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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정동칼럼]스크루테이프의 편지

늦은 밤, 배양기에서 미생물들이 증식하듯 SNS에서 혐오의 문장들이 증식한다. 이 배양기에 ‘분노’나 ‘타자’ 같은 사료를 한술 투입하면 그 게시물은 더 빠르게 증식한다는 걸 심리학자들은 안다.

[정동칼럼]스크루테이프의 편지

늦은 밤, 배양기에서 미생물들이 증식하듯 SNS에서 혐오의 문장들이 증식한다. 이 배양기에 ‘분노’나 ‘타자’ 같은 사료를 한술 투입하면 그 게시물은 더 빠르게 증식한다는 걸 심리학자들은 안다. 감정 연구자인 사라 아메드는 <감정의 문화정치>에서 혐오 같은 감정은 몸과 기호 사이를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가치’를 축적하고, 대상에 들러붙어 희생양을 만들며, 축적의 경로가 흐려지면서 ‘원래 내 감정’인 양 나타난다고까지 밀어붙인다.

피로감이 극에 달할 즈음, 이상한 파일이 공유되었다. 제목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_v26”. 가짜뉴스일까, 피싱일까, 아니면 인공지능 회사가 실수 혹은 일부러 흘린 프롬프트? 그것은 스크루테이프라는 발신인이 후임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친애하는 후임에게. 자네의 첫 기획서는 참신했네. 하지만 그뿐이더군. 자네는 도대체 우리가 판매하는 혐오가 뭐라고 생각하나? 그것도 모른 채 현장에 투입되고 싶었던 건가? 혐오는 혐오자의 특성도, 대상의 속성도 아니네. 혐오는 하나의 순환이야. 돌아야 하네. 이걸 모르는 한 책임 있는 자리는 아직 어렵다는 점 양해하기 바라네. 자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회사가 망할 수는 없지 않은가. 대신 과학에 기반한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지.

첫째, 논증하려 하지 말게. 비유로 충분해. 혐오가 뭔가? 오염의 감정 아닌가. 무엇이든 오염시키면 되네. 한번 오염되면 정의도, 영웅도 무너지는 법이야. 왜 자꾸 사실에 집착하나. 그건 법정에서나 따질 일이네. 느낌을 갖게 하면 돼. 멋진 표현 하나면 자네는 사람의 마음에 얼룩 하나를 찍는 셈이네. 논증? 얼룩을 문지르는 짓이야. 문지를수록 번지지. 진실? 모든 건 구성하기 나름이야. 약간만 오염시켜도 구성은 달라지지.

둘째, 한 대상에 집착하지 말고 빠르게 순환시키게.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지 않나. 때론 역류하기도 하지만. 혐오도 마찬가지네. 자네는 사람들이 모든 걸 혐오할 정도로 악하거나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나? 혐오는 눈사람이야. 자꾸, 빨리, 굴려야 하네. 안 그러면 눈가루처럼 흩어지고 말아. 인간의 선함을 무시하지 말게. 그들은 악하지 않아. 악할 필요도 없지. 낯설고, 끈적거리고, 불결해 보이는 것을 질색하는 그들의 본능에만 초점을 둬. 자네의 고객들이 막연한 불쾌감을 떨치지 못하기만 해도 조롱, 경멸 같은 파생 상품들이 함께 뜰 것이야.

셋째, 모든 고객의 마음을 통째로 물들이려 할 필요는 없네. 중요한 건 눈과 입이야. 눈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좇도록 만들게. 그러면 다 따라오게 돼. 다만 주의하게. 다른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누가 알겠나. 감각이야. 자네가 나보다 쇼츠니 릴스니 하는 신기술에는 더 익숙하지 않나. 그리고 감각은 반복으로 강화되는 법이네. 어디서 본 듯하면 진리가 되는 거네. 짧게, 반복하게. 짧게, 반복하게. 그리고 입에는 착 붙는 어휘를 제공하게. 리듬감 있고, 은유적이면서, 조금은 값싼 표현이 좋겠지. 죄책감이 들지 않을 만큼의 말들을 사은품으로 뿌려. 그럼 자네의 고객들은 그중 하나를 사탕처럼 입에 넣을 테고, 그 입은 이제 단맛을 잊지 못할 것이네.

마지막으로, 이게 제일 중요하네. 절대로 구조가 드러나서는 안 돼. 자네의 고객들에게 혐오는 비뚤어진 세상에 대한 지극히 주체적인 반응이어야 하네. 다름에 대한 불쾌, 미래에 대한 불안, 약자에 대한 조롱, 기득권에 대한 분노. 다 ‘내 감정’이어야 해. 구조가 보이면, 우리는 숨을 곳이 없네. 아, 조언이 짧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자네가 나보다 더 높이 승진하면 나도 좀 곤란하지 않겠나. 나는 자네를 혐오하지 않네. 그건 사실이야. 성장한 모습 기대하겠네. 스크루테이프.”

물론 이 편지는 가짜다. 영국 작가 C S 루이스는 동명의 소설에서 악마의 편지를 입수해 공개함으로써 그들의 전략을 고발하는 기법을 썼다.

혐오란 사회에서 주체들이 특정 방식으로 배열되어 있는 모습이다. 단면을 부각하는 짧고 강렬한 메시지, 휘발과 축적이 동시에 일어나는 조작 정보, 순식간에 진행되는 편견의 동원, 혐오 산업으로 돈을 버는 스크루테이프와 후임들, 사업을 번창하게 하는 대중의 취향과 마음의 작동 방식까지, 혐오란 특정한 사회적 배열의 감정이다. 혐오를 생각할 때 옥죄이는 기분이 드는 건 촘촘하고 유연한 악에 대한 기시감이자 혐오에 대한 비판조차 혐오의 순환을 강화할지 모른다는 자각이다. 그런 면에서 혐오는 권력을 닮았다.

최태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영문번역(English Trans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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