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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젠더로 읽는 대전] 여성친화도시가 감춘 숫자

대전의 주력 산업인 IT·과학기술 분야와 건설업 등 고임금 직종은 남성 편중이 두드러진다. 반면 여성들은 보건·복지, 서비스업 등 상대적으로 저임금 직군에 집중돼 있다. 이른바 '업종 분리'가 임금격차를 고착화하는...

[젠더로 읽는 대전] 여성친화도시가 감춘 숫자

보이지 않는 성별임금격차를 드러낼 때 성평등한 대전이 시작된다

AI 생성 이미지.

대전시는 ‘여성친화도시’로 지정되어 있다. 지역정책과 발전과정에 여성과 남성이 균형 있게 참여하고, 여성의 역량 강화는 물론 돌봄과 안전까지 시정 전반에 반영해야 한다. 그러나 이 이름 뒤에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불편한 현실이 있다. 바로 성별임금격차다.

대전시는 2025년 성별임금격차 연구보고서의 관련 데이터를 비공개 처리했다. 정작 시민이 알아야 할 핵심 지표를 공개하지 않은 셈이다. 현재 공개된 최근 자료를 보면, 2022년 기준 대전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53.4%로 남성 73.1%보다 19.7%포인트 낮다. 이것만으로도 지역 여성의 노동 현실이 결코 평등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국 단위 통계는 더 분명하다. 여성가족부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공시대상 회사의 성별임금격차는 30.7%로 나타났다. 남성 1인당 평균임금이 9780만원인데 비해 여성은 6773만원에 그쳤다. 공공기관 역시 격차는 20.0%였다. 남성 평균임금은 7267만원, 여성은 5816만원이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격차가 나이가 들수록 더 벌어진다는 점이다. 이는 단지 출발선의 차이가 아니라, 경력의 축적, 승진 속도, 직무 배치, 돌봄 부담이 시간이 갈수록 여성에게 더 불리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별임금격차의 원인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여전히 구조적 차별이 놓여 있다. 대전의 주력 산업인 IT·과학기술 분야와 건설업 등 고임금 직종은 남성 편중이 두드러진다. 반면 여성들은 보건·복지, 서비스업 등 상대적으로 저임금 직군에 집중돼 있다. 이른바 ‘업종 분리’가 임금격차를 고착화하는 것이다. 여기에 경력단절과 돌봄 부담, 승진 기회의 불균형까지 겹치면서 격차는 더욱 깊어진다.

이 같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성별임금공시제다.

김난희| (사)대전여민회 공동대표

기업과 기관이 성별에 따른 임금 수준, 근속연수, 직급별 분포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는 제도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주요 국가들은 이미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 이를 의무화하고 있고, 제도 시행 이후 실제 임금격차 완화 효과도 확인되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격차가 존재하느냐”를 두고 소모적으로 논쟁하는 일이 아니다. 어떻게 공개하고, 어떻게 줄여나갈 것인가를 논의해야 할 때다.

정부도 최근 고용평등공시제의 법적 근거 마련과 공시 시스템 구축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국회에서도 공공기관과 일정 규모 이상 민간기업이 직종·직급·고용형태별 남녀 인력 구성과 임금 수준, 격차 해소 계획을 제출·공개하도록 하는 법안이 추진 중이다. 유럽연합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채용 단계의 임금정보 공개, 동일가치노동 평균임금 정보 요구권, 설명하기 어려운 5% 이상의 격차에 대한 공동 임금평가 의무까지 제도화했다. 이제 성별임금격차 문제는 더 이상 선언으로 다룰 일이 아니라, 공개와 시정의 제도로 접근해야 할 과제가 됐다.

지역 차원의 선도 사례도 이미 나왔다. 제주도는 2026년 공공기관 성평등 임금공시를 처음 시행해 산하 17개 공기업과 출자·출연기관의 성별임금격차를 직급별, 직종별, 재직기간별, 임금항목별로 공개했다. 그 결과 중위임금 기준 22.22%, 평균임금 기준 25.68%의 격차가 확인됐다.

제주도는 이를 바탕으로 기관별 맞춤형 컨설팅, 경영평가 지표 개선, 보수·인사 규정 정비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 사례는 분명한 메시지를 준다. 제도가 완성되기를 기다리기보다, 지역이 먼저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전도 더 이상 “국가 제도가 정비되면 따라가겠다”는 태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여성친화도시를 말하려면, 먼저 보이지 않던 불평등을 데이터로 드러내야 한다. 숫자로 확인하고, 제도로 개선하고, 행정이 책임 있게 응답해야 한다.

고용평등 임금공시제 도입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동시에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대전이 진정한 여성친화도시, 나아가 성평등 도시로 나아가려면 성별임금격차를 더 이상 감춰진 통계로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그 격차를 지역의 구조적 문제로 인정하고, 공개와 개선의 제도로 응답해야 한다. 대전형 성별임금공시제는 바로 그 변화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김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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