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천소진 기자]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한 상법 개정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기업들이 잇따라 행동에 옮기고 있다. 주주가치 희석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해소한다는 것이 골자지만, 대규모 소각으로 인해 기업의 경영 자율성이 위협받을 뿐만 아니라 재무 부담도 떠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주 내용으로 한 3차 상법 개정이 시행됐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자사주를 취득할 시 1년 내로, 이미 보유 중인 자사주는 1년 6개월 내로 소각해야 한다.
발행 주식 수를 줄여 기존 주식 가치를 높이고,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해 주주가치를 제고한다는 목적이다.
상법 개정에 맞춰 기업들은 이달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SK네트웍스는 보유 중인 자사주 중 약 2071만주를 소각할 계획이다. 향후 핵심 인재 채용 및 임직원 보상 등에 활용할 약 3%를 제외한 자사주 전부를 소각하기로 했다.
발행주식 총수(약 2억2000만주)의 9.4% 규모로, 이번 자사주 소각 계획을 이달 말 이사회에서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KCC는 임직원 보상에 활용할 자사주를 제외하고, 보유 중인 나머지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기로 했다. 발행주식 수의 17.2% 수준인 자사주 중 4%를 제외한 나머지(117만4300주)가 소각 대상이다.
KCC가 자사주를 소각하는 것은 2003년 이후 약 23년만이다. 이번 자사주는 내년 9월까지 분할 소각할 예정이다.
포스코홀딩스는 지난달 6351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한다고 발표했다. 2024년 발표한 3년간 총 6%, 매년 2% 자사주 소각 계획에 따른 것으로, 3년간 약 1조7176억원 규모의 주주환원 정책을 완료하게 된다.
이밖에도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 중 자사주 8700만주를, SK는 보유 자사주 약 1798만주 가운데 임직원 보상 활용 목적을 제외한 약 1469만주를 소각한다.
HD현대도 주총 주요 안건으로 자사주 소각 관련 안건을 올린 상태다. HD현대가 보유한 자사주는 832만4655주로 전체의 약 10.5% 비중이다.
이들 모두 자사주 소각을 통해 기업과 주주가치를 동시에 높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단기적으로는 주가 상승 등 긍정 효과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영권 방어력 약화와 재무 부담이 따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제한되지만, 제3자에게 매각하면 의결권이 회복된다. 이에 우호 세력에게 자사주를 넘겨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의무적으로 소각하면 경영권 방어 수단이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기업들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 추진 당시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방어 장치 도입도 필요하다고 꾸준히 어필했으나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금전적인 측면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합병 등 특정 목적으로 취득한 자사주까지 소각하면 자본금이 줄어 사업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소각 시 발생할 세금 문제도 골칫거리다.
특히 기업들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응하기 위해 신성장동력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에서, 자본금이 줄어들면 신사업 투자에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상법 개정으로 기업들의 주주환원 취지의 자사주 소각이 확대되고 있다”면서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비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자사주 비중이 높은 기업들은 당장 전량 소각하기보다는 대안을 마련한 후 순차적으로 소각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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