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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정동칼럼]대법관 임명의 헌법적 의미

노태악 전 대법관 퇴임 이후 반년 이상 공석으로 남아 있는 후임 대법관 임명과 관련해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정동칼럼]대법관 임명의 헌법적 의미

노태악 전 대법관 퇴임 이후 반년 이상 공석으로 남아 있는 후임 대법관 임명과 관련해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개인적으로 제청권과 임명권은 상호 종속되지 않으며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의 권한을 종속시켜 형해화하는 수준에 이르렀을 때 위헌적 권한 침해의 소지가 다분해진다고 생각한다. 특히 대통령의 임명 거부가 사실상 대법관 지명과 다름없어진다면 이는 정권의 사법 장악으로 평가해야 한다. 이 사안이 어떻게 결론 나든, 사후에는 삼권분립, 사법 독립, 민주적 정당성 등의 헌법적 개념들만 흩어진 채 부유할 것이다. 그 단어들을 그러모아 제자리에 놓아주기 위해서라도 대법원 구성의 헌법적 의미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다.

대법원 구성, 즉 누구를 대법관으로 임명할 것인가는 법치주의를 천명한 제헌헌법 이래 언제나 초유의 관심사였다. ‘정권이 사법을 장악한 법치주의’는 형용모순이기에 군부독재 시절에도 대통령이 아무 제약 없이 대법관을 임명하는 절차를 취한 적은 없다. 형식적으로나마 삼권분립과 사법 독립의 외관을 갖추기 위해 ‘대법원장의 제청과 대통령의 임명’ 구조를 유지했는데, 대법원장의 제청이 대통령의 임명을 실질적으로 제약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독재정권은 판사들의 서열 구조를 구축해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사법을 장악했는데(예를 들어 대법원장은 독재에 편승하는 재판을 하는 판사들의 서열을 높이고 그에 반대하는 판사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인사권을 행사한다), 대법관 임명은 그 정점에 있었다. 즉, 당시 대법원장의 제청은 사법 독립이 아닌 정권의 사법 장악 수단으로 활용됐다.

민주화 이후 1987년 헌법은 대통령의 사법 장악을 해체하기 위해 판사의 신분 보장을 헌법적 가치로 격상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대법원장에게 이전했으며 대법관 임명 절차에 국회의 동의를 추가했는데, 이러한 조치만으로 사법이 민주화되진 않았다. 독재정권이 구축한 판사 서열 구조와 대법원장의 막강한 인사권이 유지되었기에, 독재에 편승해 서열을 높인 판사들이 차례로 대법원장 또는 대법관에 임명될 위기(?)에 처했고, 대법원장의 판사 통제로 인해 재판 독립이 훼손될 위험 또한 상존한 상태였다. 전두환 정권에서 임명된 대법원장을 민주화 이후에도 유임시키려던 정치권의 시도에 대해 판사들이 일제히 항의한 것을 시작으로(2차 사법파동), 판사들은 대법관 임명 절차가 사법부의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고 시대 변화를 담을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했다.

그 결과 여성 대법관, 재야 출신 대법관(학계나 변호사 경력의 대법관)이 임명돼 대법원 구성이 점진적으로 다양화됐고, 대법원장의 자의적 제청을 통제하기 위한 대법관 후보자 추천위원회 제도(추천위원회)가 도입됐다. 사법농단 이후에는 추천위원회가 형식적 거수기로 운영된다는 자성 아래 법관대표회의가 판사 위원을 독립적으로 선출해 실질적 추천 심사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대법원 구성을 둘러싼 제도 변천사를 살펴보면, 대법원 구성의 민주적 정당성과 사법 독립이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장의 권한 행사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민주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대통령과 국회의 권한만을 강조할 경우, 다수결 원칙을 강하게 반영하는 대통령과 국회의 특성이 다수에 맞서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사법의 책무와 충돌할 수 있고, 특히 정권의 사법 장악 위험을 발생시킨다. 독재를 경험한 사회에서 이 위험은 가볍게 취급할 수 없다. 한편, 대법원장의 인사권이 판사 서열화와 결합하면 사법농단으로 입증된 것과 같이 판사 통제와 재판 독립 침해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이를 사법 독립 확보 방안이라 볼 수 없다.

따라서 ‘대통령 의사에 따르면 민주적 정당성 확보, 대법원장 의사에 따르면 사법 독립 확보’라는 식의 단순한 도식에 따라 대법관 임명 절차를 해석하고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힘겨루기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추천위원회 구성 및 심의, 국회 인사청문회 등을 실질화하고 각 헌법기관에 제청, 동의, 임명에 관한 설명의무를 부과해 시대상에 맞는 대법관을 찾아내고 과정 전반에 걸쳐 민주적 정당성과 사법 독립의 가치가 반영될 수 있도록 집중해야 한다.

류영재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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