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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로 정권의 명운에 ‘결정적 영향’을 끼쳐온 서울·수도권 아파트값 오름세가, 여전히 꺾이지 않으면서 “파격적인 공급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럴 때마다 ‘모범 사례’로 거론돼온 것이 노태우 정부가 추진했던 저 유명한 ‘주택 200만호 건설 사업’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주택 200만호에 대해 처음 언급한 것은 대통령 후보 시절이었다. 서울 도시계획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황당했던 기억을 “말이 쉽지 주택 200만호는 당시 서울시내 전체 주택 수와 맞먹는 숫자였다”(‘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5권)는 말로 정리했다.
하지만 정부엔 나름 매우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1980년대 중후반 ‘3저 호황’으로 주택·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주요 도시의 전월세 가격이 무섭게 뛰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도시 근로자들의 생활이 크게 악화됐다. 사실 더 큰 문제는 그로 인해 생기는 엄청난 사회 갈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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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은 취임 3개월 만인 1988년 5월25일 모두가 잊고 있던 공약이던 ‘주택 200만호 건설 계획’을 전격 발표했다. 언론은 용두사미로 끝난 전두환 정권의 ‘주택 500만호 건설 사업’(1980년 발표)을 떠올리며, 이를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국민들이 변화를 체감하기 시작한 것은 이듬해 4월27일, 분당·일산 등 신도시 건설 계획이 발표된 뒤였다. 손 명예교수는 이 사업이 △지역별 배분(200만호 가운데 수도권 건설분은 90만호) △도시 영세민·근로자 배려(영구임대주택에 25만호 배분) △민간주택건설업자 지원 등의 특징을 갖추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나마 서울·수도권에 파헤칠 만한 땅이 많던 시절이었다. 수도권 90만호의 주축은 이른바 ‘5개 신도시’(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였고, 서울에선 수서 지구가 건설됐다. 정부가 온갖 무리를 한 끝에 기적처럼 목표 연도(1992년)를 1년 앞선 1991년까지 214만호가 건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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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사업이었던 만큼 적잖은 부작용이 남았다. 가장 큰 문제는 부실공사였다. 골재가 부족해 바닷모래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육사(노태우)가 해사(바닷모래)로 공사를 했다’는 말이 나왔다. 숫자 맞추기에 급급하다 보니 다가구 주택이 마구잡이로 건설됐다. 단군 이래 최대 주택 공급이 이뤄졌는데 수도권 변두리의 주거 환경은 오히려 악화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수서 비리 등 대형 뇌물 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정부가 꼼꼼히 참고해야 한다.
길윤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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