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민들의 머리에 강렬한 충격을 준 사건들이 있다. 고유명사화 돼 수십년째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사건들도 있다.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거나, 시스템적인 문제가 얽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참사들은 도민들의 뇌리에 깊게 새겨진 채 한편으로는 안타까움을, 다른 한편으로는 경각심을 일깨운다.
물론 나쁜 일만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다. 지역사회가 민·관 협치를 비롯한 과감한 적극행정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낸 사례들도 있다.
이러한 긍정적 분위기는 사회 전반에 걸쳐, 적어도 해당 분야의 깊은 곳까지 선례로 남아 영향을 미친다.
중부일보는 지난 35년간 다양한 사건을 다루며 경기도 행정을 지적하거나, 또는 지원해 왔다. 과거 본보가 짚었던 취재현장들은 십수년, 혹은 수십년이 지난 현재 다양한 모습으로 변해 있다.
이에 본보는 창간 35주년을 맞아 그간 취재했던 현장을 다시 한 번 직접 찾아 사건을 되짚어보고, 그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편집자주-
광교신도시 법조타운
법조타운 논의부터 완공 후까지 민의 충실히 전달
수원지방법원·검찰청 원천동 구청사 시절 전경(위)과 2019년 신청사로 옮겨 온 수원고등·지방법원 및 수원고등·지방검찰청 광교 청사 전경. 사진=수원시청·중부포토DB
2005년 광교신도시 개발계획이 확정고시되면서 시작된 ‘광교 법조타운’에 대한 논의는 2019년 2월 수원지방법원이 고등법원과 함께 현재의 광교 신청사 부지로 이전할 때까지 14년가량 꾸준히 이어졌다.
현재 법원 주변에는 변호사 사무실과 법무법인, 공증사무소 등이 밀집한 채 법률 서비스를 한 곳에서 이용하기 쉽다. 이처럼 광교 법조타운은 사법기관과 법률 서비스가 집약된 공간으로, 업무 효율성과 시민 편의성을 함께 높인 수도권의 대표적인 사법 중심지다.
중부일보는 법조타운 조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당시 고등법원 신설, 법원과 검찰 청사 완공 등을 비롯해 그 이후까지의 과정 전체를 집중 보도하며 법조타운과 관련한 공론장의 중심에 섰다.
본보 2006년 12월 보도(엄득호 기자)에는 수원고등법원 신설에 66.1%의 도민이 찬성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매우 찬성 44.6%, 약간 찬성 21.5%)와 함께 “경기도민들은 서울을 둘러싼 변방 도시라는 인식 때문에 오히려 역차별을 받아왔다”는 수원변호사협회의 목소리가 담겼다.
수원지법 청사 이전 시기에 맞물려 고등법원 신설이 필요하다는 민의를 발 빠르게 보도한 셈이다.
이후 경기도시공사 기획조정실장 신모(2008년 당시 53)씨가 광교신도시 감정평가법인들로부터 돈을 받는 등 잡음을 겪으며 고등법원 신설 논의가 수년간 답보되기도 했지만, 본보 취재진은 경기도시공사 등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고등법원 설치 필요성을 낱낱이 분석해 도민의 목소리를 담았다.
중부일보 2006년 12월 26일자, 2010년 1월 20일자, 2014년 2월 28일자 기사들.
본보 2010년 1월 보도(김재득 기자)는 2008년 기준 수원지법에서 서울고법으로 항소된 사건들이 서울고법의 전체 사건 수 중 18.7%나 차지한다는 점과 경기남부 권역의 관할 인구 수가 당시 746만 명으로 부산고법 다음으로 많은 점 등 데이터 분석을 통해 수원고법 설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2010년 12월 수원지법·지검이 광교신도시로 이전하는 것이 확정, 2013년 경기고법 신설 안건이 발의 6년여 만에 국회에서 통과됐다.
시간이 더 지난 2014년 12월 수원고법이 들어설 장소가 확정된 이후, 2019년 3월 마침내 개원한 수원고법은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인구를 관할하고 있다. 1992년 대전고법 이후로 고등법원이 신설된 것은 28년 만이었다.
