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B·3T+AI’ 회담…보잉도 H200도 비어 있고 기술만 남았다
조선규의 문제 핵심. 조선규 편집위원
[뉴스클레임].
15일 오전, 에어포스원이 베이징 수도국제공항을 이륙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젠슨 황, 팀 쿡, 일론 머스크 등 16명 CEO가 36시간 방중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내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해결됐다”고 말했지만, 블룸버그 평가는 달랐다. “화려한 의전은 얻었지만, 출발점으로 돌아왔다”는 한 줄이었다.
의전만 화려했다. 인민대회당 앞 21발 예포, 3군 사열, 레드카펫이 깔렸고, 인민해방군 군악대는 ‘YMCA’를 연주했다. 이튿날에는 미국 대통령으로는 이례적인 중난하이 초대가 이어졌다. 시진핑 주석은 정원을 함께 걸으며 장미를 보여주고, 백악관에 심으라며 씨앗을 건넸다. 중국은 트럼프의 취향을 분석했고 이를 외교 무대로 옮겼다. 의전 자체가 협상 수단이 됐다.
CSIS의 스콧 케네디는 회담 직전 이번 의제를 ‘5B·3T+AI’로 정리했다. 미국이 노린 5B는 보잉, 소고기, 대두, 무역위원회, 투자위원회였다. 중국이 지키려 한 3T는 대만, 관세, 기술이었다. 여기에 AI 거버넌스가 추가 의제로 올랐다. 회담 뒤 드러난 결과는 이 틀이 상당 부분 맞았음을 보여준다.
미국이 원한 5B 성과는 거의 남지 않았다. 트럼프는 폭스뉴스에 “중국이 보잉 200대 구매에 합의했다”고 말했지만, 중국 측 공식 발표 어디에도 보잉 언급은 없었다. 보잉 본사도 확인을 거부했다. 대두·소고기 확대도 구체 숫자나 문서가 없다. 반면 중국의 3T는 그대로 유지됐다. 미국의 대만 정책에는 변화가 없었고, 관세는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고 트럼프가 인정했다. H200 반도체 수출 통제는 양자 회담 공식 의제에서 빠졌다. AI 거버넌스도 베센트 재무장관의 인터뷰 언급 수준에 그쳤다. 공동 선언은 나오지 않았다.
반도체가 이번 회담의 핵심을 가장 잘 드러낸다. 미국 상무부는 회담 직전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트댄스 등 10여 개 중국 IT 기업을 화이트리스트에 올려, 기업당 연간 최대 7만5000개의 H200 구매를 조건부 허가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귀국길에 “중국은 H200을 사지 않기로 했다. 자국 기술을 키우려 한다”고 밝혔다. 중국 매체들은 H200 관련 기사를 올렸다가 몇 시간 만에 삭제했다. 화웨이 어센드 910C·910D 등 자국 AI 칩 생태계가 자리 잡는 상황에서, 미국산 칩을 대량 수입을 공개적으로 인정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금융은 미국이 얻은 성과처럼 보인다. 씨티그룹은 100% 단독 소유 증권사 인가를 받았고, 골드만삭스는 교차 투자 채널 확대를 논의했다. 블랙록은 미·중 공동 인프라 펀드를 제안했다. 표면만 보면 중국이 시장을 연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 자본을 자국 금융 시스템 속으로 더 깊이 끌어들인 셈이다. 씨티·골드만·블랙록의 이해관계가 중국 경제와 연결될수록, 워싱턴에서 대중 강경 노선에 제동을 걸 세력도 함께 늘어난다.
보도도 온도 차가 뚜렷했다. 중국 신화사는 “건설적 전략 안정”이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반복하며 회담을 관리했다. 반면 애틀랜틱 카운슬은 “볼거리는 컸지만 성과는 적었다”고 평가했다. 같은 회담을 두고도, 중국은 장기 서사에 초점을 맞추고, 미국은 당장 눈에 보이는 합의 부재를 지적한 셈이다.
이번 회담이 보여준 변화는 단순한 성과 유무가 아니다. 협상 테이블에서 힘의 단위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관세율 몇 퍼센트, 농산물 수입 규모 몇억 달러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 공급망에서 빠질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느냐다. H200을 둘러싼 공방과 중국의 선택은 이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미국은 수출 허가를 카드로 꺼냈지만, 중국은 “사지 않는 선택”으로 맞섰다.
한국이 이 화면에서 읽어야 할 대목도 여기 있다. 미·중 어느 쪽도 ‘영원한 우방’이 아니고, 국익에 따라 움직인다. 이 둘 중 어느 쪽도 한국 없이 반도체·배터리·AI 공급망을 완성할 수 없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기술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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