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訓民正音)
28자의 우리나라 글자의 명칭. 또는 이것을 반포하려고 만든 책
訓 : 가르칠 훈, 民 : 백성 민, 正 : 바를 정, 音 : 소리 음
▲ 조원기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 청주지회장
△ 지난 10월 9일은 한글날이었다. 훈민정음 28자 체계는 세종대왕께서 심혈을 기울이고, 신묘한 지혜로 창제한 불멸의 금자탑이고, 특히 아래 아(ㆍ)는 언어음운학자들이 감탄하는 세계 음운 역사상 길이 빛날 문자 발명이다.
△ 명칭
① 훈민정음(訓民正音 : 1443년) -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훈민정음의 정인지 서문)
② 정음(正音 : 1443년) - 훈민정음을 줄여서 부르는 말(세종의 훈민정음)
③ 언문(諺文 : 1525년) - 한자를 진서(眞書)로 하는 것에 대하여 일컫는 말(성현 용재총화)
④ 반절(反切 : 1527년) - 한자음 표기 원리인 반절 같다(최세진의 훈몽자회, 한자학습서)
⑤ 언서(諺書 : 1614년) - 고유어를 적는 문자라는 뜻(이수광의 지봉유설, 백과사전)
⑥ 국문(國文 : 1897년) - 개화기에 국어의 중요성을 자각한 이름(이봉운의 국문정리 문법서)
⑦ 조선어(朝鮮語 : 1905년) - 일본어에 대한 상대적 명칭
⑧ 한글(1912년) - 소리 갈, 크고 위대한 글이다(주시경의 한글, 일대정한 - 一大正韓)
⑨ 이외에도 가갸글, 기억니은, 암글, 중글, 배달말 등등으로 불려지고 있다
△창제 목적은 우리 어음이 중국과 달라 한자를 가지고 그대로 우리말을 적는데 쓸 수 없고, 일반 백성은 말을 나타내고자 하여도 마침내 그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이를 딱하게 여기고, 새로 28자를 만들어 사람마다 쉽게 익히고, 일용에 편하도록 하였다.
배경으로는 당시의 유일한 언어학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의 음운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한편으로는 유교 철학인 송학이론(宋學理論)의 응용도 많았다. 훈민정음 원본은 예의(例義) 해례(解例) 서문(序文)으로 되어 있다. 어제(御製)서문(序文)에 자음 17자의 음가(音價), 모음 11자의 음가(音價), 병서(竝書), 순경음(脣輕音), 방점(傍點) 등에 관한 규정을 설명하였다(7행 11자 총 54자). 초성, 중성, 종성으로 이루어졌다.
△ 초성은 운서(韻書)의 자모(字母)와 같으니 소리 음원에서 생겨났다. 초성 자음 17자는 기본자 ㄱ (어금소리/구개음 -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 ㄴ (잇소리/치음 - 혀가 윗잇몸에 붙는 모양), ㅁ (입술소리/순음 - 입술 모양), ㅅ (잇소리/치음 - 이 모양), ㅇ (목구멍소리/후음 - 목구멍 모양) 5자 + 가획자 ㄱ → ㅋ, ㄴ → ㄷ → ㅌ, ㅁ → ㅂ → ㅍ, ㅅ → ㅈ → ㅊ, ㅇ → ㆆ → ㅎ 9자 + 이체자 ㄹ (잇소리 계열), ㅿ (잇소리 계열), ㆁ (목구멍소리 계열) 3자로 구성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아음(牙音-전통 음운학에서 어금니 안쪽에서 나는 소리인 어금닛소리)의 'ㄱ, ㄲ, ㅋ, ㆁ', 설음(舌音-혀끝과 잇몸 사이에서 나는 혓소리)의 'ㄷ, ㅌ, ㄴ, ㄹ' , 순음(脣音- 입술을 사용하여 소리 내는 자음)의 ‘ 구강음인 ㅂ, ㅃ, ㅍ과 비음인 ㅁ’, 치음(齒音-혀끝을 윗니에 대거나 가까이 대서 내는 잇소리)의 'ㅅ, ㅈ, ㅊ', 후음(喉音-목구멍에서 나는 소리)의 'ㅇ,ㆆ, ㅎ', 반설음(半舌-반혓소리)의 'ㄹ', 반치음(半齒音)의 'ㅿ'이다. 중성은 글자의 가운데에서 초성과 종성을 합하여 음을 이룬다.
기본자로 삼재(하늘·땅·사람)를 본떠 만든 ㆍ, ㅡ, ㅣ 3자를 만들고, 초출자(初出字)는 기본자 두 개를 합쳐 만든 ㅗ, ㅏ, ㅜ, ㅓ 4자를 만들고, 초출자와 기본자(ㆍ)를 다시 더하여 재출자 ㅛ, ㅑ, ㅠ, ㅕ 4글자를 만들어 모두 11자가 된다. 종성은 초성과 중성을 이어서 글자를 이룬다.