다만 수원지법·지검 이전 및 고법 설치가 확정된 이후, 중부일보는 광교청사가 계획될 당시부터 과밀화 등 우려의 목소리를 꾸준히 보도해 온 바 있다.
본보 2013년 9월·2015년 5월 연속보도(이주철 기자)는 원천동 소재 구 청사를 ‘콩나물 청사’에 빗대는 현장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아 관할 인구에 비해 턱없이 작게 설계된 신청사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을 예견했다.
해당 보도는 지난 1984년 원천동 구청사 위치에 수원지법·지검이 들어설 당시에도 ‘호화판 청사’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인구 증가와 관할 확대 등 영향으로 결국 ‘콩나물 청사’로 전락했다는 점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미래를 대비해 법정동 증설과 주차면수 확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밀 현상에 대한 우려와 증축의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집중 조명한 본보 보도는 2013년 10월 대법원과 법무부가 기존 설계층수보다 4~5층을 증축해 수원법원 신청사는 19층 규모로, 검찰 청사는 20층 규모로 변경하는 결과를 이끌어 냈다.
한편 원천동 구청사 부지를 놓고 지난 2018년께부터 본격적인 공공주택 개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2018년 2월 중부일보 보도에 따르면 당시 경기도시공사는 수원지법·지검 구청사 부지(원천동 80번지 일원) 총 3만3천729㎡에 548세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 건설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투자안이 도의회에서 기각되고 사업시행자 선정 등 문제가 맞물리며 원천동 구청사 부지인 ‘광교 A17’블록의 지분적립형 공공주택은 최근까지도 착공하지 못하고 있는 처지다. 해당 사업은 2026년 6월 현재 여전히 승인 협의 중이다.
화성 씨랜드 화재 참사
북적이는 카페·수목원 옆 쓸쓸한 추모비
(왼쪽)25년 6월 30일 오전 화성시 서해마루유스호스텔에서 진행된 씨랜드 화재 참사 희생자 26주기 추모제에서 한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오른쪽) 2026년 6월 현재 참사가 발생했던 씨랜드 화재 참사 현장 부지에는 카페와 주차장, 수목원 시설이 들어서 있다. 사진 속 비닐하우스가 수목원으로 조성된 모습. 임채운·최윤호 기자
지난 1999년 23명의 어린 생명을 앗아간 화성시 서신면 백미리의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참사 현장.
중부일보 최재진이 다시 가 본 현장에는 사고가 발생한 뒤 27년이 흐르며 주차장과 카페가 들어선 채, 대형 카페 바로 옆으로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비와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추모비에는 추모시가 새겨진 채, 비석 앞으로 꽃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평일 낮 시간대 이곳 카페는 방문객들로 북적였지만, 몇 걸음 떨어진 추모 공간은 고요했다.
카페 이용객들은 음료를 구매한 뒤 넓게 조성된 수목원 산책로와 휴게공간을 거닐며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반면 씨랜드 희생자들을 기리는 공간은 수목원 한켠에 작게 조성돼 인적이 드문 상태로 적막함만이 감돌았다.
현장을 찾은 시민들은 이곳이 참사 현장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수원에 거주하는 이모(57)씨는 “예전 사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이곳인 줄은 몰랐다”며 “알게 된 이상 앞으로는 방문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용인에서 카페를 찾은 강모(56)씨는 “화성 씨랜드 참사는 알고 있었지만 이 부지가 참사 현장이었다는 사실은 방금 알았다”며 “어린아이들이 목숨을 잃은 곳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1999년 6월 당시 중부일보 특별취재반의 보도를 종합하면 30일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고로 인해 당시 화재로 유치원생 19명과 인솔교사 1명, 레크리에이션 강사 3명 등 총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30일 새벽 오전 1시 40분께 수련원 2층에서 원인조차 모르게 시작된 불길은, 순식간에 3층 등 건물 전체로 옮겨붙었다.
수련원은 1998년 2월 4일 설치운영허가를 받아 청소년 수련시설로 등록돼 있었으며, 1만3천960㎡의 부지에 건축면적 2천582㎡, 3층 목조 경량철골조 건물로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실내 집회장과 이날 화재가 난 수용인원 630명 규모의 숙소, 강의실, 식당 등으로 이뤄져 있었다.
