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정동칼럼]재난 앞에서 물어야 할 것

세심했다. 프랑스로 출국하면서도 ‘네팔 상황을 계속 챙기겠다’ 말하는 대통령. 한국 국적 노동자 9명이 여전히 실종 상태인 재난의 와중에 가족들의 애타는 마음이 조금은 덜 외롭지 않았을까. 참사 발생 직후부터도 정부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정동칼럼]재난 앞에서 물어야 할 것

세심했다. 프랑스로 출국하면서도 ‘네팔 상황을 계속 챙기겠다’ 말하는 대통령. 한국 국적 노동자 9명이 여전히 실종 상태인 재난의 와중에 가족들의 애타는 마음이 조금은 덜 외롭지 않았을까. 참사 발생 직후부터도 정부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에 과잉 대응은 없다는 각오”를 주문했고 합동신속대응팀과 해외긴급구호대를 현지로 파견했다. 부디 가족들의 기다림에 응답이 오기를 기도한다. 동시에 재난 대응에서 물어야 할 또 다른 것들을 떠올린다.

홍수의 원인이 지진이라던 속보가 다음날 바뀌었다. 빙하가 붕괴하며 떨어져 내린 충격으로 규모 5.2 지진처럼 땅이 흔들린 것이라 했다. 해발 5200m 고도에서 빙하와 암석이 떨어지며 물길을 일으켜 초당 1만1000t의 물이 시속 170㎞의 속도로 협곡을 밀고 내려와 30분 만에 9m 높이로 수위가 치솟으며 하류의 마을을 덮쳤다는 설명.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네팔과 티베트 지역에서 집계된 사망자는 1500명에 이르고 실종자 수는 5500명을 넘어선다. 애도를 위해서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최근 수십년간 네팔은 홍수와 산사태가 증가하며 피해가 늘고 있었다. 고지대의 빙하가 녹으며 빙하 면적은 줄고 빙하호는 늘어나는 현상이 확연했다. 기후위기는 재난을 쌓고 있었다. 네팔 정부는 인도주의적 지원을 요청하는 대신 “정의와 배상의 문제”를 제기했다. 네팔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네팔이 마주한 재난 피해의 현격한 대비를 떠올리면 너무나 정당한 요구다. 중국, 미국, 인도처럼 직접 거명되지 않았지만 세계 주요 탄소배출국인 한국도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물어야 할 것이 있다. 2023년 오송 참사는 집중호우만으로 발생하지 않았다. 대충 쌓은 임시제방이 터지고 관계 기관이 통제 책임을 회피하다가 벌어진 참사다. 네팔 홍수는 과학자들도 예측할 수 없었던 양상으로 발생했다. 재난을 일으킨 연쇄작용의 한 고리로 히말라야산맥에 밀집한 수력발전소 개발이 지목되고 있다. 개발이 지반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산사태 위험을 높였다는 것이다. 한국남동발전이 국제금융공사와 2011년 시작하고 두산에너빌리티가 시공한 어퍼트리슐리-1 수력발전소가 거기에 있었다.

세계은행이 금융 지원을 하고 한국 기업이 투자해 청정한 에너지를 공급하고 저개발 국가의 성장을 돕는 사업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네팔의 수력발전소는 수출을 위해 건설되고 있었다. 풍부한 수량과 낙차로 수력발전에 유리한 조건을 네팔 정부는 성장 전략으로 삼았고 이익을 챙기려는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달려들어 곳곳에서 땅을 파고 터널을 만들며 지반을 허물고 있었다. 올해 전력 순수출국이 되었던 네팔은 홍수로 전력시설이 파괴되며 전력 수입을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에너지는 돈이 된다. 다른 산업의 연료로 쓰이며 돈이 되고 에너지 생산 자체가 돈이 된다. 돈에 갇힌 에너지는 더 이상 삶의 필요를 묻지 않는다. 기후위기에 대해서도 책임지지 않으며 풍요를 안기지도 않는다. 에너지를 더 많이 쓰는 일이 성장이 되고 에너지를 더 많이 공급하는 일이 투자가 된다. 기후재난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이런 사회가 만든 재난이다. ‘3대 메가프로젝트’에 매진하는 한국 정부도 재난으로 가는 길을 넓히고 있다.

정부는 반도체 생산과 데이터센터 건립을 뒷받침하기 위한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4월의 초안과 8월의 수정안 사이에 2040년 최대 전력 목표수요가 26.6GW 증가했다. 핵발전소 19기를 더 짓는 용량이다.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정부는 핵발전과 가스발전을 늘릴 태세다. 농지를 태양광 단지로 바꾸는 일에도 진심이다. 네팔의 수력발전소를 떠올리면 에너지원이 ‘친환경’이냐 묻는 일은 부질없어 보인다. 대미투자사업 1호는 텍사스주의 가스복합화력발전소 사업일 것이라 한다. 기후재난 키우는 일이 ‘국익’이 되고 있다.

재난 앞에서 우리는 물어왔다. 이와 같은 참사가 다시 발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재난이 반복되는 이유는 답을 몰라서가 아니다. 생명과 안전을 위한 일은 ‘비용’이라 부르고 생산과 이윤을 좇는 일은 ‘투자’라 부르는 사회가 그대로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를 바꾸자는 약속이 기후정의다. 네팔 홍수 희생자를 애도하는 우리의 구호는 기후정의여야 한다. 재난에 대한 책임을 배반하는 한국 정부의 폭주를 멈춰야 한다. 919 기후정의행진이 세상을 바꿀 우리의 책임이 모이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영문번역(English Translation)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