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찍고 끝…K디저트 ‘초단기 생애’
# 30대 직장인 이한결 씨는 최근 여자친구에게 줄 상하이 버터떡을 사기 위해 서울 시내 카페 여러 곳을 수소문했다. 여자친구가 SNS에서 유행하는 디저트를 좋아해서다. 그는 한 유명 카페 SNS 계정에 판매 시간과 재고를 문의했지만, 답장은 7시간 뒤에야 돌아왔다. 매장 측은 “디엠(개인 메시지) 확인이 어려워 답장이 늦었다”며 “버터떡은 평일 오후 1시, 4시에 나오는데 나오자마자 20분 이내로 동난다”고 전했다. 결국 이 씨는 인근 다른 카페를 수소문한 끝에 버터떡 8개를 2만원에 샀다. 이 씨는 “몇 달 전 두바이 쫀득 쿠키를 구하느라 애먹었는데 금세 버터떡까지 유행하니 인기 제품을 구하기가 힘들다”며 “유행이 너무 짧고 빨라 따라가기 벅차다”고 들려줬다.
한국 디저트 시장의 유행 주기는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하나의 메뉴가 수개월에서 1년 가까이 시장을 점유했다면, 최근에는 몇 주에서 길어야 2~4개월 안에 화제의 중심이 바뀐다. 숏폼 영상과 SNS 인증 문화가 K디저트 수요를 단기간에 폭발시키고, 유통·제조 업체가 이를 신속히 복제·확산하며 K디저트의 제품 수명 주기(PLC·Product Life Cycle)가 급격히 짧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30대 직장인 이한결 씨가 여자친구에게 줄 상하이 버터떡을 사기 위해 버터떡을 판매하고 있는 카페 매장과 나눈 인스타그램 대화창 갈무리. (독자 제공)
1년 가던 유행, 3개월로…
‘크로플 163일 vs 두쫀쿠 17일’
K디저트 열풍의 역사를 되짚으면 유행 수명이 어떻게 짧아졌는지 뚜렷하게 보인다. 2014년 유행한 허니버터칩은 ‘품귀 현상’이라는 말을 대중화한 대표 사례다. 출시 초기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과열 양상을 보였고, 증산 뒤에야 열기가 식었다. 이후 2016년 대왕카스테라, 2019년 흑당 버블티, 2020년 크로플, 2022년 포켓몬빵, 2023년 탕후루와 먹태깡, 그리고 연말·연초 전국을 강타한 두바이 쫀득 쿠키(두쫀쿠)와 최근 급부상한 상하이 버터떡까지. 디저트 유행의 흐름을 놓고 보면, 화제성 식품의 생애가 갈수록 압축되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최근 10여년간 국내 디저트 유행 수명은 점차 짧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허니버터칩과 크로플은 약 1년 내외로 인기를 유지했고, 대왕카스테라는 약 10개월간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흑당 버블티는 8개월, 포켓몬빵은 7개월, 탕후루는 6개월, 먹태깡은 5개월 수준으로 열기가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두쫀쿠는 정점을 찍은 이후 약 3개월 만에 빠르게 관심이 식었다. 버터떡은 두쫀쿠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음 주자로 등장했다.
유행이 정점을 찍은 뒤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는 이른바 ‘유행 반감기’ 역시 짧아졌다. 최근 5년간 네이버 데이터랩의 주요 디저트 품목 검색량 변화를 분석한 결과, 크로플은 검색량이 최고점 이후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163일이 걸렸다. 이후 유행한 탕후루는 54일, 두쫀쿠는 17일 수준으로 축소됐다.
유행이 빨리 지나자 판매 업장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한국신용데이터(KCD)에 따르면, 두쫀쿠 판매 업장의 월평균 판매량은 지난해 연말 1000개 이상으로 정점을 찍은 뒤, 올해 들어 800개 수준으로 하락했다.
식품·편의점 업계에 물었다
K-디저트 ‘초단기 PLC’ 공식은
디저트 유행의 단축은 인기 제품의 ‘제품 수명 주기(PLC)’가 짧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경이코노미가 국내 식품 1군 기업 6곳과 편의점 3사를 대상으로 최근 디저트 제품 수명 주기 단축을 얼마나 체감하는지 물은 결과, 업계는 한목소리로 “유행의 형성과 소멸이 모두 빨라졌다”고 답했다. 기업의 파악하는 유행 흐름은 대체로 비슷했다.