중부일보는 취재를 통해 씨랜드는 컨테이너를 쌓아 만든 경량철골조 건물이었지만 사용승인 과정에서 일반건축물로 처리됐으며, 더욱이 경기도가 시설 안전성과 진입도로 문제 등을 이유로 허가 불가 의견을 냈음에도, 당시 화성군이 수련원 허가를 내줬던 사실을 파악했다.
당시에도 수련원 진입도로의 폭은 2~3m 수준에 불과해 화재 당일 일부 소방차량이 진입로를 찾지 못해 다른 방향으로 접근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허가 과정 전반에 대한 부실 논란이 확산된 바 있다.
이밖에 숙박정원이 630명인 이곳은 당시 청소년기본법상 1~3급의 청소년지도사 3명 이상 두도록 규정됐음에도 불구, 지도사가 2명인 상태에서 화성군은 정원 증가 신청을 이의 없이 받아들이기도 했다.
한편 당시 중부일보 한동훈 기자는 해당 수련원이 정식 개장 전부터 청소년 수련시설 허가와 등록 절차를 제대로 마치지 않은 채 놀이시설을 운영하며 불법 영업을 이어왔다고 지적했다.
실제 씨랜드 측은 지난 1997년 6월 청소년 수련시설 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청룡열차와 회전목마, 범퍼카 등의 놀이시설을 설치해 운영하다 적발돼 경찰에 고발됐다.
이후 1998년 2월 수련시설 설치 허가를 받았지만 정식 등록을 마치기 전까지는 영업이 금지돼 있음에도 같은 해 여름 수백 명의 이용객을 받아 운영한 사실이 경기도 감사에서 적발돼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특히 부과된 과태료 납부를 수개월간 미루다 부동산 압류 조치가 이뤄진 뒤에야 납부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휴업을 신고한 놀이시설 역시 실제로는 사고 발생 전날까지 운영된 것으로 알려져 관리·감독 부실 논란이 제기됐다.
씨랜드 참사는 화재 자체보다도 부실한 인허가와 안전관리 소홀, 허술한 감독체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피해를 키운 대표적인 인재로 기록되고 있다.
이천 냉동창고 화재
18년여 방치 현장… 보이는 건 들짐승 뿐
지난 2008년 이천시 호법면 코리아2000 냉동창고 화재(왼쪽 사진) 이후, 2026년 6월 사고 현장이 그대로 방치돼 있는 모습(오른쪽 사진)의 비교. 중부일보DB · 최진규기자
과거 ㈜코리아2000의 냉동창고로 쓰였던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에 위치한 화재 현장.
중부일보 취재진이 다시 가본 이곳은 2008년 1월 7일 당시 40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던 지난 참사 당시의 모습 그대로 20년 가까이 방치돼 있었다.
넝마가 돼 나부끼는 안전그물과 콘크리트 잔해물이 쌓여 만들어진 둔덕을 넘어 창고 내부로 들어가면, 온통 시커멓게 그을린 흔적들과 화재 감식 당시 표기한 것으로 추정되는 표식들까지 그대로다. 남겨진 잿더미에서는 아직도 타는 듯한 냄새가 남아, 바람이 불 때마다 코를 찔러왔다. 당시 40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화마가 얼마나 지독했는지 엿보였다.
주변에는 이곳이 참사가 있었던 장소였음을 알리는 추모비도 없었고, 위험하니 출입을 자제하라는 안내판 하나 없었다. 장기간 방치돼 녹슨 건설자재와 가설 컨테이너박스 안에는 오래 전 누군가 생활한 흔적이 엿보였지만, 움직이는 것은 들개와 박쥐 몇 마리 뿐이었다.
참사 현장과 인접한 공간에는 또다른 물류업체의 창고가 자리잡고 있었다. 폭발음과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던 18년 전 참사 당일 이후로 고요함을 지키고 있는 참사 현장의 모습과 바쁘게 움직이는 인접 물류업체 인부들의 활기가 대비됐다.
