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을 성폭행할 목적으로 납치하려다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장윤기(23)의 재판에서 피고인 측이 검찰이 추가로 제출한 증거 일부에 대해 “공소사실과의 연관성이 낮다”며 입증 취지를 부인했다. 피해 학생의 부모는 법정에 직접 증인으로 출석해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해 달라”고 호소했다.
광주지법 제13형사부(재판장 이정호)는 27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강간등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장윤기에 대한 3차 공판을 열었다.
이날 재판은 검찰이 추가로 제출한 증거에 대한 조사와 증인신문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성폭력 사건의 특성과 증인 보호 필요성 등을 고려해 증인신문은 물론 영상과 서류를 포함한 증거조사 모두 비공개로 이뤄졌다.
증인으로는 장윤기에게 살해당한 이채원(16) 학생의 부모와 범행 현장에서 이채원 학생을 도우려다 장윤기의 흉기 공격을 받고 중상을 입은 남고생 등이 출석했다.
남고생은 사건 당시 현장에 도착해 목격한 상황과 장윤기와 마주친 뒤 공격당한 경위 등을 진술했다. 남고생은 장윤기가 당황한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휴대전화를 달라고 요청한 뒤 119에 신고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증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이채원 학생의 부모 중 한 명만 증언할 예정이었으나 재판부의 양해로 부모 모두 증인석에 섰다.
유족은 진술을 통해 “아무런 연관도 없는 가해자의 잔혹한 범죄로 소중한 딸의 생명을 빼앗겼고 가족의 삶도 완전히 파탄 났다”며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 자체가 고통이고 지옥”이라고 밝혔다. 이어 “죽은 딸은 돌아올 수 없는데 살아 있는 가해자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다면 남겨진 가족에게 또 한 번 사망 선고를 내리는 것과 같다”며 “가해자가 이루지 못한 성범죄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저지를 수 있다는 두려움을 떨칠 수 없다. 또 다른 무고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가해자를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할 수 있는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이 새로 제출한 증거를 놓고 피고인 측과 피해자 측의 해석도 엇갈렸다.
추가 증거에는 장윤기의 카카오톡과 문자메시지, 휴대전화 메모장, 지인과의 대화 녹취록, 차량 블랙박스 음성파일, 수사 영상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장윤기 측 법률대리인은 증거 자체에는 동의하면서도 일부 증거가 성적인 범행 성향이나 공소사실을 뒷받침한다는 검찰의 입증 취지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휴대전화 대화 내용을 보면 친구들이 먼저 성적인 대화를 하거나 이를 유도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장윤기는 이에 호응하는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장윤기 측은 “공소사실 자체를 다투는 것은 아니다”며 “일부 증거가 공소사실을 입증하는 자료로 충분한 관련성을 갖고 있는지를 다투는 취지”라고 밝혔다. 관련 의견은 추가 서면으로 재판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은 “대화 자체가 있었던 사실은 인정하면서 단순히 친구들과 장난스럽게 주고받은 것이고 왜곡된 성 인식을 보여주는 자료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라며 “피해자 측에서는 피고인의 왜곡된 성 인식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모습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이 제출한 자료에는 장윤기가 차량에 동승한 여성들과 나눈 일상적인 대화를 블랙박스에서 자신의 휴대전화로 여러 차례 옮겨 별도로 보관한 정황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 측은 대화 내용 자체는 평범할 수 있지만 특정 여성들의 음성파일을 반복해서 휴대전화로 옮겨 보관한 행위와 그 목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은 “피고인이 현재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자신에게 불리한 일부 수사 단계 진술이 증거로 사용되지 않도록 부동의하거나 일부 증거의 입증 취지를 부인하고 있다”며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 상황에서 일부 증거의 성적 연관성을 부인하는 것은 결국 강간등살인죄의 법정형 가운데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선택하도록 재판부를 설득하려는 취지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장윤기는 이날 별도의 발언을 하지 않았다. 장윤기는 법정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나 비공개 증인신문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증인 보호를 위해 퇴정해 증언을 직접 듣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 재판은 오는 8월 31일 오후 2시에 열린다. 재판부는 이날 장윤기에 대한 피고인신문과 남은 증거조사를 진행한 뒤 검찰의 구형과 변호인 최후변론, 피고인 최후진술까지 마무리하는 결심공판을 진행할 예정이다.
장윤기는 지난 5월 5일 0시 10분께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월계동의 한 보행로에서 이양을 성범죄 목적으로 뒤쫓아 살해하고, 비명을 듣고 달려온 남고생에게 흉기를 휘두른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공소사실에는 이양을 살해하기 이틀 전 아르바이트 동료였던 베트남 국적 여성(26)을 성폭행하고,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며 청소년 여성의 신체를 불법 촬영하는 등 다수의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도 포함됐다. 초동수사 과정에서 주요 증거가 누락되거나 은닉됐다는 의혹이 검찰 보완수사에서 드러나면서 검찰과 경찰이 각각 진상규명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종찬기자 jck4151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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