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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1 전과자’ 사회적 합의에 앞서 [아침햇발]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 인공지능, 소셜네트워킹서비스는 아이들에게 접근이 쉬운 장난감이고 놀이터다. 사이버 폭력, 불법 성착취 영상의 시청·제작·유포, 성매수와 매매, 마약 구매와 유통 등 손쉽게 범죄로 이어질 수...

‘중1 전과자’ 사회적 합의에 앞서 [아침햇발]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지난 19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에서 열린 ‘형사미성년자(촉법소년) 연령 시민참여단 숙의토론회’에서 시민참여단의 생생하고 적극적인 토론과 논의를 당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정윤 논설위원

동네 무인점포에 또 ‘현상수배’ 전단이 붙었다. 문구류를 계산하지 않고 집어간 모양이다.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을 갈무리한 사진 속 ‘용의자’는 십대 초반으로 보였다. 경찰 현상수배도 체포영장이 발부된 강력범죄자나 가능한데, 몇천~몇만원을 훔친 미성년 절도범을 동네방네 수소문하는 사적 수배다. 2017년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첫 무인편의점이 들어선 이래, 10년도 안 돼 너무도 익숙해진 살풍경이다.

무인점포는 한국 사회의 높은 신뢰 수준과 폐회로텔레비전 기술, 세금으로 유지되는 공권력에 기댄 사업 모델이다. 대부분 불황형 소자본 창업인지라, 영세 자영업자들의 안전 관리 무임승차를 지탄할 생각은 없다. 다만 자의적인 수배 전단만큼은 아동·청소년 범죄에 대한 어른들의 무책임을 보여주는 상징 같아서 볼 때마다 불편함을 느낀다.

아이를 키울 때 울타리를 넓게 쳐주고, 울타리 안에서는 풀어주라는 말이 있다. 아이가 다치거나 사회적 규범을 어기지 않도록 부모와 사회가 최소한의 안전선을 만들어주되, 울타리 안에서는 간섭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고 실패하며 배우게 두라는 얘기다.

뇌과학과 발달심리학에서는 16살쯤 논리적 추론과 인지능력이 성인과 유사한 수준이 된다고 본다. 충동을 조절하고, 미래를 위해 현재 행동을 조절하는 능력을 담당하는 전두엽은 20대까지 성숙한다. 아이니까 남의 물건을 훔쳐도 된다는 얘기가 아니라, 아이들이 성인에 비해 위험 선택과 충동적 행동에 취약하다는 뜻이다. 2024년 기준 소년범죄자(만 10~19살) 가운데 절도범 비율이 26.2%고, 촉법소년(만 10~14살 미만) 중 절도범은 50.1%를 차지하는데 그 대다수 유형이 무인점포 절취다. 무인점포 수배 전단은 어른의 관리·감독 부재 속에서, 미성숙으로 인한 그릇된 선택의 책임을 오롯이 아이들에게 지우는 사회적 방임이다.

무인점포뿐이겠는가.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 인공지능, 소셜네트워킹서비스는 아이들에게 접근이 쉬운 장난감이고 놀이터다. 사이버 폭력, 불법 성착취 영상의 시청·제작·유포, 성매수와 매매, 마약 구매와 유통 등 손쉽게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도구를 쥐여줘놓고, 부작용을 막을 실효성 있는 대책은 내놓지 않는다. 우울증·조울증·불안장애·품행장애 등 급증하는 정신건강 문제는 비행과도 상관관계가 높다. 하지만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가정의 위기와 교실의 붕괴, 과도한 학업 및 관계 스트레스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할 사회적 처방은 감감무소식이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지난 2월24일 국무회의에서 “아이의 실패는 사회의 실패”라며 “먼저 우리가 최선을 다했는지 점검해봐야 한다”고 했던 이유다.

촉법소년의 연령 상한을 한살 낮추는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 대신 소년원 송치나 보호관찰 등 ‘보호처분’을 받는 나이를 만 10~14살 미만에서 만 10~13살 미만으로 하향 조정하자는 것이다. 쉽게 말해 ‘중1부터는 큰 잘못을 저지르면 형사처벌을 받고 전과자가 된다’는 말이다.

요즘 아이들은 신체 발육과 지적 발달 수준이 높고, 범죄도 흉포화되고 있어 형사처벌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논리가 우세하다. 우리 사회가 어린아이들에게 이리도 박절한 엄벌주의로 흐르기까지, ‘보호처분’이라는 용어가 큰 사회적 오해를 낳았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중대 범죄를 저지른 촉법소년은 형법상 구속, 형사재판, 구치소 수감과 강도가 다를 뿐, 소년법에 따라 ‘보호’와는 거리가 먼 ‘처벌’을 받는다. 소년분류심사원에 격리돼 최대 두달 심사를 거치고, 소년재판을 받으며, 최장 2년 소년원에 간다. 집을 떠나 법이 지배하는 공간에 갇힌 촉법소년들은 실제로 이 모든 과정을 처벌로 받아들인다.

전문가들은 촉법소년 연령을 낮춰도 형사처벌을 받는 만 14살 소년범은 1% 미만일 것으로 본다. 범죄 예방이나 재사회화 효과에 대한 기대도 낮다. 이런 상징적 입법이라도 원하는 국민 법감정의 근저에는 ‘피해자를 위한 정의가 없다’는 공분이 자리잡고 있다. 현행 소년법에는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와 배상, 재발방지 약속을 담보하는 절차가 미흡하다. 또 증거인멸 우려가 있어도 가해자에 대한 강제수사가 불가능하고, 판사가 허용하지 않으면 피해자 진술 기회도 보장되지 않는다. 가해자가 어떤 처분을 받았는지 피해자에게 알려주지도 않는다. 촉법소년 연령 인하라는 실효성 낮고 우려가 큰 대책보다는, 피해자 관점이 배제된 제도적 공백을 메우는 노력이 ‘피해 회복’으로 이어지는 진짜 사법 정의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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