참사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현장에서 만난 인근 업체의 화물차 기사는 코리아2000 화재현장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글쎄요, 짓다가 망해서 그냥 둔 거 아니에요?”라며 심드렁하게 반문할 뿐이었다.
2008년 1월 7일 중부일보 특별취재반(김정오·김영래·한관우·최영호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이천의 ㈜코리아2000 냉동창고에서 폭발과 함께 대형 화재가 발생, 인부 40명이 숨진채 발견됐다.
지하층 기계실에서 폭발이 발생해 창고 전체로 순식간에 불길이 번졌으며, 당시 창고 작업인부 54명과 관리자 3명 등 57명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40명은 숨진 채 발견됐으며 나머지 17명은 모두 중·경상을 입은 채 탈출하거나 구조됐다. 창고에 있던 인원 전원이 숨지거나 다쳤다.
사고 당일 용접 작업이 진행되던 중, 창고 내부에 단열재인 우레탄폼을 발포하는 작업 당시 잔존해 있던 유증기로 인해 10초 사이에 3차례의 연쇄 폭발을 일으킨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면적 2만3천338㎡에 달하는 밀폐 구조인 창고 지하 1층에 유독가스가 순식간에 번졌다.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벽면에는 불길이 쉽게 옮겨붙었고, 폭발로 인해 배관이 붕괴되면서 창고에 설치된 224t 용량의 물탱크와 스프링클러는 무용지물이 됐다.
▶우레탄 폼 작업과 용접 작업 병행 금지 ▶샌드위치 패널 등 가연성 외벽제 사용 금지.
이 두가지 규정이 2008년 당시에도 있었다면, 40명 사망이라는 참사로 이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러한 규정들은 12년이 지난 뒤 ‘판박이’ 참사가 발생해 또다시 수십 명이 목숨을 잃은 뒤에야 마련됐다.
2020년 4~5월 중부일보 기획보도(김웅섭·정성욱 기자)에 따르면, 4월 29일 이천시 모가면 소고리의 한익스프레스 남이천물류센터 신축공사 현장에서 폭발로 인한 대형 화재가 발생, 38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폭발의 원인은 12년 전인 코리아2000 냉동창고 참사와 판박이었다. 당시 현장 지하서에는 우레탄폼 발포 작업과 엘레베이터 설치를 위한 용접 작업이 병행되고 있었다.
우레탄폼 작업시 발생한 유증기에 용접 불꽃이 튀면서 폭발로 이어졌고, 가연성 소재인 샌드위치 패널 벽재에 옮겨붙어 순식간에 연소확대한 것으로 조사됐다. 설치돼 있던 스프링클러는 앞선 폭발로 인해 배관이 파괴돼 작동하지 못했다.
이후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현장지도 등 영향으로 2020년 화재안전성능기준 개정, 안전관리 규정 신설 등이 잇따라 이뤄졌다.
다만 규정이 마련됐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작업들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개정법 등이 소급되지 않는 탓에 잠재적 시한폭탄들이 도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규정 강화와 더불어 기존 건축물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지 않으면 이와 비슷한 참사가 언제 다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경고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정부와 지자체가 샌드위치 패널 구조 개선이나 소방시설을 설치한 건물주에게 화재보험료와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등 실질적인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현행 규정상 난연재 의무사용 대상인 외부 단열재뿐만 아니라 내부 단열재를 난연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수원 화성행궁
수난받던 세계유산… 보도 이후 방재 강화
(왼쪽) 2006년 5월 1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 서장대에 방화로 불이 나 지붕이 무너져 내린 모습. (오른쪽) 2007년 2월 23일 복원공사가 끝난 서장대(오른쪽). 중부포토DB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시 행궁동 일대 화성행궁. 이곳은 잇따른 화재에도 기본적인 방재시설조차 부족했던 과거와 달리, 첨단 방재시스템을 갖추고 연간 수십만 명의 외국인이 찾는 수원의 대표 관광지로 변화했다.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을 유치하고 소비기반 마련을 통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지 60년이 지난 현재 수원의 대표적인 문화시설로 자리잡았다.
