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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문일침] 김정은이 건넌 신압록강대교, 거꾸로 가는 한반도 시계

1950년 6·25 전쟁의 참극이 일어나기 전, 김일성은 남침을 감행하기 위해 소련의 스탈린을 찾아가 군사적 지원과 승인을 요청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미국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우려해 직접 개입을 거절하는 대신, 중국의 마오쩌둥을 찾아가 설득해 보라고 조언했다.

[정문일침] 김정은이 건넌 신압록강대교, 거꾸로 가는 한반도 시계

윤삼수 서울본부장

1950년 6·25 전쟁의 참극이 일어나기 전, 김일성은 남침을 감행하기 위해 소련의 스탈린을 찾아가 군사적 지원과 승인을 요청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미국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우려해 직접 개입을 거절하는 대신, 중국의 마오쩌둥을 찾아가 설득해 보라고 조언했다. 이후 김일성은 베이징으로 건너가 마오쩌둥과 비밀리에 회동을 가졌다. 당시 중국은 국공내전(國共內戰)을 막 끝낸 건국 초기여서 전쟁에 개입할 여력이 마땅치 않았다. 그럼에도 김일성의 거듭된 호소 끝에 마오쩌둥은 “미군이 38선을 넘어 북상한다면 중국군을 보내 돕겠다”는 확답을 내놓았다. 북한 지도자가 강대국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정치적·군사적 목적을 이루고자 벌인 이 밀실 외교는 한반도를 참혹한 포화 속으로 몰아넣은 결정적 전조였다.

이처럼 북한 최고지도자의 방중은 한반도 정세의 거대한 분수령이 될 때마다 극비리에, 혹은 정치적 중대 결단을 목적으로 이뤄져 왔다. 사전에 정상회담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북한 지도자가 중국으로 건너간 사례는 역사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최근 매우 이례적인 장면이 포착되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이징이 아닌 국경 도시 단둥만 방문하는 당일치기 일정으로 중국을 찾은 것이다. 현지에서는 중국 권력 서열 4위인 왕후닝이 김정은을 맞이했다.

중국이 주요 정치 행사인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를 앞두고 있어, 시진핑 주석이 베이징을 비우거나 김정은을 국빈으로 맞이하기 어려운 여건이었다. 외국의 국빈을 정상적으로 맞이하기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김정은이 단둥의 자동차 공장 등을 둘러보고 돌아간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불과 일주일 전 개통한 신압록강대교 시찰을 계기로, 실질적인 북·중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전격적인 행보로 풀이된다.

북한 지도자가 중국을 찾았으나 정상회동을 갖지 못하고 돌아선 사례는 36년 전인 1990년에도 있었다. 당시 소련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개방정책과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을 계기로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가 결실을 맺으며 한·소 수교가 성사되었다. 위기감을 느낀 김일성은 황급히 중국으로 건너가 장쩌민 총서기와의 면담을 추진했다. 그러나 면담은 거절되었고, 김일성은 변방인 심양에서 사흘을 대기한 끝에 부총리만 만난 채 씁쓸히 발길을 돌려야 했다. 결국 중국마저 1992년 한국과 손을 잡았다.

36년 전 김일성의 방중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이번 김정은의 단둥 당일치기 방문 역시 중국 주석과의 회동 없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외교적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일각에서는 미·북 정상회담을 앞둔 사전 협의 차원의 방중이라는 관측도 나오지만,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에 집중하는 현재 정국을 감안하면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뉴욕포스트 등 외신에서 사망 루머까지 언급되었던 김정은은, 트럼프의 화제성 언급과 우크라이나 이슈 등이 맞물리며 다시금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인물로 부상했다.

북·중·미를 둘러싼 외교적 톱니바퀴는 이처럼 기민하게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대한민국 외교는 과연 어디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깊이 돌아보게 된다. 남북 대화가 끊어진 지 오래인 데다 한미 관계마저 다소 미묘한 기류가 감돌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북한 핵시설 관련 발언 이후 미국이 제한한 대북 정보 공유는 반년 넘게 정상화되지 못하는 모습이다. 한·미·일 사이버 협의체에서 국정원이 배제되거나 국정원 직원들의 미국 비자 발급이 지연되는 등 매끄럽지 않은 상황도 이어지고 있다.

정 장관은 미국의 판단에 아쉬움을 표하며 한미동맹에 이상이 없다고 설명하지만, 강경화 주미대사는 미국의 우려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소통에도 한계가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주한 미국대사 역시 한미관계가 ‘난기류’를 지나고 있음을 솔직히 언급한 바 있다. 북한은 중국과의 밀착을 통해 실리를 챙기고 있고, 미국 또한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늘 열어두고 있다. 반면 동맹국인 우리는 기본적인 신뢰조차 다지지 못한 채 자칫 소외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만약 이대로 미·북 정상회담이 전격 성사된다면, 대한민국의 안보와 국운을 좌우할 협상이 당사자인 우리를 비켜간 채 진행될 수 있다. 이른바 ‘코리아 패싱’에 대한 걱정이 현실로 다가오는 이유다.

북·중·미의 급박한 움직임 속에서 대한민국 외교가 직면한 현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강대국 중심의 지형 변화 속에서 국익을 지켜내려면 흔들림 없는 동맹 간의 신뢰와 냉철한 실리 외교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외교적 난기류를 지혜롭게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무엇보다 한미 간의 훼손된 신뢰를 차분히 복원하는 데 역량을 모아야 한다. 나아가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 대한민국의 안보 이익과 외교적 입지가 좁아지지 않도록 더욱 정교하고 실질적인 전략을 다듬어 가야 할 때다. 한반도의 평화와 국익을 최우선에 둔 능동적이고 슬기로운 외교적 결단이 그 어느 때보다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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