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산책] 김법혜 스님.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뜨거운 여름 열기가 만들어 내는 열섬처럼 국내외의 정세가 한마디로 뿌연 안개 속과 같다. '부정선거 논란', '종전 협상', 정치권의 인물난' 등처럼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오리무중 속이다.
고사성어의 오리무중(五里霧中)은, '다섯 오(五), 길이 리(里), 안개 무(霧), 가운데 중(中)’으로, ‘다섯 리(里, 2km)나 되는 거리가 안갯속이라 사람·사물의 행방을 도무지 알 수 없다’라는 뜻이다.
사자성어는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 일본에서도 흔히 사용된다. 리(里)는 흔히 ‘마을’로 읽지만 여기서는 ‘길이’의 명칭이다. 그래서 ‘길이 리’로 했다. 그리고 '안개'는 공기 중 지면에 가까운 수증기가 냉각되어 작은 물방울이나 얼음 결정으로 응결하여 지표면에 떠 있는 현상을 말한다.
국제적으로는 가시거리가 1킬로미터 미만이면 '안개(fog)', 1킬로미터를 초과하면 '옅은 안개(mist)'라고 한다. 그래서 오리무는 후자에 해당한다. 오리무중의 '오리무'는 송나라 범엽이 정리한 후한의 역사서 ‘후한서’ ‘정·범·진·가·장 열전’가운데 나온다.
이후 '오리무'에다 '가운데 중' 자를 붙여 오리무중이 되었다. '후한서'의 '장해' 소개 대목은 이렇다. "(장해는) 성품이 도술을 좋아하여 능히 '5리의 안개'를 만들 수 있었다. 이때 관서 사람 배우도 또한 3리의 안개를 만들 수 있었는데 스스로 장해보다 못하다고 여겨서 그에게 배우기를 원했다. 하지만 장해는 피하며 기꺼이 그를 만나보려 하지 않았다. 자연 속에 숨어서 사는 장해는 5리의 안개를 만들 정도의 특이한 도술로 명성이 높아지자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나 그는 이것을 싫어하여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참고로, 중국에서 도량형 단위는 시대적으로 변천했는데, 후한 때는 1리가 300보(步)였다. 그리고 1보는 6척(尺), 1척은 23.04cm. 그러니 1보는 138.24cm가 되고, 5리는 207,360cm(이므로 2km 정도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리의 길이는 시대마다 달랐는데 현재에는 1리가 393m이나 올림하여 400m로 한다.
그래서 5리는 2,000m 즉 2km이다. 우리 고전 문집에서는 '오리무중'이란 사자성어가 최치원의 계원필경집에도 나온다. 하지만 혼란했던 근대기를 다양하게 증언하는 신문과 잡지 등의 사료에는 "오리무중에 방황・배회하는…" 식의 언급이 빈출한다.
이렇듯 '안개'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시기에는 전망이 불투명하고 불안한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며 묵묵히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올해는 대한민국 헌법의 제정·공포를 경축하는 제헌절 78주년이다. 18년만에 법정공휴일로 복원되기도 했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헌법 정신을 되새기는 날이다. 헌법 유린을 헌법 안에서 평화롭고 질서 있게 극복해 냈기에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그렇다고 달라진 법규정이나 제도는 뚜렷한 것이 없다. 기껏 손댄 것이 검찰 수사권 폐지와 공소청·중수청 설치 정도의 입법화다.
지난 1987년 개헌 후 39년이 흐른 현행 헌법은 여전하다. 그래서 지난 2024년 5월 개회한 22대 국회에서 말로만 오간 개헌은 여전히 정치적 언어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6월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해 제헌절 경축사에서 대통령 권력을 분산하고 권력기관의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개헌을 주창했다.
이 대통령이 제안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등도 오리무중이다. 심지어 여야가 동의한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도 말뿐이다. 시대적 변화를 반영해 현행 헌법에 빠져 있는 생명권, AI, 비정규직 관련 내용을 담고 국민 기본권도 강화해야 한다.
이 모든 문제는 입법부의 책임이다. 헌법 수호의 책임이 있는 입법부가 헌법의 생일이라 할 수 있는 제헌절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지난 5월 30일 후반기 국회가 시작된 이후 여야는 이날까지 49일을 허송세월했다. 여야가 정치적 이해득실에만 골몰하고 있을 뿐 개탄스럽다.
국회 원 구성 협상을 가로막고 있는 쟁점은 후반기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비롯해 투표지 부족 사태를 둘러싼 특검이냐 재검표냐를 놓고 벌이는 정쟁이 되고 있다. 18개 상임위원회 가운데 대다수는 상임위별 원 구성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원의 월 세비가 2000만 원에 가까운데도 두 달을 이렇게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
국민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고물가·고유가·고환율 해소 방안을 마련하기는커녕 당리당략에만 빠져 있으니 작금의 세태야 말로 오리무중이다. 국회 정상화가 미뤄지는 것은 국민에 대한 국회의 직무유기다. '무노동 무임금'을 국회의원에게 적용하자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는 국민이 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노동이 제 값을 못하는 곳은 노동현장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회, 국회의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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