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오(端午)
우리나라 명절의 하나
端 : 끝 단, 午 : 말 오
▲ 조원기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 청주지회장
△단오는 매년 음력 5월 5일이며 금년은 6월 19일이다. 순우리말로 수리날(술의일-戌衣日, 수뢰일-水瀨日), 천중절(天中節), 천중가절, 추천절(鞦韆節), 중오절(重午節), 오월절, 단양(端陽) 등 다양하게 불린다. 단오의 단(端)자는 처음 첫 번째를 뜻하고 오(午)자는 다섯 뜻이어서 초닷새(初五日)의 뜻이 되어 1년 중 양기가 가장 강한 날로, 단양이라고 하며 5월 5일은 산에서 자라는 수리치(구설초-狗舌草) 나물을 뜯어 떡을 해 먹는 풍습으로 수릿날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또한 쑥으로 떡을 둥그런 모양으로 만들어 수레바퀴 같아서 수리라고 하였다고 하며, 수리란 우리말의 수레(車)인데 높다(高), 위(上) 또는 신(神)이라는 뜻도 있어서 높은 날, 신을 모시는 날이라는 뜻에서 수릿날이라고 명명하였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단오는 설날, 추석, 한식, 동지와 더불어 5대 명절로 꼽히며, 강릉 단오제가 유네스코 세계 무형유산에 등재되며 국가적 차원에서 보호받게 되어 사라지던 명절에서 대우가 나아졌다. 다른 관련 행사로는 영광법성포 단오제와 경산자인 단오제가 있다.
△ 비가 잦은 계절인 5월이 병마가 기승하는 시기임으로 악귀와 병마를 쫓는 풍습과 농경의 풍작, 풍요를 기원하는 뜻에서 남자들은 씨름을 통해서 힘 자랑과 실력을 뽐내며 우승한 사람은 황소를 상품으로 받으며 천하장사 칭호도 얻었다. 또 택견을 하며 승부를 겨루기도 했다고 한다. 여자들은 상추잎에 이슬을 받아 분을 바르고, 창포물로 감은 머리에 창포 줄기로 비녀를 꼽고 단장하며 그네뛰기를 통해서 자신의 실력을 뽐내기도 하였다. 여름철 명절인 단오의 풍습상 부채를 나누어 주기도 하는데 소년 및 청년에게는 푸른 부채를 주고, 노인이나 상주(喪主)에게는 하얀 부채를 주었다는 속설이 있다.
△ 각 지방마다 별칭이 있는데, 전남에서는 단양수리, 경북에서는 며느리날, 강릉에서는 과부시집 가는날, 삼척에서는 소군둘레 끼우는 날, 동두천에서는 미나리 환갑날이라고 했다고 한다.
△단오날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사이시옷이 들어간 단옷날이 맞는 표기이고, 조선 중종 13년(1518)에는 설날, 추석과 함께 조선의 3대 명절로 정해진 적도 있었다.
△단오의 우리말 명칭인 '수릿날'은 신라 시대부터 있었다고 전해진다. 삼국유사 기이제 2에는 ”지금 풍속에 단오를 차의(車衣)라고 한다“는 주석이 있었다.
차의는 ‘수레(車)+옷(衣)으로 수릿날의 이두(吏讀) 표기이다. 이처럼 단오를 수릿날로 부르게 된 연원에는 여러설이 있는데 그 중에 중국 초나라 회왕 때 굴원이라는 신하가 간신들의 모함으로 조정에서 추방당하자 분개한 나머지 멱라수에서 자결을 하였는데, 그 날이 음력 5월 5일이었고 해마다 이날에 굴원의 제사를 지내던 것이 한국에 전해지어 단오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조선 후기의 학자 김매순이 지은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의하면 이날 밥을 수리(水瀨 : 물의 여울)에 던져 굴원을 제사 지내는 풍습이 있어 ’수리날‘이라고 부르던 것이 후에 발음이 변하여 ’수릿날‘로 부르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 강릉 지방에서 행하여지는 강릉 단오제는 예로부터 영동 지방에서 3~5월 무렵에 지내던 대관령 산신제로부터 연원을 찾고 있으며, 이 산신이 누구인가는 여러설이 있으나 허균의 “성서부부고”에서는 이 산신이 김유신이라고 추측한다. 일부에서는 더 거슬러 올라가 동예의 무천(舞天)과 연관을 짓기도 하며, 단오가 언제 생겨 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반도에 농경 사회가 시작한 시점부터라고 추정된다.
삼국 시대에는 5월에 씨를 뿌리고 나서 풍년을 기원하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풍습이 있었고, 신라에서는 수릿날이라고 하였는데 삼국지 위지 동이전과 후한서 동이 열전에서는 “삼한 사람들은 5월이 되면 씨를 다 뿌리고 난 후 귀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이 때 사람들이 모여서 노래와 춤을 추며 술을 마시고 노는데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의 춤은 수십명이 모두 일어나 줄을 지어 뒤를 따르며 땅을 밟고 몸을 구부렸다가 치켰다하면서 손과 발을 서로 장단을 맞춘다”고 하고 있다. 또한, 힘든 보릿고개를 넘기고 살아난 이들이 축제로서 보리 이삭을 거두는 시기에 맞추어 잔치를 벌였다고도 한다.
△ 조선 시대 중앙 행정기구 중 하나인 공조(工曹)에서는 단오에 부채를 만들었다. 이는 단오선(端午扇)으로 왕실에서 신하에게 하사(下賜)하기도 하고 신하가 왕에게 진상(進上)하기도 하였다. 특히, 왕은 신하에게 선물할 때 그들이 여름을 조금 더 시원하게 보냈으면 하는 어진 마음에서 하사하였다. 이 당시에는 냉방 시설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채 만큼 실용성과 편리함을 갖는 소품이 없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제일 받고 싶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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