△ 훈민정음 창제에는 집현전 학자 최항, 박팽년, 신숙주, 이개, 강희안, 성삼문, 정인지 등이 참여하였다. 정인지는 어문에서 “고인(古人)이 만든 문자를 후세 사람들이 마음대로 바꿀 수 없으며, 중국 이외의 나라에서는 고유문자가 없다고 한자를 빌어 쓰고 있으니 제대로 이치를 알 수 없고, 신라 때부터 써 온 이두가 불편하고, 언어 생활에서는 만분지일도 의사를 전달할 수 없다. 세종 24년 겨울에 세종께서 정음 28자를 만들고, 훈민정음이라 이름을 붙였으니 배우기 쉬워서 하루아침이나 열흘이면 익힐 수 있다. 슬기로운 이는 스승에게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배울 수 있다. 바람 소리, 학 울음, 닭 울음, 개 짖는 소리라도 모두 적을 수 있다. 이 책을 편찬한 자는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상문, 이선로, 강희안, 이개, 정인지 등이며, 이 굴자는 세종대왕의 독창적인 창안에 의해서 창제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직제학 신석조, 직전 김문, 응교 정창손, 부교리 하위지, 부수찬 송처겸, 저작랑 조근 등 7명이 훈민정음과 관련하여 시행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내용은 “또한, 이번 청주 초수리에 거동하시는데도, 특히 연사가 흉년(凶年)인 것을 염려하시어 호종하는 모든 일을 힘써 간략하게 하셨으므로, 전일에 비교하면 10에 8, 9는 줄어들었고, 계달(啓達)하는 공무에 이르러도 또한 의정부에 맡기시어 언문(諺文) 같은 것은 국가의 급하고 부득이하게 기한에 마쳐야 할 일도 아닌데, 어찌 이것만은 행재(行在)에서 급급하게 하시어 성궁(聖躬 : 임금의 몸)을 조섭(調攝)하시는 때에 번거롭게 하시나이가”이었다.
살펴보면 1443년 12월 30일 훈민정음 창작발표, 1444년 2월 16일 운회(고금운회거요 古今韻會擧要) 번역 지시, 1444년 2월 20일 최만리 등 반대 상소(갑자상소), 1444년 2월 28일부터 5월 7일까지 청주 초수리 거동, 1444년 가을 윤 7월 15일부터 9월 26일까지 총 120박 122일, 1446년 9월 29일 훈민정음 해례본 완성 발표에서 나타나듯이 청주에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마무리 및 시험 적용 연구하여 완성 발표한 것을 보면 청주가 훈민정음 창제의 중심지였음을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 훈민정음 해례본은 108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글 창제 후 만든 책으로 월인석보는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과 함께 모두 21권이며, 불교와 연관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해례본의 장수 33은 불교 우주관 33천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훈민정음 보급은 불교가 일등공신이고, 한글 보급은 기독교의 성경 보급이 많은 공헌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한글은 “단순한 알파벳 몇 가지 조합 규칙만으로 무한수에 가까운 표현을 할 수 있는 놀라운 언어”라고 미국의 작가인 펄벅여사가 말한 봐가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1940년 7월 경북 안동군 와룡면 추하리 이한걸씨 집에서 발견된 것을 고 전형필씨가 구입하여 서울 성북동 간송 미술관에 보관 중인데, 1962년 12월 20일 국보 70호로 지정되었다. 5월 15일은 세종대왕의 탄신일이다. 훈민정음을 만든 세종대왕을 민족 전체의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훈민정음 창제에는 집현전 학사 8명이 외에도 세종의 첫째 아들 문종도 세자 시절 “한글 창제에만 매달린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였다. 둘째, 수양대군도 자주 도왔고, 석보상절을 포함한 여러 한글 도서를 간행하였다. 셋째, 안평대군은 목판 인쇄 된 해례본 원고 글씨를 썼다. 둘째 딸, 정의공주는 특정 소리를 어떻게 글자로 표현할지 논의하는데 도움을 주는 등 새로운 문자를 만들겠다는 세종의 큰 뜻을 담은 훈민정음을 만드는 과정에는 가족들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한글 창제 이후 조선의 왕실 여성들은 한글을 폭넓게 사용했다. 대왕대비가 쓴 문서에 왕의 도장(어보)이 찍히기도 하였고, 중전이 영의정에게 한글 명령서를 전하거나 관리들이 중전에게 한글로 보고하고, 중전이 한글로 답하기도 하였다.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여 쓴 수필인 '한중록'은 섬세한 한글 표현이 돋보이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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