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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중동전쟁 석유화학 직격, '채권시장 흔드는 손'

한국은 나프타 수입량의 77%를 중동에 의존하는 구조여서, 해협이 막히는 순간 반도체와 함께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나프타 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주요 석유화학 업체들이 이미...

중동전쟁 석유화학 직격, '채권시장 흔드는 손'

나프타 대란에 신용등급 줄하향 공포, 금융권 30조 익스포저 '빨간불'

4월 WGBI 편입 자금이 '숨통' 역할 주목...전쟁 장기화시 효과↓

중동 전쟁이 한 달을 넘기면서, 석유화학 업종이 두 방향에서 동시에 압박받고 있다. 원료인 나프타가 들어오지 않아 공장 가동을 줄여야 하는 '실물 위기'와, 회사채·기업어음 차환이 막힐 수 있다는 '자금 위기'가 겹친 것이다.

◇ 석유화학 불황에 호르무즈 봉쇄 이슈 겹쳐

30일 주요외신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선제 타격하면서 전쟁이 시작됐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상선을 공격했다. 한국은 나프타 수입량의 77%를 중동에 의존하는 구조여서, 해협이 막히는 순간 반도체와 함께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나프타 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주요 석유화학 업체들이 이미 생산량을 대폭 줄인 결과, 현재 재고만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은 약 2주에 불과하다. 정부는 3월 27일 자정을 기해 '나프타 수출제한 및 수급 안정을 위한 규정'을 관보에 고시하고 즉시 시행에 들어갔다. 국내에서 생산된 모든 나프타의 수출이 전면 금지됐고, 이미 계약된 수출 물량도 예외 없이 국내 수요처로 돌려진다. 이 조치는 5개월간 유지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월 15일 "전쟁 이전부터 한국과 일본의 석유화학업체들이 중국발 만성적 공급과잉 때문에 시설 가동을 줄이고 있었는데, 나프타 품귀까지 겹쳐 '설상가상'에 처했다"고 짚었다.

원자재 정보업체 스파르타 커모디티스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 모두 나프타 사용량의 약 3분의 2를 수입으로 충당하며, 수입 나프타 가운데 중동(페르시아만) 비중이 한국은 60%, 일본은 70%에 이른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중소기업의 나프타 중동 수입 비중은 82.8%였다. 중기硏 노민선 실장은 "정부가 중소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수출 바우처 지원을 확대하고 긴급 유동성 확보를 위한 금융 지원에도 나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29일 "러시아든 다른 나라든 정부가 최선을 다해서 나프타 물량을 확보할 것"이라며, 러시아산 나프타 도입과 관련해 "검토와 일부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의 여파는 공장 가동률에 그치지 않는다. 일회용 배달·포장용품 업계에서는 이미 4월부터 가격 인상 공지가 나왔다. 서울 방산시장의 주요 도·소매업체인 서흥이앤팩은 "원가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며 "4월부터 순차적인 가격 조정이 예상된다"고 공지했다.

문제의 핵심은, 석유화학 업종이 이미 수년째 이어진 불황과 구조조정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중동발 원료난까지 더해지면서, 업체들의 재무 여력이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3월 3일 '미국-이란 전쟁에 따른 산업별 영향' 보고서를 공개하고, 석유화학 업종을 가장 높은 경계 대상 가운데 하나로 분류했다. 같은 달 23일에는 '석유화학산업은 안녕할까?'라는 제목의 리서치를 통해 구조개편 진행 상황을 별도로 점검했다.

한국신용평가도 이달 18일 '미국과 이란의 전쟁에 따른 산업별 영향 점검' 보고서를 내놓으며 모니터링을 강화했다. 같은 사이트에서 이달 17일에는 국내 금융시장 전반에 대한 영향 점검 보고서도 게재했다.

신용등급 하락 공포는 이미 현실로 다가왔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LG화학(AA+), 한화토탈에너지스(AA-), SK지오센트릭(AA-), 여천NCC(AA-), HD현대케미칼(A) 등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이 '부정적' 등급 전망을 받았다. 유준위 한기평 수석연구원은 "부정적 수급 환경 속에서 업계 전반의 높은 신용 위험이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해 하반기 LG화학의 신용등급을 'Baa1(부정적)'에서 'Baa2(안정적)'으로 내렸다. 이는 투자적격 등급의 마지노선에 해당한다. 지난해 기준 총 8개 석유화학 기업이 국내 3대 신용평가사로부터 부정적 등급 전망을 받은 상태였다.

금융권이 석유화학 업계에 물려 있는 돈(위험 노출액)은 30조원에 이른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8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과 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을 소집해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여수 석유화학산업단지 전경. [사진=LG화학]

여수 석유화학단지 구조조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산업통상부는 이달 20일, 여천NCC·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DL케미칼 등 4개사가 참여하는 '여수 1호 프로젝트' 사업재편안이 제출됐다고 발표했다. 핵심은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NCC를 분할해 여천NCC와 통합하고, 중복 설비를 정리하는 것이다.

