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이버 보안 기업들이 ‘제로 트러스트(Zero Trust)’ 보안과 관련해 본격적인 사업화에 나선다. 네트워크, 단말(Endpoint), 문서·데이터, 인증 등 보안 각 영역별 기술 고도화 단계를 넘어 실제 적용 제품을 선보이고, 기업 간 협력을 통해 이들을 통합한 모델까지 서비스화를 시도하며 시장 확대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국내 사이버 보안 기업들이 제로 트러스트 관련 사업화를 본격화한다. / 챗GPT 생성
업계에 따르면 이러한 시도는 지난해까지 3년여간 진행된 정부 지원 실증·시범사업을 통해 쌓은 경험 덕분에 가능했다.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추진한 2년차 제로 트러스트 시범사업에는 신한은행, 하나은행, KB국민은행, 신영증권 등 금융권을 비롯해 SK텔레콤, 무선통신장비 제조 전문기업 KMW, IT 인프라 전문기업 가비아, 공항철도까지 다양한 수요기관이 참여해 실제 업무 환경에 제로 트러스트 보안 모델을 적용하고 운영까지 검증했다.
특히 KMW는 해외 법인 연결을 포함한 글로벌 접근 통제를, 공항철도는 5G 특수망 기반 운영환경을, 가비아는 클라우드 서비스 환경 등과 같이 서로 다른 인프라 조건에서 적용 사례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같은 실증 경험은 실제 사업화로도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가비아는 시범사업을 통해 제로 트러스트 보안을 인프라에 적용해보고, 올해 보안성을 장점으로 내세운 ‘제로 트러스트 기반 DaaS(서비스형 데스크톱)’를 선보이며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시범사업에 참여한 보안 기업들은 올해 들어 사업화에 본격 나서고 있다. 작년 컨소시엄 주관사 6곳 중 하나였던 모니터랩은 SWG(보안 웹 게이트웨이), CASB(클라우드 액세스 보안 브로커), 생성형 AI 사용 통제를 단일 솔루션에서 제공하는 ‘AISWG’ 솔루션과 RBI(원격 브라우저 격리) 솔루션인 ‘AIRBI’, ZTNA(제로 트러스트 네트워크 액세스) 솔루션인 ‘AIZTNA’ 등 자사 구축형 보안 솔루션을 통합해 선보이며 제로 트러스트 사업 확대에 나섰다. 제로 트러스트 기반의 구독형 SSE(Security Service Edge) 플랫폼 ‘아이온클라우드(AIONCLOUD)’도 제공한다.
이광후 모니터랩 대표는 “모니터랩은 구축형과 구독형 제로 트러스트 솔루션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고객 환경과 요구사항에 맞는 방식으로 제로 트러스트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 차별화된 경쟁력”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공공·금융뿐 아니라 민간 시장에서도 실제 적용 가능한 제로 트러스트 보안 모델의 정착을 지원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실증사업과 시범사업까지 지난 3년간 KISA 제로 트러스트 관련 사업을 이끌어온 SGA솔루션즈도 엔드포인트, 시스템, 클라우드, 계정관리까지 아우르는 풀스택 제로 트러스트 아키텍처를 제시하며 통합 보안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회사는 풀스택 제로 트러스트 솔루션 ‘SGA ZTA’를 비롯해 통합계정관리 솔루션 ‘시큐어가드 ICAM(SecureGuard ICAM)’, 서버 보안 솔루션 ‘레드캐슬(RedCastle)’ 등 제로 트러스트의 핵심 영역을 담당하는 솔루션들을 보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책결정지점(PDP), 정책시행지점(PEP) 등 실제 제로 트러스트 모델이 동작하는 핵심 요소들에 대한 구축·운영 경험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어 이를 활용한 컨설팅 역량도 SGA솔루션즈의 강점으로 꼽힌다.
최영철 SGA솔루션즈 대표는 “인공지능(AI) 확산 등 IT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보안 위협도 더욱 고도화되고 있어 기존 경계 기반 보안 모델에서 벗어나 제로 트러스트 기반의 보안 체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KISA 제로 트러스트 시범사업에서 경험을 쌓은 옥타코와 넷츠도 협력을 통해 제로 트러스트 보안 사업에 나서고 있다. 옥타코는 이스트시큐리티 컨소시엄에서 인증 관련 분야를, 넷츠는 SK쉴더스 컨소시엄에서 IAM(신원·접근 관리) 관련 분야를 담당했다. 양사는 4월 초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IAM, SSO(싱글사인온)와 피싱 저항 MFA(다중요소인증)를 결합한 통합 인증 체계의 공동 구축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사용자뿐 아니라 디바이스와 접속 환경까지 함께 검증하는 구조다.
문서·데이터 보안 전문기업 소프트캠프도 SK쉴더스 컨소시엄의 일원으로 쌓은 경험을 활용해 제로 트러스트 사업 확대를 추진한다. 회사는 4월 초 보안 컨설팅 및 보안관제 전문기업 티앤디소프트와 협력해 제로 트러스트 기반 보안 기술과 관제·컨설팅 역량을 결합한 통합 서비스 모델을 공동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배환국 소프트캠프 대표는 “이번 협력을 통해 제로 트러스트 기반 보안 기술과 관제 역량을 결합한 보다 실효성 있는 보안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양사의 지속적인 기술 협력을 통해 고객의 보안 수준을 한층 더 높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이니텍 컨소시엄에 참여해 경험을 쌓은 피앤피시큐어도 기존 캐시카우인 접근제어 사업을 넘어 제로 트러스트로 사업 영역 확대를 꾀한다. 박천오 피앤피시큐어 대표는 최근 파트너 데이 행사에서 “서버 보안 영역의 모든 솔루션을 단일 정책으로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유기적인 제로 트러스트 모델이 오는 6월 완성된다”며 “기존의 단순 (데이터데이스·시스템) 접근제어가 아닌, 능동적 제로 트러스트 모델로 묶어 고객에게 제안한다면 더욱 안전한 보안 환경을 제공하는 동시에 파트너사 비즈니스 기회도 확대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보안 기업들이 제로 트러스트를 기반으로 본격적으로 사업 확대를 준비하는 것은 지난 3년여간 시범사업을 진행하던 대형 은행들을 넘어 증권사, 보험사 등 금융권 전반과 정부 공공부문, 제조·유통 등을 포함하는 일반 기업, IT 기업 등으로까지 제로 트러스트가 확산될 것으로 기대해서다. 다만 여전히 가장 적극적인 산업은 금융권임에 틀림없다. 올해도 추진되는 KISA 시범사업 역시 이미 지난 3년여간 제로 트러스트 기반의 보안 강화를 꾸준히 추진해온 KB국민은행 등 금융권이 수요기업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금융권에서 제로 트러스트 전환이 일부 시범 프로젝트를 넘어 전사에 걸친 지속적 추진 과제가 됐기 때문이다. 금융권은 망분리 규제 완화와 클라우드 전환이 맞물리면서 내부·외부 경계 기반 보안 모델의 한계가 빠르게 드러났고, 사용자와 단말, 접속 행위를 지속적으로 검증하는 구조가 필수로 자리 잡았다. 이에 올해 금융보안원은 재택근무, 업무 단말, SaaS, 연구개발, 본·지점 간 통신 등 5개 구간을 중심으로 ZTNA 적용 모델과 7개 분야 21개 항목의 보안 진단 기준을 제시하며 전환을 독려하고 있다.
박상원 금융보안원장은 “망분리 규제 완화와 클라우드 확산으로 네트워크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며 “모든 접속과 행위를 검증하는 제로 트러스트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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