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의 시간을 품은 도시 전주.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곳이다. 단순히 지역 사람들의 삶과 기억, 그리고 전설이 켜켜이 쌓인 공간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 속에서도 오래된 이야기와 장소의 의미는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있다. 용이 승천하다 떨어졌다는 흥미로운 지명전설을 바탕으로, 과거 교통과 시장의 중심지였던 용머리고개의 역사와 오늘날의 모습을 함께 담아보고자 했다. /편집자 주
한옥마을 담장 너머로 햇살이 번진다. 경기전 돌담길에는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스친다.
전주는 오래된 도시다. 오래된 도시들은 대개 그렇다. 골목 하나에도 이야기가 숨어 있고, 이름 하나에도 시간이 남아있는 것처럼.
그중에서도 유독 낯설고도 신비로운 이름이 있다. 바로 ‘용머리고개’가 그 주인공이다.
처음 듣는 사람들은 되묻는다.
“왜 하필 용머리일까?”
누군가는 산의 모양 때문이라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오래된 전설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고개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나면 사람들은 깨닫게 된다. 용머리고개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다. 전주의 과거와 현재가 함께 흐르는 하나의 긴 이야기다.
▲용머리고개, 시작을 만나다
옛날 전주천에는 용이 살았다고 한다. 그 용은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 오랜 세월 수행을 했다. 천 년 동안 물속에서 몸을 숨긴 채 때를 기다렸고, 마침내 승천할 날이 찾아왔다. 용은 전주천의 물을 모두 삼킬 듯 거세게 몸부림을 쳤고, 거대한 비늘을 뒤집으며 하늘로 솟구쳤다.
하지만, 운명은 마지막 순간 가장 잔인했다. 천 년 수행 가운데 단 하루가 부족했던 것이다.
하늘 문턱까지 올라갔던 용은 끝내 힘을 잃고 추락했다.
몸은 완산칠봉 계곡 쪽으로 떨어지고, 머리는 지금의 용머리고개 자리에 남았다고 전해진다.
사람들은 용의 머리가 떨어진 자리라고 해서 이곳을 ‘용머리고개’라 불렀다고.
전설은 허무하다. 겨우 하루 때문에 하늘로 가지 못한 용이라니.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단순한 옛날이야기로만 듣지 않는다. 마지막 한 걸음을 채우지 못한 존재의 아쉬움, 끝내 닿지 못한 꿈에 관한 안타까움이 전설 속에 묻어 있기 때문이다.
용머리고개에는 또 다른 이야기도 남아 있다.
고려의 명장 강감찬 장군과 관련된 전설이다. 아루 오래전 전주에 심한 가뭄이 들었던 때, 논바닥은 갈라지고 사람들은 하늘만 바라보며 비를 기다렸다.
그런데 어느 날, 강감찬 장군이 전주천을 건너는 초립동 하나를 발견했다. 장군은 그 아이를 붙잡고 크게 꾸짖었다고.
“백성들이 이렇게 고통받는데 어찌 비를 내리지 않느냐!!!”
그러면서 당장 비를 내리지 않으면 목을 치겠다고 호통을 쳤다고. 사실 그 아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잠시 인간으로 변한 용이었다.
장군의 꾸짖음을 들은 용은 결국 하늘에 비를 뿌렸고, 모든 힘을 다한 채 용머리고개 근처에 떨어져 죽었다고 전해진다. 전설 속 용은 단순한 상상의 동물이 아니다. 우리 민간신앙에서 용은 물과 비를 다스리는 존재였다. 풍년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수호신 같은 존재였던 셈이다,
▲용머리고개, 과거를 만나다.
전국 곳곳에는 용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용두산, 용연, 용담 등등.
그중에서도 전주의 용머리고개는 특별하다. 단순히 지형의 모양을 설명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사람들의 삶과 희망까지 담아냈기 때문이다.
지금의 용머리를 고개를 찾는 사람들은 조금 의아할지도 모른다.
‘전설 속 장소라고 하기엔 너무 평범한데?’ 실제로 현재의 용머리고개는 조용한 동네에 가깝다. 자동차 몇 대가 지나가고, 오래된 주택들이 이어진다. 언뜻 보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하지만 이 고개는 한때 전주 남부권의 중요한 길목이었다.
북쪽으로는 전주천과 구도심이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김제와 부안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자연스럽게 사람과 물자가 몰렸다. 곡식이 오가고 장이 섰으며, 장사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늘 기술이 따라온다. 용머리고개에는 장인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쇠를 두드리는 대장간이 들어서고, 놋그릇을 만드는 유기전도 생겨났다.
뜨거운 불길 앞에서 망치를 내리치는 소리는 동네의 일상이었다.
‘쨍, 쨍, 쨍’ 쇠 부딪히는 소리가 고개 전체에 울려 퍼졌고, 장인들의 손끝에서는 생활에 필요한 물걸들이 탄생했다. 지금처럼 공장에서 물건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가 아니었다.