채권단 지원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한국산업은행은 지난 25일 4개사 채권단을 소집해 설명회를 열었다. 현재 이들 4개사의 기존 채권 규모는 약 1조5000억원이며, 채권단은 4월 3일 결의를 통해 사업재편 대상 기업 선정 여부를 판가름한다. 의결권 기준 75% 이상이 동의하면 즉각 현장 실사에 돌입한다.

채권단 관계자는 "업계의 구조적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기업들의 자구 노력이 선행된 만큼 긍정적인 논의가 예상되나, 대외적인 거시경제 변동성을 실사 과정에서 면밀히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회사채 시장 전체로 보면, 전쟁 발발 뒤 국고채 금리가 요동치면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 비용도 함께 올랐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회사채(무보증·3년) AA- 금리는 3월 9일 3.997%로 연중 고점을 찍었다. 국고채와 회사채 간 금리차(스프레드)는 58.5bp로 벌어졌다. 이달 수요예측에서 대한항공 3년물은 민평 대비 +20bp, 삼성FN리츠 1.5년물은 +29bp에 발행되는 등 '웃돈을 얹어야' 팔리는 사례가 나왔다.

한국은행이 3월 27일 발표한 기업경기조사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드러났다. 4월 기업심리지수(CBSI) 전망은 전월 대비 4.5p 떨어진 93.1로, 비상계엄 여파가 있던 지난해 1월(-7.2p) 이후 1년 3개월 만의 최대 낙폭이었다. 업종별로 보면 화학물질·제품의 업황은 4p, 자금사정은 7p씩 하락했다.

한국기업평가가 지난 24일 개최한 세미나에서도 석유화학은 건설·이차전지와 함께 가장 비우호적 환경에 놓인 업종으로 분류됐다. 한기평의 지난해 등급 변동 분석에 따르면, 석유화학은 건설·부동산신탁과 함께 스프레드 부담이 가장 큰 업종군으로 꼽혔다.

◇ WGBI 편입, 흔들리는 채권시장의 구원투수가 될까

이런 불안 속에서, 4월 1일 시작되는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이 채권시장의 유일한 호재로 떠올랐다. WGBI는 영국 FTSE 러셀이 관리하는 선진국 국채 벤치마크 지수다. 전 세계 연기금과 자산운용사들이 이 지수를 기준으로 자금을 운용한다. 한국의 WGBI 편입 비중은 2.08%로 26개 편입 국가 가운데 아홉 번째로 큰 규모다. 이 지수를 추종하는 글로벌 자금은 2조5000억~3조 달러로 추정된다.

편입은 4월부터 11월까지 8개월간 단계적으로 이뤄진다. 매월 비중이 0.26%p씩 늘어나는 구조다. 시장에서는 이 기간 총 70조~90조원 규모의 자금이 한국 국채시장에 자동으로 유입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월 평균으로 따지면 8조~9조5000억원이 들어오는 셈이다.

메리츠증권은 향후 8개월간 월평균 77억 달러, 총 618억 달러의 유입을 전망했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국고채 시장의 사실상 유일한 호재는 WGBI 편입"이라고 잘라 말했다. 김찬희·고다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지수 추종 자금 유입 자체로 금리 방향성을 좌우할 수는 없겠지만, 2~3분기 중 20~30bp의 금리 안정 효과는 기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기대를 낮춰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금리 상승과 머니무브(자금 이동)로 인해 WGBI를 추종하는 자금의 운용자산(AUM)이 감소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이 경우 한국으로 유입되는 자금 규모는 더 축소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성경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외국인 국채 순매수가 이미 139조6000억원에 달한 점을 고려하면, 상당 수준의 선행 매수가 이뤄진 것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고 말했다.

정부도 대비에 나섰다. 재정경제부는 3월 26일 '채권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하고, 총 5조원 규모의 긴급 바이백(국채 조기 상환)을 시행했다. 3월 27일 2조5000억원, 4월 1일 2조5000억원으로 이틀에 걸쳐 분산 집행했다. 추경을 통해 국채를 순상환하는 것은 2021년 이후 5년 만이다.

픽사베이 제공.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긴급 바이백과 초과 세수를 활용한 국채 순상환 계획은 국채시장에 대한 당국의 강력한 안정화 의지를 피력한 것"이라며 "WGBI 편입을 앞두고 채권시장의 불안정한 흐름을 시정하기 위한 성격도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4월 1일에 맞춰 재정경제부·금융위원회·한국은행·금융감독원·예탁결제원으로 구성된 'WGBI 자금 유입 상시 점검반'도 가동한다.

점검 반장을 맡은 황순관 재경부 국고실장은 "가능한 한 빠르게 첫 회의를 열기 위해 준비 중"이라며 "4월 1일 전후로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채권시장의 향방은, WGBI를 따라 들어오는 외국인 자금의 속도와 규모가 중동 전쟁에서 비롯된 금리 상승 압력을 얼마나 상쇄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석유화학 업종의 경우 회사채 차환과 신용등급 방어가 동시에 걸려 있어, 국채시장의 안정 여부가 이 업종의 자금 숨통에 직결된다”고 말했다.

그는 “WGBI 편입 자금이 국채 금리를 눌러주면 회사채 조달 환경도 따라 나아지지만, 전쟁이 길어지고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대에 고착될 경우 인플레이션 압력이 금리를 밀어 올려 편입 효과를 상쇄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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