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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집값 너머 ‘오래 거주할 수 있는 안정’[정준호의 부동산과 사회경제]

지난 8월 2주차 한국갤럽 조사에서 눈에 띄는 문항이 하나 있었다. “주택시장이 어떤 상태가 되면 안정화됐다고 느낄 것 같습니까.”

집값 너머 ‘오래 거주할 수 있는 안정’[정준호의 부동산과 사회경제]

지난 8월 2주차 한국갤럽 조사에서 눈에 띄는 문항이 하나 있었다. “주택시장이 어떤 상태가 되면 안정화됐다고 느낄 것 같습니까.” ‘서울 아파트값이 전반적으로 하락할 때’ 30%, ‘집값이 급격히 오르거나 내리지 않을 때’ 24%, ‘집을 사지 않아도 전월세로 장기 거주가 가능할 때’ 33%였다.

세 응답은 어느 하나가 압도적이라기보다 30% 안팎에서 갈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러한 구분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주거 안정’이 한 가지 상태가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가격이 내려가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고, 급등락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으며, 집을 사지 않아도 오래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전월세로 장기 거주가 가능할 때’를 꼽은 비율이 유주택자와 무주택자 모두 33%로 같았다는 점이다. 50대와 중하위 생활수준층에서는 각각 42%, 대전·세종·충청에서는 43%였다. 반면 30대는 ‘급등락 없음’을, 20대는 ‘서울 집값 하락’을 상대적으로 많이 꼽았다. 점유 안정에 대한 요구를 단순히 무주택자의 이해관계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주거 안정’이라는 말에는 집값의 수준과 변동에 관한 안정, 그리고 자가를 소유하지 않아도 오래 거주할 수 있는 안정이 함께 들어 있다.

그런데 우리의 주택정책 논의는 이 두 목표를 충분히 구분해 다루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실거주 요건을 강화한다고 하고 전월세난에 대응해 공급 확대를 발표할 때도 결국 정책의 성적표는 집값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물론 거래 규제와 세제, 공급 정책은 주택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집값은 금리와 경기, 유동성, 인구 이동, 시장 기대와 같은 거시경제적 요인에도 크게 좌우된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2022년 이후 급격한 금리 인상기에 주택가격이 크게 조정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가령, 한국갤럽의 장기 조사에서도 향후 집값 하락 전망이 상승 전망을 뚜렷하게 앞선 시기는 코로나 이후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 금리를 인상했던 주로 2022년 하반기 이후였다. 이처럼 가격 안정은 중요한 정책 목표지만, 정부 정책만으로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점유 안정이 별도의 정책 목표가 되려면 임차가 자가로 가기 전의 임시 단계가 아니라 그 자체로 지속 가능한 선택지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참고할 만한 개념이 ‘점유 중립성’(tenure neutrality)이다. 조세와 금융, 주거 지원 제도가 자가와 임차 중 어느 한쪽을 지나치게 유리하게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최근 37개국의 1901~2020년 기간 주택 관련 세제를 비교한 연구는 자가소유 우대가 경제 수준이나 집권 정당의 정치적 성향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자가에 대한 조세 우대와 세입자 보호가 서로 다른 제도적 경로를 밟아왔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수치는 특히 흥미롭다. 자가 우대 정도를 0에서 1 사이로 측정한 지표에서 우리나라의 귀속임대료(imputed rent) 항목은 관측 기간에 1.0, 주택 양도소득 항목은 0.83이었다. 반면 모기지 이자 공제 항목은 0.17이었다. 자가 우대가 차입 단계보다 보유와 처분 단계에서 더 강하게 나타났다는 의미다.

그 틈을 오랫동안 메운 것이 전세였다. 전세는 임대인에게는 일종의 무이자 사금융이었고, 임차인에게는 자가 진입을 위한 사다리였다. 국가가 충분히 담당하지 않았던 주택금융 일부를 민간 계약이 대신한 셈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임대시장과 매매시장을 떼어놓기 어렵고, 임차 역시 자가와 나란히 놓인 독립적인 주거 선택으로 자리 잡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주거정책의 목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목표를 더 선명하게 구분하는 일이다. 주택가격 안정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주거 안정을 모두 달성할 수는 없다. 자가를 소유하지 않아도 오래 살 수 있는 조건을 독립된 정책 목표로 다루고, 자가와 임차에 제도가 어떤 혜택과 보호를 제공하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공급 역시 몇 호를 짓느냐뿐 아니라 누가 장기간 보유하고 운영하느냐가 중요하다.

집값은 중요한 목표이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목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정부가 좀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거 안정이 무엇인지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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