한 사람의 기술과 손맛이 곧 생계였고 자부심이었던 시절. 당시 용머리고개는 살아 있는 시장이었다. 짐을 실은 사람들이 오갔고, 장사꾼들은 목청 높여 손님을 불렀다. 아이들은 골목을 뛰어다녔고, 어른들은 평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의 조용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도로가 넓어지고 도시 구조가 바뀌면서 사람들의 이동 방식도 달라졌다. 시장의 중심은 다른 곳으로 옮겨갔고, 전통 산업은 점점 설 자리를 잃었다. 그렇게 대장간 불빛은 하나둘 꺼졌고, 유기전의 망치 소리도 점차 사라졌다.
▲그리고, 용머리고개의 지금
활기로 가득했던 용머리고개는 천천히 희미해졌다.
젊은 사람들은 떠났고, 골목은 조용해졌다.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이곳은 점점 희미해졌다. 한때 전주의 중요한 생활공간이었던 곳이 평범한 오래된 동네로 남게 된 것이다.
도시는 늘 새로움을 향해 움직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래된 공간은 쉽게 잊힌다. 용머리고개도 그런 장소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이 조용한 고개에 다시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낡은 공간은 정비되고, 주민들이 머물 수 있는 쉼터와 산책길이 조성됐다. 작은 숲과 도서관도 있다.
예전에는 장인들의 망치 소리가 울리던 자리에 이제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린다. 바쁘게 물건을 나르던 길목에는 천천히 산책하는 사람들이 오간다.
무엇보다 달라진 점은 이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예전의 용머리고개가 ‘생계를 위한 공간’이었다면, 지금은 ‘머무르는 공간’에 가까워졌다. 빠르게 지나치는 곳이 아니라 잠시 쉬어가는 장소가 된 것이다.
용머리고개에는 여전히 오래된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낡은 담벼락과 오래된 골목, 천천히 이어지는 계단길 사이로 과거의 풍경이 겹쳐 보인다. 그래서 이곳을 걷다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마치 현재를 걷고 있는데 동시에 과거 속을 지나가는 느낌이다.
전주의 골목은 늘 따뜻하다. 오늘도 용머리고개에는 사람들이 지나간다.
누군가는 출근길에 무심코 지나치고, 누군가는 산책을 하며 천천히 걸어간다. 아이들은 웃으며 뛰어다니고, 오래 이 동네를 지켜온 주민들은 골목 어귀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천년을 기다렸지만 마지막 하루를 채우지 못했던 용. 하늘에 닿지 못한 채 이 땅에 남아버린 존재, 어쩌면 그 용은 아직도 떠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전주의 시간을 지켜보며 과거와 현재 사이를 조용히 헤엄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니박스>
식민지 설움 속 배움 열망·청춘 품은 빛바랜 졸업장
빛바랜 황색 종이, 모서리는 세월의 풍파를 이기지 못하고 닳아 흔적만 남았다. 하지만 그 위에 정갈하게 쓰인 묵직한 글씨체와 붉은 낙인은 여전히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낸다.
바로 100여 년 전, 일제강점기라는 엄혹한 시절을 관통했던 전주제이공립보통학교(全州第二公立普通學校)의 졸업증서다.
제15회 전주 기록물 수집공모전에 최우수 기록물로 선정된 박종탁 기증자의 기록물이다. 이 한 장의 종이는 단순한 학업 이수의 증명을 넘어, 그 시절을 치열하게 살아낸 한 소년의 청춘과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타임갭슐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무척 생소한 이름 ‘전주제이공립보통학교’. 하지만 이 학교는 현재 전주 교육의 중심이자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주완산초등학교’의 전신이다.
당시 일제는 한국인들이 다니는 학교를 ‘보통학교’라 불렀다. 전주제일공립보통학교(현 전주초등학교)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이곳에서, 아이들은 우리말 대신 일본어를 배우고 일제의 황민화 교육을 강요받았다.
졸업증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시의 시대상을 선명히 읽을 수 있다. 증서의 한편에는 단기(檀紀)나 서력(西曆) 대신 일제의 연호(쇼와 등)가 뚜렷하게 박혀 있다. 식민지의 설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검정 교복을 입고, 머리를 빡빡 깎은 채 이 증서를 손에 쥐었을 소년은 과연 어떤 미래를 꿈꿨을까?
나라를 빼앗긴 설움 속에서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흔적이 손 끝에 만져질 듯 생생하다.
세월이 흘러 종이는 바래고 글씨는 흐려졌지만, 이 졸업증서가 가진 가치는 더욱 또렷해진다. 암흑 같았던 시대 속에서도 묵묵히 배움을 이어가며 미래를 준비했던 선대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히 누리고 있는 학교와 졸업장, 그리고 우리말로 나누는 대화들. 이 빛바랜 졸업증서는 그 당연한 것들이 결코 당연하게 얻어진 것이 아님을, 수많은 이들의 인내와 눈물 위에서 피어난 결과물임을 조용히 이야기한다.
전주제이공립보통학교의 졸업증서. 한 개인의 기록을 넘어,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전주 교육의 역사이자 우리 민족의 살아있는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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