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산업·문명을 읽는 새로운 시선
[한국강사신문 조석준 칼럼니스트] 강대국의 조건이 달라지고 있다. 한때는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 강한 군사력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었다. 지금은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지구라는 공간을 얼마나 입체적으로 활용하는가, 시간의 흐름을 얼마나 멀리 내다보며 선점하는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미국은 그 전형을 보여주는 나라다. 중동에서 이란과 전쟁을 하는 와중에도 우주 전략을 멈추지 않았다. 미항공우주국 NASA는 2026년 4월 1일 아르테미스 2호를 발사했고, 이는 1972년 이후 처음으로 인간을 다시 달 주변으로 보내는 유인 비행이다. 지상의 분쟁과 외교, 금융과 군사를 동시에 다루면서도 우주를 향한 장기 계획을 이어가는 모습은, 오늘의 패권이 눈앞의 힘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함께 운영하는 능력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스신화에 달의 여신 이름인 ‘아르테미스’ 2호 임무는 단순한 우주 비행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번 임무는 수십만 킬로미터 떨어진 심우주(Deep Space)에서 영상 교신을 포함하고 있다. 약간의 시간 지연을 동반한 채 오가는 영상과 음성은, 인류의 활동 영역이 지구 주변을 넘어 본격적인 심우주로 확장되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방송국 출신으로서 우주인과 지상관제소 간의 영상 토크를 지켜보는 감회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 영상 통신의 성공이 과연 앞으로의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기업의 영역에서도 변화는 뚜렷하다. 일론 머스크는 전기자동차로 산업의 경계를 흔들었고, 스페이스X로 우주발사체를 상업의 영역으로 끌어들였으며, 스타링크 위성통신망으로 전쟁의 양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스타링크는 단순한 통신 수단을 넘어 작전과 정보 흐름에 깊이 연결되었다. 우주 공간은 더 이상 먼 배경이 아니라 산업과 안보, 외교가 교차하는 현실의 무대가 되고 있다.
1970년대 후반 공군기상장교로 복무하며 미국 기상위성사진을 처음 접했다. 이후 1981년 국내 최초 기상전문기자로 KBS에 입사해 오랜 시간 위성자료를 현장에서 활용해 왔다. 위성자료는 단순한 사진이 아니었다. 태풍의 모습을 직접 보고, 대기의 변화를 해석하며, 그 변화가 사람의 삶과 산업 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판단하는 근거였다. 20년 방송 경험이 남긴 감각은 하나다. 세상은 먼저 읽는 자에게 기회를 준다.
'지구경영'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시야의 문제다. 지구와 우주를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경영 자산으로 보고, 시간과 공간, 정보와 기술, 사람과 네트워크를 함께 읽어내는 관점이다.
지구경영을 축구에 비유하면 이해가 쉽다. 축구는 정해진 시간과 공간, 같은 수의 선수로 승부를 겨루는 경기다. 조건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그러나 경기의 내용과 결과는 전혀 다르다. 공간을 먼저 읽고, 동료의 장점과 상대의 약점을 정교하게 조합하며, 흐름을 빠르게 전환하는 팀이 이긴다. 유럽 최고 수준의 팀들은 같은 축구장을 쓰면서도 마치 농구처럼 공간을 촘촘하게 운영한다. 지구경영도 다르지 않다. 같은 지구, 같은 시간, 같은 기술 환경 속에서도 누가 더 넓게 보고 더 빨리 연결하느냐에 따라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갈라진다.
2000년 11월부터 지상 약 400킬로미터 상공에서, 언제나 우주인이 머물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 ISS는 이미 응용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미국, 러시아, 유럽, 일본, 캐나다의 과학자들에 의해 미세중력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단백질 결정, 줄기세포, 인체 변화 연구를 통해 신약 개발과 바이오 산업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우주 실험이 지상의 산업과 비즈니스를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현실적인 이야기다. 중국도 2022년부터 텐궁 우주정거장을 운영하고 있다.
대한민국도 이 흐름 속에서 의미 있는 경험을 쌓고 있다. 2018년 발사된 GK2A 정지기상위성은 단순한 관측 장비를 넘어섰다. 이 위성 데이터를 활용해 네팔의 산사태, 캄보디아의 폭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일부 지역의 침수 위험을 사전에 예측하고 조기경보 시스템을 구축·운영하는 사업이 진행되었다. 한국의 기술과 데이터가 국경을 넘어 재난을 줄이고 생명을 보호하는 데 쓰인 것이다. 실시간 재난재해 정보가 외교가 되고, 데이터가 국제 협력이 되는 새로운 흐름이다.
이러한 흐름은 더 빠르게 확장될 것이다. 일론 머스크가 근래 우주에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겠다는 놀라운 구상을 밝혔다. 데이터가 곧 산업 경쟁력인 시대에, 저장과 처리의 공간을 우주로 넓히겠다는 발상이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빠르게 시작되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9대 원장을 지낸 김승조 박사를 중심으로 우주데이터센터연구회가 발족했고, 필자도 감사로 참여하고 있다. 우주는 이제 관측의 대상을 넘어, 데이터와 산업을 직접 만들어내는 공간으로 전환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조건을 보면 방향은 분명하다. 지리적 영토를 넓힐 수 없는 나라다. 그러나 산업의 영토, 기술의 영토, 문화의 영토는 다르다. 반도체와 휴대전화는 세계 산업과 깊이 연결되어 있고, 한류는 문화적 영향력을 키웠다. 방산이 새로운 축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우주항공과 데이터 인프라까지 더해진다면 물리적 국경을 넘어서는 영향력을 만들어갈 수 있다. 산업과 기술, 외교와 국방, 문화와 정보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시대다. 지구경영은 그 연결을 이해하고 설계하기 위한 틀이다.
날씨를 늦게 읽으면 예보가 늦어지고, 기후변화를 늦게 이해하면 산업의 대응도 뒤따라갈 수밖에 없다. 우주도 마찬가지다. 우주에 늦게 눈 뜨면, 나라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국가가 지구경영에 앞장서야 할 때다.
칼럼니스트 프로필
조석준 칼럼니스트는 서울대학교 대기학과를 졸업하고 공군기상장교로 복무했다. 이후 국내 최초 기상전문기자로 KBS에서 20년간 근무하며 기상과학 프로그램 150편 이상을 제작했고, TV·라디오 생방송에 1만 회 이상 출연했다. 웨더뉴스채널 운영,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CEO과정 교수 및 원장을 거쳐 제9대 기상청장, WMO(세계기상기구) 집행이사를 역임했다.
삼성·SK 등 주요 기업과 정부기관, 대학에서 2,200여 회 이상 강연했으며, 주요 주제는 ‘기후위기시대, 지구경영과 비즈니스 전략’과 ‘기상기후 데이터가 바꾸는 비즈니스의 미래’다. 저서로 『재미있는 날씨 이야기』(1992), 『기온 1도의 변화를 읽는다』(1995), 『기상이 강해야 진정한 선진국이다』(2013), 『기후변화,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2017) 등이 있다.
현재 대한민국 백강포럼 사무총장, 백소회 사무총장, 지구경영과 비즈니스 플랫폼 대표로 활동하며, 우주데이터센터연구회 감사, 콘텐츠와 플랫폼 기업의 경영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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