일단 SNS 인증과 숏폼 영상의 폭발적 확산이 먼저 일어나고, 급격한 수요 증가가 뒤따른다. 한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가 새롭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계속 공급하며 소비자의 시각적, 청각적 관심을 높인다”며 “맛뿐 아니라 비주얼, 식감, 희소성, 스토리가 함께 소비된다”고 말했다.
이후 오픈런과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가격이 뛴다. 희소성이 곧 매력인 시장에서, 오픈런은 불편이 아니라 유행을 증폭시키는 장치가 된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특정 상품에 관한 관심이 단기간에 집중되면 관련 시장이 단기간에 포화하며 가격이 폭등한다”고 들려줬다.
유행이 커질 무렵 유사 상품과 파생 상품이 쏟아지며 공급이 과열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원재료 수급 부담을 호소했다. 전국 점포에 최대한 같은 수준으로 납품해야 하기 때문에 원재료 확보 부담이 크고, 유행이 빠르게 식으면 확보해둔 원재료 비용과 포장재 후속 처리 부담까지 떠안게 된다는 설명이다. 한 식품 업계 관계자는 “유행 초기에 보수적으로 생산하면 기회를 놓치고, 공격적으로 확보하면 유행 종료 뒤 재고 부담이 커지는 딜레마가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품질 편차가 커지고, 유행이 꺾인 뒤에는 대량 폐업으로 이어진다. 업계 관계자들은 공급이 한꺼번에 늘어나면 품질 편차가 커지고 신뢰가 흔들리기 쉽다고 진단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왕카스테라다. 지난 2016년 유행했던 대왕카스테라는 국내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점포 수를 늘렸다. 하지만 이듬해 방송에서 대왕카스테라의 식용유 과다 사용 문제가 불거지며 줄줄이 폐업한 전례가 있다. 또 다른 식품 업계 관계자는 “화제성만 믿고 공급이 급격히 늘어난 뒤 시장이 빠르게 정리된 사례”라고 평가했다.
‘유행 더 빨리 식는’ 이유는?
유행 넘어 스테디셀러 되려면
K디저트 유행은 왜 짧아졌을까. 전문가들은 K디저트 유행 주기 단축의 가장 큰 배경으로 SNS와 숏폼 플랫폼의 확산을 꼽는다.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최근 식품의 단기적 유행은 SNS 인증 소비 때문”이라며 “품질보다 특별함과 이슈로 유행이 되고, 대중화된 뒤 재구매를 통한 시장 안착을 못하며 이슈와 함께 빠르게 사라진다”고 말했다.
유행의 단축이 디저트뿐 아니라 뷰티와 패션 등 전반에서 나타나는 ‘픽셀 라이프’의 한 단면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더 짧고 다양한 트렌드 경험을 수집하며 취향의 해상도를 높이는 소비 방식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미영 트렌드코리아컴퍼니 연구위원은 “모든 새로운 것이 뜬다기보다는 소비자 지향적 상품을 기업이 선보이면 선도소비자가 선택하고 그것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하면서 열풍이 만들어진다”고 진단했다.
디저트 유행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 이유로는 ‘경험 소비’의 한계와 ‘고물가 현상’을 지목한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 경제학과 교수는 “디저트 유행이 지속되지 않는 이유는 한두 번 경험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험 소비’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라며 “맛이 압도적이지 않다면 반복 구매로 이어지기 어렵고 여기에 가격 부담과 소비 심리 위축이 겹치며 유행이 빠르게 사라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기업은 어떤 대응 전략을 취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단순 유행’과 ‘유행의 정착’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저트의 화제성만으로는 오래가기 어렵고, 반복 구매를 만드는 맛의 균형과 가격 접근성, 브랜드 신뢰가 뒤따라야 ‘스테디셀러’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다현 트렌드코리아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기업은 화제성 있는 디저트를 엔트리 상품으로 활용해 유입을 만든 뒤, 반복 소비 가능한 제품으로 자연스럽게 전환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디저트의 등장이 시장에 활력을 주고 소비자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는 측면이 있다는 의견도 새겨들을 만하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다소 낭비적인 측면이 있더라도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소비이기 때문에 부담이 크지 않다”며 “먹거리 다양성을 확대하고 소비자에게 즐거움과 호기심을 제공해 침체한 소비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6호(2026.04.20~04.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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