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타임스=강나연 기자 | 중동 전쟁과 국제유가 급등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올해 첫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유가 상승 충격을 완화하고 취약계층과 소상공인 지원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신속한 대응을 강조하면서 기획예산처(기획처)와 관계 부처도 주말과 휴일을 반납한 채 추경안 마련 작업에 들어갔다.
추경 규모는 적게는 10조원에서 많게는 2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이 정치권과 민간에서 나온다.
이 대통령이 지난 12일 추경을 '최대한 신속하게 편성해달라'고 지시하자 기획처는 이튿날 관계 부처 회의를 열고 추경 편성에 공식 착수했다.
기획처는 각 부처에서 예산 요구안을 제출하면 즉시 협의에 들어가 추경안을 편성한 뒤 국무회의 심의를 거칠 계획이다.
15일 관가에 따르면 중동전쟁이 추경 계획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국제유가가 급등한 데다 원·달러 환율까지 뛰면서 추가 재정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했다.
예산 당국은 이런 상황이 국가재정법 89조의 추경 편성 요건 가운데 하나인 '경기침체, 대량실업, 남북 관계의 변화, 경제협력과 같은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유가 상승이 민생에 미치는 충격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춰 추경안을 편성할 방침이다. 지원 대상은 서민과 소상공인, 농어민 등 취약계층이 중심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와 함께 석유 최고가격제로 정유사가 부담하게 된 손실을 재정으로 일부 보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석유 최고가격제는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할 수 있는 가격 상한을 정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을 정부가 보전하는 구조다.
최고가격을 장기간 고정하지 않고 2주마다 조정하므로 손실 규모를 일정 수준 제어할 수 있지만 원유 가격 흐름에 따라 손실 보전분이 예상보다 커질 수도 있어 적정 재원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정부는 에너지 취약계층을 위한 에너지바우처 지급 방안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
유가 상승 여파를 직접 받는 유통·물류 업계 지원책과 함께 국제 정세 변화에 취약한 수출기업을 돕는 방안도 발굴한다.
경기 전반이 위축되면 타격이 큰 소상공인과 비수도권 지역을 배려한 정책도 마련한다.
이 대통령은 앞서 "직접지원을 하는 것이 좋고, 또 그중에서도 현금보다는 지역화폐 형태로 지급하면 지역 상권 매출로 전환되며 이중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지난해 반도체 등이 호황을 맞이한 가운데 정부는 추가 국채 발행을 하지 않고 초과 세수를 활용해 추경을 편성하겠다는 방침이다.
세수 풍년 기대 속에 중간 규모 이상의 추경이 거론된다.
업계에 따르면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소속 안도걸 의원(더불어민주당)은 "15조∼20조원 정도"가 적정한 추경 규모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예산실장과 2차관을 지낸 안 의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 합계가 90조원에 이를 수 있고 근로소득세와 증권거래세 실적도 양호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류가격 상승으로 인한 서민·자영업자 부담 증가에 대응하고 소상공인의 전기요금 감면을 위한 에너지 바우처 등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KB증권 역시 최근 보고서에서 이번 추경이 10조원에서 20조원 규모일 것으로 전망했다.
해당 보고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개선으로 법인세가 약 5조3000억원 더 걷힐 수 있으며 법인세와 증권거래세 증가분을 고려하면 초과 세수가 최소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각 부처의 사업 계획을 받아야 추경 규모를 가늠할 수 있으며 현재로서는 결정된 것이나 목표치가 없다고 일단 선을 긋고 있다.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은 KBS 1TV '사사건건'에 출연해 "추경의 재정적 규모가 10조원, 20조원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데 그건 앞서 나간 것"이라며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고, 추경 소요를 재정 당국이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산 당국의 한 관계자는 "각 부처 사업을 보고 중동 상황 극복을 위해 더 필요한 게 있는 살필 것"이라며 "규모는 우리도 정말 모른다"고 예단을 경계했다.
역대 추경 규모를 보면 2006년 10월 국가재정법 제정 이후 편성된 18차례 추경의 총지출 순증 평균은 13조7000억원 수준이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지난해 발간한 '역대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사례와 국회 심의 결과' 보고서와 의안정보시스템 자료를 종합하면 단일 추경으로 세출 순증 규모 최대는 2022년 5월 소상공인 지원과 민생 물가 안정 등을 내걸고 편성된 2차 추경으로 52조4000억원이었다.
당시 정부안 기준으로 사업비 59조4000억원을 늘렸고 지출 구조조정으로 7조원을 줄였다.
규모가 가장 작았던 것은 2018년 청년 일자리 대책을 위해 편성된 3조9000억원이었다.
당국자들은 토요일인 전날에도 예산안 편성을 위한 회의 등 실무 작업에 매달렸다.
이들은 "최대한 빨리"만 강조하며 구체적 추경 시점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주요 기업의 법인세 신고·납부 시한인 3월 말 이전에 추경안이 나올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세수 예측에 시간을 쓰기보다는 급변하는 상황에 빠르게 대응하는 데 방점을 찍겠다는 것이다.
다만 3월 말까지 상황을 살펴보고 세입 경정을 하더라도 정확한 연간 추계는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경기 흐름의 변동성이 큰 데다 기업들이 상반기 법인세를 8월까지 중간예납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당국 한 관계자는 "조속히 (추경안을 마련)해서 국회 제출하려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3월 법인세 실적을 다 보고 세입 경정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을 표명했다.
임기근 기획예산처 장관 직무대행 차관은 추경안 제출 시점에 관해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며 "지금은 휴일을 반납하고 주말에라도 사업을 발굴해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낸다는 말씀밖에 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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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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