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산책] 김법혜 스님· 철학박사·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세계보건기구와 노인복지법 등에 의해 정의되는 노인은 65세 이상 기준으로 잡고 복지혜택을 부여한다. 올해 65세에 달하는 61년생 94만명이 노인에 편입됨에 따라 우리나라 노인 인구는 현재 1천90만 6649명으로 전체인구의 21.21%를 차지 초고령사회라는 거대한 파고와 맞서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한 노인들의 풍경은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요즘 세상의 대세는 디지털, AI시대다. 은행 점포는 나날이 급감하고 있고 물건을 만져보고 골라 살 수 있는 오프라인 상점은 생존이 어렵게 됐다. 시스템을 잘 다루지 못하면 햄버거 하나 사먹기 조차 어려운 게 오늘날 노인에게 닥친 오늘의 현실이다. 생활 환경 적응이 생존의 위협으로 등장하고 있다.
과연 옳은 정책 방향일까? 게다가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논란도 뜨겁다. 이제 노인 적용 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높이려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도 다수가 찬성하고 있다. 노인 세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어디에도 없고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깊어진다.
그러니 자조적으로 ‘노인이 없어져야 하나?’라고들 한다. 우리나라의 디지털 환경은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한다. 자동화·무인화·키오스크의 천국화로 되어간다. 세상이 급변해도 이들을 보호하고 안내할 책임이 사회와 정치의 몫인데 그야말로 ‘노인권익보호당’이라도 만들어야 될 우리의 자화상이다.
여기에 노인 빈곤이 문제라고 너도 나도 모두 목소리를 높이는 나라에서 노인 일자리 문제에는 입을 닫고 있다. 사람의 평균수명은 84세를 넘었지만 사회가 허용하는 노동의 시간은 여전히 60세 전후에서 끊기고 있다. 은퇴 이후 20~30년의 삶은 국가의 설계 밖에 놓였고, 그 공백을 노인이 각자가 버티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 같은 모습은 우리만의 특수한 풍경은 아니다. 일본을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익숙한 모습이 있다. 지하철 역사에서, 공공주차장에서, 관광지 입구에서, 심지어 동네 소규모 시설에서도 요금을 받거나 입장권을 발급하는 노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자동화가 충분히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그 자리를 노인을 위해 남겨 놓고 있다.
고령자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고 있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 일본 사회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정책의 결과다. 일본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이 “모든 것을 자동화하는 것이 반드시 효율은 아니다”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무인화·자동화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더라도 그것이 사회 전체의 비용을 줄이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판단이다. 그래서 일본은 일부 단순 업무를 ‘남겨두는 일자리’로 관리하고 있다. 고령자가 노동을 통해 사회와 연결되고 고립과 우울을 예방하며 의료·복지 비용을 줄이는 효과까지 감안한 선택이다.
반면 우리는 어떤 길을 택하고 있는가? 우리는 자동화를 ‘무조건적인 선’으로 여겼다. 무인 계산대, 무인 주차장, 무인 요금소, 무인 안내 시스템을 빠르게 확산시키고 있다. 그 결과 효율은 높아졌을지 몰라도 그 자리를 대체할 노인의 역할은 설계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 노인들은 일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지녔어도 일할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남아 있는 일자리는 경비, 청소, 택배 분류 등 고강도·저임금 노동에 집중된다. 우리 사회는 일하는 노인을 보면 안쓰럽다. 그러나 일본 사회는 다르게 본다. “사회가 역할을 남겨 두었다” 고 인식한다.
같은 고령 노동이지만 하나는 방치된 결과이고 다른 하나는 설계된 선택이다. 은퇴 없는 나라가 문제인가? 일본은 은퇴 없는 사회를 전제로 삼고 노동의 강도와 형태를 재설계한다. 하지만 우리는 은퇴없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 노인을 제도 밖으로 밀어 내고 있다.
이 차이는 세대 갈등에서도 드러난다. 우리는 노인이 일하면 “청년 일자리를 뺏는다”는 말이 쉽게 나온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고령자의 단순·관리·안내 노동이 청년의 전문·기술 노동과 충돌하지 않도록 구조를 분리하고 있다. 자동화를 무조건 확대할 것인가? 아니면 일부 영역에서는 사람을 남겨둘 것인가?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볼 것인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방향은 분명해야 한다.
이제는 AI 시대의 진입기이다. 모든 것이 빛의 속도로 바뀌어 간다. 그러나 속도와 방향 그리고 사회적, 정치적, 선택적 결정은 우리의 몫이다. 바로 자동화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사회를 남길 것인가의 문제다. 그 선택을 미루는 순간 은퇴 없는 나라는 연대 없는 나라가 된다. 청년과 노인은 동전의 양면처럼 누구나 겪게 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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