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타임스 = 심은혜 기자
국내 화장품업계에서 인공지능 도입의 무게중심이 생산 현장을 넘어 연구개발과 소비자 접점, 마케팅 영역으로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공장 자동화나 고객 응대 효율화처럼 개별 기능을 보완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신소재 발굴과 피부 진단, 상품 추천, 광고 제작까지 사업 운영 전 과정에 스며드는 흐름이다.
한국콜마 세종공장에서 제품이 제조되고 있다. (사진=한국콜마)
◆ 제조 현장부터 AI 도입 본격화
변화가 두드러지는 곳은 제조 현장이다. 한국콜마는 생산과 품질관리, 포장으로 이어지는 제조 흐름 전반에 자율화 체계를 심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인공지능 공장 과제에 선정돼 생산 데이터 연계 기반과 자율 공정 제어 체계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공정 정확도를 높이고 다품종 소량생산 대응력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제품 안전성 검증 공정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콜마는 화장품 보존력 시험에 로봇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해 검사 효율을 끌어올렸고, 시험 과정에서 축적된 데이터를 인공지능 분석으로 연결해 검증 속도와 정확도를 함께 높인다는 계획이다. 고객사가 원하는 포장재를 사진이나 이미지 기반으로 찾을 수 있는 검색 플랫폼도 운영하며 제품 기획과 출시 준비 기간 단축을 지원하고 있다.
코스메카코리아도 포장·물류 공정에서 인공지능 기반 자동화 도입을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의 로봇 활용 제조혁신 지원사업에 선정돼 이동형 로봇을 활용한 지능형 적재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공장 안을 자율 주행하는 로봇이 박스와 팔레트 상태를 실시간으로 인식해 적재 작업을 수행하는 구조로 반복적이고 강도 높은 포장 업무를 줄이고 생산 안정성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포장라인 영상과 센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해 작업자 행동 패턴과 생산 속도 변화를 감지하고, 주요 생산지표를 정량화하는 인공지능 실증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분자 모델링을 통한 소재 효능 평가 결과(녹색 형광색 부분이 모발 내 펩타이드)와 분자동역학 시뮬레이션을 통한 모발 케라틴 강화 분자 설계 원리. (사진=아모레퍼시픽)
◆ 연구개발·고객 접점 활용 확대
연구개발 영역에서는 인공지능이 후보 물질 선별을 넘어 연구 효율과 개발 정밀도를 끌어올리는 핵심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인공지능과 분자 모델링 기술을 활용해 모발 케라틴 강화 펩타이드를 개발했고, 약 8000여 종의 성분을 분석해 최적 후보를 도출했다. 피부 자극 자동 진단 기술은 대규모 피부 데이터를 학습해 자극 반응을 높은 정확도로 판정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생성형 인공지능 기반 가상 메이크업 기술, 피부 예측 알고리즘, 마이크로바이옴 분석 연구 역시 함께 진행되고 있다. 인공지능이 연구개발의 일부 보조 기능을 넘어 연구 설계와 검증을 고도화하는 기반으로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세계 전자 전시회에서는 차세대 전자피부 기술 ‘스킨사이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피부에 부착한 센서 패치가 다양한 노화 요인을 측정하면 인공지능이 이를 분석해 맞춤형 관리 방향을 제시하는 구조다. 삼성전자와 협업한 피부 분석 및 관리 솔루션도 함께 공개해 모공, 홍반, 색소, 주름 등을 분석하고 맞춤형 화장품과 피부 관리 기기를 추천하는 서비스를 제시했다.
아모레퍼시픽이 온라인 아모레몰에 고객 상담 AI(인공지능) 챗봇 서비스 ‘아모레챗’을 오픈했다. (사진=아모레퍼시픽)
최근에는 자사몰 고객 상담 서비스인 아모레챗을 통해 제품 추천, 비교, 후기 요약, 배송 조회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더 나아가 대화형 인공지능 플랫폼 안에 공식 쇼핑 서비스를 선보여 피부 고민 상담부터 성분·효능·가격 비교까지 가능한 맞춤형 쇼핑 경험을 구현했다.
안면 특징점 추출 기술 적용 예시(좌), 얼굴 부위별 6가지 노화 지표 정의 예시(우). (사진=LG생활건강)
LG생활건강도 연구개발의 속도와 정밀도를 높이는 데 인공지능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반 신물질 발굴 모형을 활용해 화장품 효능 성분 개발에 성공했는데, 기존 평균 1년 10개월가량 걸리던 후보 물질 발굴 기간을 하루 수준으로 줄였다. 물질의 용해도와 안전성을 함께 예측해 사업화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빠르게 추려냈다는 점이 특징이다.
피부 진단과 노화 연구에도 인공지능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얼굴 사진 한 장만으로 피부를 분석해 16가지 피부 유형으로 분류하고 관리 방법과 제품을 추천하는 생성형 기반 피부 진단 기술을 공개했다. 또 약 1만6000명의 한국인 여성 얼굴 이미지를 분석해 눈가, 입술, 얼굴 윤곽 등 부위별 노화 속도 차이를 규명하고 관련 유전자 영역까지 밝혀냈다. 이를 토대로 연령대와 개인 특성에 맞춘 피부 관리 해법을 제시하겠다는 계획이다.
마케팅에서도 인공지능 활용이 이어지고 있다. 엘지생활건강의 세탁세제 브랜드 피지는 광고 제작 전 과정에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해 영상 콘텐츠를 제작했다. 생활용품 브랜드 사례이지만, 촬영 부담을 줄이면서도 제품 효능을 보다 직관적으로 전달하려는 시도로, 생성형 인공지능 활용이 연구개발과 생산을 넘어 콘텐츠 제작 영역까지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업계 관계자는 “K-뷰티 경쟁이 단순 제품 출시를 넘어 기획부터 생산, 고객 제안까지 전 과정을 얼마나 정교하게 운영하느냐의 싸움으로 바뀌고 있다”며 “AI 활용 역량이 향후 시장 판도를 가를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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