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빈 트러스트 커넥터 대표·서강대 AI.SW 대학원 특임교수
"지능은 폭발적으로 진화하고 있지만, 우리가 그 지능이 내린 결정을 완벽히 신뢰할 수 있는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과제다."
기업과 개인의 모든 가치 창출 중심이 인공지능으로 재편되는 'AI 네이티브(AI Native)' 시대다. 금융권 역시 거대언어모델(LLM)을 도입해 신용평가부터 자산 관리까지 핵심 업무를 자동화하며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 발전 이면에는 '신뢰(Trust)'의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AI의 환각(Hallucination), 데이터 편향성, 정교한 딥페이크 위협은 무결성이 생명인 금융 생태계를 흔들 수 있는 치명적 리스크다. 단순한 인프라 확장이나 모델 성능 경쟁만으로는 이 신뢰의 공백을 메울 수 없다.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데이터 출처를 수학적으로 담보할 구조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그 해답은 블록체인 기반의 Web 3.0에 있다. AI가 혁신을 견인하는 초고성능 엔진이라면, Web 3.0은 그 질주가 궤도를 이탈하지 않도록 잡아주는 신뢰 인프라다. 두 기술의 융합이 가져올 변화를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딥러닝 기반 AI는 태생적으로 연산 과정을 역추적하기 어려운 '블랙박스'라는 한계를 지닌다. 이는 규제가 엄격한 금융권에서 특히 큰 부담이다. 예컨대 AI가 특정 기업 가치를 비정상적으로 낮게 평가했을 경우, 입력 데이터의 조작 여부를 입증해야 한다. 훈련 데이터의 일부만 오염돼도 판단 전체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위변조가 불가능한 분산원장 기술이 역할을 한다. 금융사가 AI 학습에 사용한 데이터의 해시값과 학습 로그를 블록체인에 기록하면 데이터 출처(Provenance)와 무결성을 검증할 수 있다. 감사나 규제 대응 과정에서도 AI 판단이 신뢰 가능한 데이터에 기반했다는 점을 즉각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인프라가 된다.
AI와 Web 3.0의 결합은 '에이전틱 AI(Agentic AI)', '스마트 컨트랙트', '스테이블 코인'의 결합에서 본격적인 전환점을 맞는다. 에이전틱 AI는 인간 개입 없이 목표를 인식하고 외부 시스템을 활용해 스스로 의사결정을 수행한다.
문제는 이러한 AI가 기존 금융 시스템에서는 계좌 개설이나 거래 수행이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또한 초미세 단위의 빈번한 거래를 기존 결제망으로 처리할 경우 비용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 블록체인 기반 스마트 컨트랙트와 스테이블 코인은 이를 해결한다.
AI 에이전트는 자체 지갑을 통해 데이터를 거래하고, 가치가 안정된 스테이블 코인으로 즉시 정산할 수 있다. 인간 개입과 중개 비용이 최소화되는 '머신 투 머신(M2M)' 경제, 즉 자율 금융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보안 측면에서도 변화가 요구된다. 딥페이크와 해킹 위협이 고도화되는 환경에서 기존 경계 기반 보안 모델은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는 '아무것도 신뢰하지 않고 항상 검증하는' 제로 트러스트(Zero Trust) 아키텍처가 필요하다.
탈중앙화 신원증명(DID)과 영지식 증명(ZKP)은 이러한 환경에서 핵심 기술로 작용한다. AI는 고유한 DID를 통해 신원을 검증받고, 네트워크 내에서 권한을 암호학적으로 확인받는다. 특히 영지식 증명은 원본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고도 조건 충족 여부를 증명할 수 있어, 민감 정보 보호와 검증을 동시에 가능하게 한다. 데이터 공유 없이 신뢰만 검증하는 새로운 데이터 경제가 열리는 셈이다.
현재 국내 금융권은 AI와 블록체인 조직이 분리된 채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두 기술은 분리될 수 없는 상호 보완 관계다. 에이전틱 AI의 자율성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Web 3.0 기반 신뢰 인프라가 필요하며, Web 3.0 확산 역시 AI라는 활용 기반이 전제돼야 한다.
미래 경쟁력은 모델의 규모가 아니라, 설명 가능하고 안전한 AI 시스템을 구축하는 능력에서 결정될 것이다. 이를 위해 경영진은 기술 도입을 넘어 통합 전략을 실행해야 한다.
첫째, AI와 블록체인·보안 인력을 결합한 전담 조직을 구축하고, 둘째, AI 의사결정 과정을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개념증명(PoC)을 추진하며, 셋째, 에이전틱 AI와 스테이블 코인을 연계한 스마트 컨트랙트 기반 인프라를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초고속 엔진인 AI, 투명성을 보장하는 암호 기술, 안정적인 가치 저장 수단이 결합될 때 비로소 신뢰 기반 금융 생태계가 완성된다.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가장 빠르고 안전한 경로를 확보하는 기업이 차세대 금융 경쟁의 승자가 될 것이다.
윤석빈 트러스트 커넥터 대표 / 서강대 AI.SW 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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