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5일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의 ‘마음이 어려운 사람에게 당신이 명의가 되는 법―이서정 청소년 피어스페셜리스트’편의 한 장면. 세바시 영상 갈무리
전정윤 | 논설위원
지난주 서울 한 고등학교의 자살예방교육 시간, 담임교사가 교육 영상을 틀기가 무섭게 반 아이들이 일제히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끼었다. “옆 반 담임은 자습하라고 음 소거도 해줬는데, 우리 선생님은 그런 것도 신경 안 써준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안 가르쳐주는 게 고마운’ 기이한 교육의 와중에 이 반 학생 둘이 나눈 대화가 우습고 슬펐다. “자살예방교육 어떻게 생각해?” “이거 학교폭력 교육 아니었어?”
도대체 뭘 틀어줬기에 아이들이 귀를 닫았나, 영상을 찾아봤다. ‘스트레스 관리법’과 ‘게이트키퍼’(자살 위험 신호를 알아차리고 도움을 주는 사람)를 설명하는 콘텐츠였다. 정부 인증 프로그램일 텐데, 자살예방 지식을 보고서 읽듯 나열하고 있었다. 1인 유튜버 방송에서도 보기 힘든 아마추어적인 만듦새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에 따른 의무교육이지만, 교육을 하는 쪽도 받는 쪽도 아무런 기대가 없는 자살예방교육의 현주소다.
‘스프링 피크’, 새 학기와 새 부서 등 환경 변화가 큰 봄에 우울감과 자살률이 급증하는 현상이다. 청소년 자살 사망자는 2015년 245명에서 2024년 372명으로 10년간 51.8% 급증했다. 10대만 따로 낸 통계는 없지만, 2025년 잠정치를 보면 스프링 피크가 뚜렷하다. 우리나라 총 자살자는 2025년도에 1만3774명(잠정치)인데, 3·4월(1273명·1249명)이 나머지 10개월 평균 1125명에 비해 12% 많다. 지난해 연초 청소년 상담 시스템 ‘다 들어줄 개’ 상담 건수는 2600건 수준이었는데, 3·4월엔 3159건·3509건으로 30% 가까이 급증했다.
찬란하게 꽃을 피워야 할 아이들이 ‘낙화’하는 잔인한 봄이다. 최근 홍현주 한림대 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청소년 자살 동향 원인 분석 및 대응 방안’ 포럼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자살 청소년의 대다수(80.6%)가 언어·행동·정서적 변화를 통해 경고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교사나 부모는 이 신호를 투정이나 반항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높다. 자살이나 자해 시도를 했던 ‘고위험군’을 집중적으로 살피면 될 것 같지만, 대개 아이들은 두번 기회를 주지 않는다. 우리나라 10대 청소년의 주요 자살 방법은 투신(72%)이며, 첫 시도에서 숨질 확률이 70~80%에 이른다.
지금처럼 아이들이 귀를 틀어막는 교육으로 예방은 어림도 없다. 아이들에게 실질적 영향력이 있는 교육이 절실하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에 청소년 동료상담가 이서정씨가 출연한 적이 있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더라도 자살을 멈춰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현실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수백번의 자해와 다섯번의 자살 시도 끝에 살아남은 그는 “한강 물은 생각보다 훨씬 더럽고 훨씬 깊기 때문에 뛰어들고 나면 바로 정신이 들고 후회된다”며 한강에 둥둥 떠서 구조 요청을 고민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실제로 많은 자살 생존자들이 “자살을 시도한 순간 후회했다”며 공감하는 얘기다. 그렇게 살아남은 그는 “죽고 싶은 사람은 없고,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사람만 있다”며 또래들에게 “살아갈 이유”를 설득하는 동료상담가로 활동하고 있다.
수많은 자살 생존자와 유가족,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세바시 같은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아픔을 공유한다. 나의 고통이 나만의 고통은 아니라는 보편적 감수성을 일깨우는 일이다. 자살이라는 주제를 다루지 않더라도, 각계각층 사람들이 ‘죽음은 끝이 아니고, 삶에는 목적이 있다’는 진솔한 경험을 나누는 콘텐츠는 차고 넘친다. 학교가 고위험군 아이들을 일일이 보살필 수 없다면, 예방 프로그램이라도 이렇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역부족이라면 차라리 민간의 웰메이드 정신건강 콘텐츠라도 찾아 보여주는 성의와 유연함이라도 보여야 할 것이다.
오는 24일 올해 첫 모의고사가 치러진다. 이 시험이 끝나면 “3모 망쳤으니 서성한이나 가야지” 농담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최상위권 학생들이 시험을 못 봐 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 간다는 배부른 소리가 아니다. 시험 망쳐서 서강대교·성수대교·한강대교에 자살하러 간다는 뜻이다. 3모 성적표 속 숫자가 아니라, 농담 속에 묻어나는 아이들의 불안과 고통을 읽어내는 일이 먼저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은 공허한 지식이나 훈계가 아니라, 공감에 기반한 대화로 내려놓게 할 수 있을 테니까.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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