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정서 돌봄’ 빠진 복지…고령층 ‘숨은 위기’ 놓쳤다

29일 오전 영광군 대마면 월산리의 한 주택 마당에 불에 그을린 이불이 널브러져 있다.

‘정서 돌봄’ 빠진 복지…고령층 ‘숨은 위기’ 놓쳤다

‘정서 돌봄’ 빠진 복지…고령층 ‘숨은 위기’ 놓쳤다

사교적이던 90대, 가족사·치매 아내 간병 고통 속 숨진 채 발견

“활동 많아 고위험군 제외”…단순 지원 넘어 심리 안전망 시급

2026년 07월 29일(수) 20:20

29일 오전 영광군 대마면 월산리의 한 주택 마당에 불에 그을린 이불이 널브러져 있다.

전남광주 지역사회가 고령층의 보이지 않는 심리적 위기를 제때 포착하지 못하는 등 돌봄 체계의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어려운 형편에 힘든 가족사를 안고 있던 90대가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과 관련, 관할 지자체가 고독사 고위험군 관리 등에서 보다 세심히 살폈어야 한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29일 영광경찰에 따르면 지난 28일 새벽 5시 40분께 영광군 대마면 월산리 A씨 주택에서 불이 났다. 홀로 살던 A씨는 주택 헛간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기초생활수급자이던 A씨가 가족사 등으로 심리적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화재는 A씨가 사망 이후를 염두에 두고 신변 정리 차원에서 불을 낸 것으로 추정됐다.

A씨의 아내는 4년여 전부터 중증 치매로 영광 지역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들어서는 A씨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병세가 악화된 상태였다는 것이다.

A씨의 외동딸은 이혼 후 지병으로 투병 생활을 이어가다 20여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났으며, 지적장애와 시각장애를 가진 손주 2명도 수년 전부터 따로 생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지인들과 파크골프를 자주 치러 나가는 등 사교적인 성격이었으나, 사망 직전 주변인들에게 ‘위기 징후’를 보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A씨는 수일 전부터 가까이 지내던 이웃 주민들에게 새 가전제품이나 모아둔 돈을 건네 주더니, 사망 전날에는 평소 함께 파크골프를 치던 지인들에게 카드를 건네주고 “이제 그만 살고 싶다. 내일부터는 나오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5년 전까지 A씨 옆집에 살았던 정모(여·75)씨는 “30년 넘게 이웃으로 지내며 어려운 가정사는 알고 있었다”며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농사를 짓는 등 성실하게 살았다. 내가 투병을 할 때도 김치를 담가 가져다주는 등 어려울지언정 남에게 도움을 받으면 꼭 보은하는 사람이었다. 언젠가 꼭 식사라도 대접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소식을 듣게 돼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한숨을 쉬었다.

조모(여·77)씨도 “예전에는 노인정도 자주 찾았지만, 혼자가 된 뒤에는 영광읍에 머물며 파크골프를 하거나 복지관에서 무료 급식을 이용하며 지냈다”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늘 잘했고 정이 많은 분이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안타까운 마음 뿐”이라고 털어놨다.

영광군과 전남광주시는 A씨의 가정 상황이 이미 ‘위험’한 수준이라는 정황을 파악했지만 관리 대상으로 포함해 살피는 데는 미흡했다.

영광군은 기초생활수급 지원 외에는 A씨에게 별도의 사례관리나 지원을 하지 않았다. A씨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장기요양등급 4급에 따라 주 6회, 하루 3시간씩 요양보호사가 방문하는 재가 복지 서비스를 받고 있었다는 점에서 촘촘한 관리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남광주시가 고독사 예방 및 관리 사업을 하겠다며 운영 중인 위험군 발굴·관리, 정기 안부 확인 등의 보완·점검도 요구되고 있다.

영광군은 A씨가 애초 고독사 위험군으로 분류될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영광군은 통합사례 관리, 고독사·자살 고위험군 관리는 외부 활동이 거의 없는 주민, 우울증 치료를 받는 주민, 이웃 추천을 받은 주민, 공공요금 체납·고용 불안, 지자체 자체 발굴 등 위기 징후가 확인된 주민 등을 중심으로 선정·지원하고 있다. A씨는 평소 파크골프를 즐기는 등 외부 활동이 활발했고, 심리적 어려움이나 위기 징후가 주변에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 영광군 설명이다.

A씨 거주지역 면사무소 관계자는 “A씨는 기초생활수급자이긴 하나, 파크골프 모임 총무를 맡을 정도로 사람들과 활발하게 어울렸고 겉으로는 특별한 이상 징후를 발견하기 어려웠다”며 “지난해에는 지역사회보장협의체 결연 대상자로 선정돼 명절 음식 지원과 안부 확인 등을 했지만, 지원 대상자가 한정돼 있어 올해는 다른 주민에게 기회가 돌아갔다”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고령층의 심리적 위기 신호를 조기에 발견하고 대응할 수 있는 지역사회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초고령화 시대에 배우자의 중증 질환, 가족 해체, 사회적 관계 단절 등을 홀로 감당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는 만큼, 생활 지원 중심의 복지 체계를 넘어 정서적 돌봄과 사회적 연결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정서 조선이공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혼자 생활하는 노인은 심리적 취약성이 커질 수밖에 없지만, 위험 징후가 외부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고령층의 자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과제로, 경제적 지원 중심의 관리에서 벗어나 가족 돌봄 부담, 정서적 고립 여부 등을 함께 살피는 위험 관리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60대 이상 ‘고의적 자해’ 사망자 수는 2022년 4687명, 2023년 5175명, 2024년 5171명, 2025년 4925명, 2026년(1분기) 504명 등 매년 5000여명대에 달했다.

/영광 글.사진=윤준명 기자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