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과거 1960~1970년대에도 <주간한국>은 ‘주간 이슈’라는 타이틀로 한 주간의 이슈를 독자들에게 전달했습니다. 2026년 창간 62주년을 맞은 주간한국은 올해도 매주 가장 뜨거운 이슈를 선정해 심층적으로 조명해 보려고 합니다. 이번 주 주제는 배우 하영의 가족사 발언을 계기로 불거진 조상의 친일 행적 논란과 연좌제 논쟁입니다.
1918년 12월10일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실린 하영의 증조부인 친일파 의사 안상호의 가족 사진. 사진=국립중앙도서관·연합뉴스
[주간한국 조채원 기자] 지금 누리는 지위와 편의가 과거 조상의 부끄러운 행적에서 비롯됐다면 어떨까.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라 해도 그로 인한 혜택을 지금 누리고 있다면 조상의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친일 행적을 향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서 기본권과 부의 세습적 지위라는 오래된 질문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우리 본관은 몇 명?”…개인 개발자가 만든 ‘친일파 스캐너’ 확산
사건의 발단은 배우 하영(☞정정 안내 : 본지는 23일 오전 해당 기사에 ‘사건의 발단은 걸그룹 ㅇㅇ 출신 배우 하영의 가족사 발언에서 비롯됐다’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확인 결과 배우 하영은 언급된 그룹 출신이 아니라는 사실이 파악됐습니다. 이에 해당 그룹 출신 동명 멤버와 배우 하영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존 보도 내용을 바로 잡습니다.)의 가족사 발언에서 비롯됐다. 하영은 지난 7일 KBS2 예능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해 증조부부터 조부·부친·언니까지 이어진 ‘4대째 의사 집안’이라고 소개하며 집안의 부와 지위를 과시했다. 이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며 증조부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행적이 알려지며 논란이 번졌다. 안상호는 1916년 조직된 친일 단체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과 1909년 이토 히로부미 추도준비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실이 확인됐다.
하영 소속사는 처음엔 “온라인상 제기된 친일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냈다가 논란이 커지자 안상호의 대정친목회 활동 기록을 확인했다며 입장을 번복했다. 하영도 “가족사를 경솔하게 언급했다”며 사과했다.
거듭된 논란에 조상의 친일 행적을 확인하는 사이트도 등장했다. ‘친일파 스캐너’는 성씨와 본관을 입력하면 같은 본관의 독립유공자와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을 보여준다. 해당 사이트는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에 등록된 독립유공자 공적 정보 1만 9059명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결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1006명의 명단을 대조해 결과를 보여준다. 특정 검색 결과가 실제 본인의 조상인지 확인해주는 방식은 아니다.
사이트 측은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이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며 “헌법 제13조 3항의 연좌제 금지 취지에 따라 조상의 행적이 후손 개인의 책임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안내했다.
성씨와 본관을 입력하면 같은 본관의 독립유공자와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을 보여주는 '친일파 스캐너'. 사이트 갈무리
◇강동원서 이지아까지…반복되는 미화와 뒤늦은 사과
연예인 조상의 친일 논란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배우 강동원은 2017년 3월 1일 한 영화 매체가 정리한 ‘친일파·독립운동가 후손 배우’ 기사로 논란에 휩싸였다. 외증조부 이종만은 2009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로 1930년대 일본군에 전쟁 위문품과 헌금을 보내고 친일 단체에서 활동한 이력이 확인됐다. 강동원이 2007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종만을 “증조할아버지도 예술인이자 대동기업 회장이었는데 금광을 했다”고 소개한 발언까지 재조명되며 비판이 커졌다.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가 관련 게시물 삭제를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며 오히려 반발을 키웠고 강동원은 닷새 만인 3월 5일 직접 사과문을 내고 “과거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배우 이지아 또한 조부 김순흥이 1937년 국방헌금 1만원을 종로경찰서에 헌납한 것을 비롯해 조선군사후원연맹 사업비·군용기헌납 대금을 낸 이력으로 2009년 친일인명사전 경제 부문에 등재됐다. 이지아 측은 지난해 2월 21일 소속사를 통해 “후손으로서 사죄드린다”며 어릴 때 가족과 연을 끊고 자립했다고 설명했다.
◇17년 걸린 이해승 소송…12월 재출범하는 2기 조사위 과제
친일파 후손을 향한 대중의 분노 배경에는 친일 재산 환수를 여전히 매듭짓지 못했다는 현실도 있다. 일제 부역의 대가로 형성된 경제적 부와 사회적 자본이 불평등한 출발선으로 작용해 사회적 박탈감을 일으킨다는 이유에서다.
이우영 그랜드힐튼호텔 회장은 조선 왕족 출신 친일파 이해승의 손자다. 정부는 2007년 조사위 결정에 따라 이 회장 측에 토지 환수를 추진했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12월 19일 138필지 중 1필지만 국가에 반환하라고 판결해 사실상 정부 패소로 마무리됐다. 대법원은 확정판결이 난 재산을 개정법으로 소급해 다시 국가에 귀속시킬 수 없다는 법적 안정성 원칙을 근거로 들었다. 2007년 조사위 결정부터 최종 확정까지 17년이 걸렸다.
이에 정부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오는 12월 3일 시행하면서 조사위원회를 16년 만에 다시 가동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국가에 귀속된 친일 재산을 더 책임있게 관리해 그 재원이 독립유공자와 유가족에 대한 예우와 지원에 온전히 쓰일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지난 6월 설립준비단을 발족해 출범을 준비 중이다. 새 특별법은 후손이 재산을 이미 제3자에게 처분했더라도 그 처분 대가까지 추적해 환수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고 민간 제보를 유도하는 포상금 제도도 새로 담았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2기 조사위 출범으로 최소 325억원 이상의 친일 재산을 추가로 환수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친일파 조상을 둔 후손에게 사회적 책임을 지우는 것을 두고 지나친 비난이나 연좌제 적용은 삼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직업 선택의 자유나 재산 형성 등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어서다.
익명을 요구한 한 헌법학자는 “헌법 제13조 3항은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해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며 “태어나기도 전 조상의 잘못으로 현재의 직업 활동을 제한받는 것은 법치주의 원칙에 명백히 어긋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론의 비난과 법적 불이익은 구분해야 하지만 사실상의 활동 제한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양상은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조채원 기자 cwlight22@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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