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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태훤 칼럼] 장관도 대변인도 삼킨 ‘140자 소통’

1977년 취임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테니스장 이용 시간표를 직접 짜고 보고서 오탈자까지 손수 챙길 정도로 꼼꼼했다.

[전태훤 칼럼] 장관도 대변인도 삼킨 ‘140자 소통’

전태훤 부국장 겸 부동산유통부장

1977년 취임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테니스장 이용 시간표를 직접 짜고 보고서 오탈자까지 손수 챙길 정도로 꼼꼼했다.

그런 그의 ‘디테일’은 당시 미국이 오일쇼크, 살인적인 물가상승, 이란 인질 사태와 같은 커다란 국가적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독이 됐다. 비상 시국에 언론에 폭로된 대통령의 ‘테니스장 일화’로 그는 잡무에 신경 쓰느라 ‘큰 그림’을 놓치는 무능한 리더로 낙인찍혔다. 대통령의 과도한 간섭이 부른 이 촌극은 결국 1980년 재선 실패로 이어졌다.

지도자의 ‘빗나간 디테일’이 제국을 멸(滅)한 사례도 있다.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는 밤낮없이 정무를 꼼꼼히 살필 정도로 부지런했다. 그랬던 세심함과 근면함은 지나친 간섭으로 변질됐다. 민란과 전쟁통에서도 지엽적 행정과 아집에 매몰된 그는 17년간 지금의 총리 격인 내각대학사를 50명이나 갈아치우며 조정의 마비를 불렀다.

그는 전장의 전술마저 궁궐에 앉아 자기 뜻대로 통제했다. 전장에 대한 권한 위임 없이 전술까지 옭아맨 황제의 빗나간 통제에 떠밀려 억지 출전한 명군은 청에 대패했고, 1644년 명나라는 멸망했다.

기시감은 2026년 대한민국 국정 컨트롤타워에서도 비친다. 백악관의 테니스장과 명나라의 전술 지도가 대통령 스마트폰 속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로 바뀌었을 뿐이다. 엑스를 통해 대중과 직접 맞닿아 현안을 챙기며 지시를 내리는 파격적이고 기동성 넘치는 이재명 대통령의 전례 없던 ‘사이다’ 소통에 대중은 환호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국가 시스템이 치르는 비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당장 거대한 관료 조직이 대통령의 손끝만 쳐다본다. 주무 부처 장관의 묵직한 정책 발표와 청와대 대변인의 마이크는 수시로 정책 메시지가 쏟아지는 ‘140자 공간’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관료들은 부처 간 이견 조율을 거칠 새도 없이, 엑스에 올라온 텍스트에 맞춰 사후 논리를 꿰맞추는 수동적 ‘뒤처리반’으로 전락했다.

위태로운 정책 메시지의 민낯은 최근 부동산 현안을 진단한 대통령의 게시글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 대통령은 “2022년 선거 이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급감했던 인허가와 착공이 회복되고 있다”며 “조만간 주택 공급이 정상화된다”고 썼다. 짧은 문장이지만 그 안에 담긴 현실 인식의 간극은 컸다.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인허가가 급감했다”고 했지만, 분명한 이유는 있었다. 금리는 치솟았고,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줄은 말라붙었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 가격은 폭등했다. 집을 지을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와 미분양 리스크 속에서 민간이 발버둥 친 냉혹한 ‘산수’의 결과다.

“조만간 공급이 정상화된다”는 낙관론도 공허하다. 인허가부터 입주까지 빨라야 3년이다. 당장 오늘 인허가 도장이 찍혀도 시장에 집이 풀리는 건 2029년 언저리다. 지난 3년의 ‘인허가 절벽’은 향후 3년의 ‘입주 가뭄’이라는 청구서로 이미 날아들고 있다. 엑스에 적힌 단문 몇 줄로 눈앞에 닥친 물리적인 공급 빙하기를 건너뛸 순 없다.

짧은 글엔 금리, 경매, 주택담보대출 연체 등 국가 경제의 뇌관들이 모두 얹혔다. 심지어 대출 제한을 호소하는 특정 개인의 답글에는 “(여전히 시정되지 않은 현장이 있다면) 대출이 가능하도록 조치하겠다”는 친람(親覽)까지 담겼다.

금리와 대출 규제는 경제 관련 부처가 치열히 고민하고 신중해야 할 영역이다. 국가 최고 지도자가 즉석 민원 처리를 하듯 핀셋 지시를 내리는 순간, 시장의 형평성은 깨지고 정책의 예측 가능성은 흔들린다. 이런 ‘미시 관리’는 당장 지지층의 환호를 이끌어낼진 몰라도, 결과적으로 공직 사회를 무력감에 빠뜨리고 국정 불신을 키울 수 있다.

대중과 직접 소통하며 오해를 뚫고 나가려는 절박함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공식 채널보다 소셜미디어를 택한 소통은 오히려 불확실성과 초조함을 증폭시키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장·차관이 브리핑룸에 서고 대변인이 마이크를 켜야 한다. 주택시장의 정상화도 국정 운영의 쇄신도 엑스의 타임라인 안에서 세워지지 않는다.

전태훤 기자(besame@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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