지난 2008년 중부일보 김재득, 동규 기자는 당시 수원화성의 주요 목조문화재에서 발생한 잇따른 화재와 방화 사건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방재체계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실제 수원화성에서는 2006년 서장대 방화 사건을 시작으로 2008년까지 실화와 방화 사건이 잇따랐다.
2006년 5월에는 술에 취한 20대 남성이 불을 질러 서장대 2층 목조 누각이 전소됐으며, 약 2년 뒤인 2008년 1월에는 여중생들이 서북각루 앞 억새밭에 불을, 같은 해 4월에는 초등학생들이 창룡문 인근 동북공심돈 앞 잔디밭에서 불장난을 하다 화재가 발생했다.
심지어 같은 해 7월에는 사적 제478호인 화성행궁 내 목조문화재 노래당 현관 입구에 불을 붙이려던 50대 남성이 붙잡히기도 했다.
이처럼 아찔한 화재가 반복됐지만 당시 수원화성의 방재시설은 턱없이 부족했다. 보물 제402호 팔달문과 보물 제403호 화서문에는 일반 건물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화재경보기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소화전 역시 팔달문과 화서문에 각각 1기씩만 설치돼 있었으며, 소화기는 팔달문 4개, 화서문 2개에 불과했다. 목조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한 초기 대응시설조차 충분하지 않았던 셈이다.
그러나 보도 이후 18년이 흐른 현재 수원화성 일대 방재 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수원시는 팔달문과 서장대 등 수원화성 내 목조시설물 곳곳에 CCTV와 무인경비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으며, 관람객이 몰리는 구간을 중심으로 순찰 차량과 관리 인력이 안전 관리에 나서고 있다.
이밖에 ‘세계문화유산 화성 운영 조례’를 마련해 수원화성 내 흡연과 음주 행위 등을 제한하는 한편, 시민들을 ‘화성지킴이’로 위촉해 자율순찰을 강화하는 등 시민 참여형 안전관리 체계도 구축했다.
시는 기존 방재시설을 보완하는 데서 나아가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을 활용한 첨단 재난 대응체계도 도입할 예정이다.
이처럼 과거 방재시설 부족으로 인한 ‘불길’은 잡았지만, 화성행궁이 안고 있던 또 다른 과제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와 관광 인프라 부족이었다.
2016년 7월 중부일보 신병근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화성행궁 인근 행궁동 생태교통마을 커뮤니티센터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커뮤니티센터를 중심으로 한 생태교통마을 홍보와 마을투어 프로그램의 외국어 통역 인력이 부족한 데다, 홍보도 저조했기 때문이다.
실제 당시 1년 동안 커뮤니티센터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116명에 불과했다. 2016년에는 외국인 방문객이 한 명도 없었던 달도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관광안내시설과 숙박시설의 접근성이 떨어지고 관광객이 지역에 머물며 소비할 여건도 충분하지 않아, 수원화성이 체류형 관광지로 성장하기 위한 관광 인프라 부족에 대한 지적이 잇따랐다.
그러나 다시 찾은 화성행궁의 모습은 과거와 달랐다. 행궁동 상권이 외국인 관광객을 맞이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화하면서다.
행궁동 일대 식당과 카페, 기념품숍에는 외국어 메뉴판과 안내문이 비치된 채, 일부 업소에서는 외국어 주문 안내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었다.
관광안내소와 주요 이동 동선에는 다국어 안내판이 설치돼 외국인 관광객이 별도 도움 없이도 행궁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현재 행궁 광장을 비롯한 주요 관람 동선에서는 외국인 관광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복을 입고 행궁을 둘러보거나 휴대전화로 사진을 촬영하는 외국인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지난해 수원시정연구원이 발표한 ‘수원시 외국인 관광객 현황 및 특성’에 따르면 행궁동 외국인 방문객은 2023년 약 15만 명에서 2024년 약 21만 명, 2025년 약 26만 명으로 증가했다. 3년 사이 약 1.7배 늘어난 수치다.
과거 중부일보가 지적했던 방재와 관광 인프라 부족 문제가 시설과 제도의 개선으로 이어지며, 화성행궁은 수원의 대표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최진규·최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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