오릭스(AURIX) 라인업에 추가된다. 인피니언은 기존에 독자 트라이코어(TriCore) MCU 제품군인 오릭스 TC와 Arm 코어를 탑재한 트래베오(TRAVEO) 및 PSOC 제품군을 갖추고 있었다.
인피니언 본사는 작년 3월 독일 뉘른베르크 임베디드월드에서 이 같은 RISC-V MCU 제품군 출시 계획을 공식 발표한 바 있다. 차량용 MCU 제품군으로 RISC-V를 공식 채택 발표한 건 인피니언이 처음이다.
이날 기자회견은 한국 시장, 한국 고객군을 겨냥한 로컬 브리핑 성격이 짙다. 이미 인피니언은 지난해 완성차 고객이 있는 전 세계 국가를 돌며 RISC-V MCU 출시에 대한 사실을 알렸다. 현대차그룹이 있는 한국은 인피니언 본사 전체 매출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큰 시장이기도 하다.
시장조사업체 테크인사이트에 따르면 인피니언은 지난해 차량 MCU 시장에서 36%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다.
인피니언의 RISC-V 채택은 회사 사업 구조를 봤을 때 이례적 선택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인피니언은 2000년대 초 자체 개발한 트라이코어를 20년 넘게 차량 MCU 핵심 엔진으로 유지해왔다. 트라이코어는 동력계통이나 차체 같은 실시간 제어 영역에서 강한 성능을 냈다. 일부 저가형에선 Arm 계열 코어를 사용하긴 했으나 독자 코어를 중심으로 업계 1위에 오른 회사가 오픈소스 RISC-V를 채택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배경에는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Software Defined Vehicle)으로의 전환이 있다. 실시간 제어만 다루던 과거와 달리 지금의 차량용 MCU는 고대역폭 이더넷 통신, 대량 데이터 프로세싱, 인공지능(AI) 연산까지 감당해야 한다. 인피니언은 트라이코어 구조만으로는 이 영역을 전부 커버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기업과 완성차 업체 모두 특정 IP 공급사에 종속되는 구조를 피하려는 움직임도 커졌다. 차량용 MCU 시장에서 Arm은 사실상 유일한 라이선스 IP 공급자 위치에 있다. 최근에는 Arm이 직접 칩을 설계 및 판매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기존 고객사와의 경쟁 구도 우려가 제기됐다. 오픈소스인 RISC-V는 누구나 명령어를 확장하거나 최적화할 수 있어 완성차와 1차 부품 공급사가 자체 기능을 하드웨어 단에서 직접 설계할 수 있는 자유도를 준다.
차량용 RISC-V 표준화 작업은 합작사 퀸타우리스(Quintauris)가 주도하고 있다. 인피니언, 보쉬, NXP, 노르딕세미컨덕터, 퀄컴 5개사가 2023년 12월 독일 뮌헨에 설립했고 2024년 8월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가 여섯 번째 주주로 합류했다. 퀸타우리스는 차량용 RISC-V 코어 프로파일과 레퍼런스 아키텍처를 정의해 6개 주주사 제품 간 소프트웨어 호환성을 확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직접 칩을 만들지는 않는다.
인피니언은 실제 칩이 나오기 전부터 소프트웨어 개발에 착수할 수 있는 가상 프로토타입(Virtual Prototype)을 파트너사에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트너사는 하드웨어 출시 이전부터 RISC-V 아키텍처용 소프트웨어와 툴을 개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현대차그룹을 포함한 국내 완성차와 부품사 적용 시나리오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최재홍 인피니언코리아 오토모티브 사업부 기술총괄 부사장은 현대차를 포함한 고객사가 트라이코어 기반 '경험 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전제로 "궁극적으로는 RISC-V로 옮겨갈 거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 부사장은 "차체 관련 제품은 기존 오릭스(트라이코어 기반)가 계속 적용될 것"이라면서 "SDV 존(Zonal) 아키텍처의 새 기능에서는 트라이코어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RISC-V를 쓰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체나 동력계통 같은 기존 실시간 제어 영역은 트라이코어 기반 오릭스로 유지하고, 차세대 SDV 중앙 컴퓨팅과 존 컨트롤러 쪽에서 RISC-V 기반 신제품이 들어갈 것이라는 얘기다.
기존 트라이코어 제품을 쓰는 고객에 대한 공급 보장도 강조했다. 최 부사장은 "트라이코어 오릭스로 개발된 제품의 양산을 바로 중단하는 계획은 전혀 없다"며 "구형 세대도 2035년까지 공급 계획이 잡혀 있다"고 말했다.
토마스 뵘(Thomas Boehm) 인피니언 오토모티브 마이크로컨트롤러 사업부문 수석부사장은 독자 트라이코어 아키텍처도 다음 세대 제품이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트라이코어 아키텍처도 완전히 새로운 제품이 나올 예정"이라며 "아직 완성 안 됐고 향후 12개월 동안 추가 작업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뵘 부사장은 "RISC-V와 트라이코어가 병렬로 가면서 서로 상호 보완한다"고 했다. RISC-V 기반 차량용 MCU의 본격적인 시장 도입 시점은 2027~2028년으로 제시했다.
뵘 부사장은 고객사별로 전환 속도 차이가 크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는 "트라이코어를 2040년까지 로드맵에 두고 개발 중인 고객사도 있고, RISC-V가 나오자마자 빠르게 옮겨가려는 고객사도 있다"며 "병렬 공존은 불가피한 구조"라고 말했다.
Arm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뵘 부사장은 "Arm과의 대결을 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면서 "Arm과 RISC-V는 인피니언 제품 포트폴리오뿐만 아니라 시장에서도 공존하게 된다"고 말했다. Arm의 팹리스 전환 결정이 RISC-V 채택에 영향을 줬냐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뵘 부사장은 인피니언의 RISC-V 투자 결정은 2년 반 전에 시작됐으며 장기적 안목에서 전략적으로 내린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한주엽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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