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공지능(AI) 랠리를 주도하는 엔비디아의 수장,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을 만났다. 두 사람의 만남은 황 CEO가 이날 잠실야구장에서 열리는 두산베어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에서 시구자로 마운드에 오르기 전에 이뤄졌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겸 두산베어스 구단주가 중앙 출입구에서 황 CEO를 맞이해 환영 인사를 건네고 2층에 마련된 접견 장소로 안내해 환담했다. 양사는 향후 AI 관련 접점을 이루는 피지컬 AI 등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CEO의 방한으로 엔비디아와 AI 분야 협력 확대 기대가 높아지면서 두산로보틱스와 두산 주가가 최근 들썩이기도 했다. ㈜두산의 전자 BG(비즈니스그룹)는 엔비디아에 AI 가속기의 핵심 소재인 하이엔드 동박적층판(CCL)을 공급한다.
양사의 협력은 피지컬 AI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황 CEO의 장녀인 매디슨 황 옴니버스 및 로보틱스 제품 마케팅 수석 이사는 지난 4월 두산로보틱스 이노베이션센터를 방문해 이 회사 김민표 대표와 피지컬 AI 기술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황 CEO는 이날 엔비디아 창립 연도(1993년)를 의미하는 93번을 새긴 두산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올라 한국 야구팬과 인사했다.
황 CEO가 이번 방한 중 택한 핵심 회동 장소로 최고급 호텔도, 으리으리한 사옥도 아닌 강남 한복판의 ‘PC방’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사 크래프톤·엔씨소프트 수장들과 나란히 PC방에 등장한 그의 파격 행보 이면에는, 엔비디아의 ‘뿌리’인 게임 산업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냄과 동시에 K-게임사들과 끈끈한 ‘AI 동맹’을 전 세계에 과시하려는 고도의 전략이 숨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업계에 따르면 황 CEO는 이날 오후 서울 강남구 신논현역 인근 PC방을 잇달아 방문해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연달아 회동했다.
크래프톤과의 만남에는 장태석 ‘배틀그라운드’ 총괄 PD와 이강욱 최고AI책임자(CAIO)가 동석했다. 이어 길 건너편 PC방으로 자리를 옮긴 황 CEO는 김 대표와 함께 ‘아이온2’ 라이브 방송에 깜짝 출연, 직접 경품 추첨을 진행하며 현장에 모인 게이머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끌어냈다.
주목할 점은 이날 양측 경영진 간의 무거운 비즈니스 협상은 생략됐다는 점이다. 황 CEO는 각 PC방에 20~30분 남짓 머물며 취재진과의 질의응답 없이 자리를 떴다. 실무적인 대화보다는 대외적인 ‘상징성’에 무게를 둔 쇼맨십에 가깝다.
이는 한국 게임업계 중 AI 도입에 가장 속도를 내고 있는 크래프톤, 엔씨와의 친밀감을 시장에 각인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현재 두 회사는 게임 개발로 축적한 AI 역량을 로봇의 ‘뇌’를 구축하는 ‘피지컬 AI’ 영역으로 확장 중이다. 엔씨는 자회사 NC AI를 통해 피지컬 AI 학습용 월드 파운데이션 모델을 고도화하고 있으며, 크래프톤 역시 자회사 ‘루도 로보틱스’를 설립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합작회사를 추진하는 등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황 CEO의 유별난 ‘PC방 사랑’은 엔비디아의 차세대 하드웨어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이번 방한 기간 그는 지난 5일 입국 직후 홍대입구역 인근의 ‘T1 베이스캠프’를 찾아 e스포츠의 전설 ‘페이커(이상혁)’를 만나는 등 총 세 차례나 PC방을 찾았다.
엔비디아는 최근 CPU와 GPU를 통합한 차세대 칩셋 ‘N1X’ 기반의 PC 브랜드 ‘RTX 스파크’를 공개했다. 기존 x86 아키텍처를 벗어나 Arm 기반으로 설계된 이 칩셋은 네트워크 연결 없이도 기기 자체에서 AI를 구동하는 ‘온디바이스 AI’에 특화돼 있다. 게임 내에 AI 언어모델을 내장하려는 게임업계의 최신 트렌드와 완벽한 찰떡궁합을 자랑한다.
과거 2000년대 초반, 황 CEO는 한국의 용산 전자상가와 PC방을 직접 발로 뛰며 영업을 뛴 일화로 유명하다. 당시 고사양 PC를 대량으로 소비하던 한국의 PC방 시장을 집중 공략한 덕분에 강력한 경쟁사였던 ATI를 제압하고 현재의 GPU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