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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증권사, 세컨더리 펀드로 벤처 회수시장 '새 플레이어' 부상

한국투자증권이 스타트업의 상환전환우선주(RCPS) 펀드 만기 도래 시 구주를 직접 인수해 회수를 지원한 사례나 하나증권이 비상장주식 안전거래 플랫폼을 통해 IT 벤처기업의 장외 매입 거래를 중개한 사례가...

증권사, 세컨더리 펀드로 벤처 회수시장 '새 플레이어' 부상

사진=ChatGPT.

증권업계가 약 2조원 규모의 세컨더리 펀드 조성을 추진하며 벤처 회수시장 활성화에 나선다. 검증된 벤처 지분을 사들여 회수시장 통로를 넓히고 모험자본 공급자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공동으로 1~2조원 규모의 세컨더리 펀드 투자를 추진 중이다. 세부적인 운영 방안은 오는 6월까지 구체화될 예정이다.

이번 논의는 황성엽 금융투자협회 회장이 지난 3월 열린 '자본시장 안정과 정상화를 위한 간담회'에서 증권업계 회수시장 활성화 역할 필요성을 언급한 뒤 본격화됐다.

이후 지난달 황 회장이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나 펀드 조성을 제안했고, 최근 금융위원회 주재로 열린 '금투업권 모험자본 역량 강화를 위한 협의체'에서 증권사 주도 세컨더리 펀드 참여가 공식화 되며 윤곽이 드러났다.

IPO에 갇힌 벤처자금, 새 탈출구는 '세컨더리 펀드'

세컨더리 펀드는 벤처펀드가 보유한 자산이나 기존 출자자 지분을 사들여 투자금 회수를 돕는 펀드다. 회수 방식은 펀드가 보유한 기업 구주를 사들이는 '구주 세컨더리'와 출자자(LP)가 보유한 펀드 지분을 사들이는 '출자지분 세컨더리' 등으로 나뉜다. 국내 시장에서는 구주 세컨더리가 회수시장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세컨더리 펀드는 만기 전 벤처펀드에 유동성을 공급해 초기 투자자의 자금 회수를 돕는 역할을 한다. 투자금이 묶인 LP에게 만기 전 회수 기회를 제공하고 회수된 자금이 다시 벤처투자로 이어져 '투자-회수-재투자'로 이어지는 지속가능한 모험자본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평가다.

증권업계가 세컨더리 펀드 조성에 나선 배경에는 벤처 회수시장 편중 구조가 자리한다. 만기를 맞는 벤처펀드 규모는 빠르게 커지는 반면 회수 통로는 IPO(기업공개)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벤처투자 전자공시시스템(DIVA)에 따르면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벤처펀드 규모는 16조9252억원으로 집계됐다. 2028년까지 만기가 예정된 펀드 규모는 약 34조원에 이른다. 반면 회수시장은 IPO 쏠림 현상이 뚜렷하다. 2020년 24%에 그쳤던 IPO 비중은 지난해 2월 53%까지 늘었다. 같은 기간 매각 비중은 56%에서 33%로, 상환 비중은 10%에서 7%로 각각 낮아졌다.

증시 흐름에 민감한 IPO 시장 특성 상 증시 침체로 시장이 위축되면 벤처펀드 청산과 자금 회수에도 부담이 커진다. 인수합병(M&A), 세컨더리 펀드 등 회수 경로 다변화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증시 호황의 수혜를 입은 증권사들이 IPO에 쏠린 회수 통로를 넓히고 모험자본 공급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선별된 매물' 담는 세컨더리...옥석 가리기는 '필수'

그간 증권사들은 비상장 구주 거래를 중개하거나 일부 지분을 직접 인수하는 방식으로 세컨더리 시장에 개별 참여해왔다. 한국투자증권이 스타트업의 상환전환우선주(RCPS) 펀드 만기 도래 시 구주를 직접 인수해 회수를 지원한 사례나 하나증권이 비상장주식 안전거래 플랫폼을 통해 IT 벤처기업의 장외 매입 거래를 중개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번 펀드 조성은 개별 딜 중심이던 증권사의 세컨더리 투자가 업권 공동 투자로 확대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여러 증권사 자금이 모이면 벤처 회수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효과도 커지고, 이는 모험자본 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이끌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높은 모험자본 시장에서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야 하는 증권업계 입장에서도 반가운 대안이다. 초기 스타트업 투자는 고위험·고수익 성격이 짙어 성장성과 사업성을 갖춘 기업을 가려내는 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세컨더리 펀드는 벤처캐피털(VC) 등이 이미 1차 투자를 집행한 기업을 투자 대상으로 삼는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한 번 검증을 거친 비상장기업에 투자할 수 있어 초기 투자보다 선별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유망 비상장기업과의 네트워크를 넓혀 향후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나 상장 주관 등 굵직한 기업금융(IB) 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다만 검증된 매물이 곧바로 안전한 투자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량 자산뿐 아니라 자금 회수가 지연된 매물이 함께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컨더리 펀드가 증권업계 모험자본 공급 창구로 안착하려면 비상장 자산에 대한 엄격한 옥석 가리기가 선행돼야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시장 확대 물꼬 뜰까…'공정가치 인프라 정비'는 과제

전문가들은 이번 세컨더리 펀드 조성이 국내 벤처 회수시장 저변을 넓히는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미국·유럽 등 선진 시장과 비교해 아직 규모가 작은 국내 세컨더리 시장에서 자본력을 갖춘 증권사들의 참여가 시장 확대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이란 분석에서다.

벤처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공정가치 평가 인프라 정비가 병행돼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세컨더리 거래 대상이 주로 비상장 주식이나 벤처펀드 지분인 만큼 가격 산정이 쉽지 않고 정보 비대칭성 문제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김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세컨더리 시장이 커지면 투자자가 IPO나 M&A까지 기다리지 않고도 중간에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통로가 생겨 초기 벤처투자에 참여하려는 투자자도 늘어날 수 있다"며 "이번 증권업계의 참여는 국내 세컨더리 시장 확대의 긍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비상장 주식은 공정가치 평가가 어려워 평가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인프라가 중요하다"며 "국제적인 가치평가 가이드라인과 글로벌 표준화 흐름에 맞춰 국내 공정가치 평가 인프라를 고도화하기 위한 논의가 활발해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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