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전북 서양화가 이복수와 금산사 대적광전 벽화 사례를 통해, 사라진 작품과 기록의 의미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원형의 소실과 복원, 그리고 다시 사라진 과정을 통해 기록이 지니는 의미를 다시 짚어본다.
전북 미술사를 돌아볼 때, 눈에 보이는 작품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때로 보이지 않는 기록이다. 전시장의 조명 아래 놓인 완성된 그림은 분명 강한 인상을 남기지만, 그것이 시간 속에서 그대로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시간이 흐른 뒤 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그 작품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방식으로 남겼는가에 대한 흔적일 수 있다. 서양화가 이복수의 작업은 바로 이 지점에서 다시 읽힐 필요가 있다. 그는 단지 그림을 그린 화가가 아니라, 사라질 수 있는 것을 남기는 또 하나의 태도를 보여준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복수는 전형적인 미술 교육 경로와는 거리를 둔 작가였다. 일본 오사카에서 상업학교를 다니며 접한 미술 수업, 그리고 귀국 이후의 독학과 동료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는 자신의 회화 기반을 스스로 구축해 나갔다. 특정 스승이나 제도에 의존하기보다 관찰과 축적을 통해 감각을 형성해 나간 그의 방식은, 결과적으로 보다 내면화된 회화로 이어진다. 이는 외래 양식의 단순한 수용이 아니라, 삶의 경험과 감각을 통해 재구성된 조형 언어에 가깝다.
그의 회화는 빠른 변화나 과시적 실험과는 거리가 있다. 하나의 대상을 오랜 시간 바라보고, 반복된 관찰 속에서 축적된 감각을 화면 위에 응축하는 방식은 결과보다 과정의 밀도를 중시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는 쉽게 드러나는 완결보다, 시간을 들여 형성된 안정과 깊이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빠르게 생산되고 소비되는 이미지와는 다른 시간의 층위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삶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는 오랜 공직 생활 속에서도 작업을 지속했으며, 예술을 특정한 조건이나 환경에 제한된 활동으로 보지 않았다. 자신의 자리에서 꾸준히 이어가는 작업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였고, 이는 그의 회화를 일시적인 결과가 아닌 지속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해하게 만든다.
또한 그는 전북 서양화단의 형성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신상미술회 활동과 전라북도 미술대전 참여, 그리고 후배 작가들과의 교류는 지역 미술의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특히 그는 개인적 성취를 과시하기보다, 지역 미술이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유지하는 데 더 많은 힘을 기울였다. 이러한 역할은 눈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지역 미술사에서는 매우 중요한 축으로 작용한다.
그의 활동은 회화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미술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데에도 꾸준한 관심을 기울였으며, 전북 미술사에 대한 다양한 기록을 축적해 나갔다. 이러한 자료들은 이후 연구자와 후배 작가들에게 중요한 기반이 되었고, 지역 미술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토대로 작용하게 된다. 이복수는 화가이면서 동시에 기록자였으며, 창작과 보존이라는 두 영역을 함께 수행한 인물이었다.
이러한 성격은 금산사 대적광전 벽화와 관련된 사례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사건은 단순한 작품의 소실을 넘어, 기록이 어떤 방식으로 시간을 견디고 의미를 갖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대적광전 벽화는 당시에도 널리 알려진 작품이었다. 채색 없이 선만으로 이루어진 화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강한 생동감을 지니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화면 속 인물의 시선과 선의 흐름은 정지된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고, 이러한 특성은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이 벽화는 국보 지정이 논의될 만큼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국내외 화가들 사이에서도 크게 주목받은 작품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 벽화는 금산사 대적광전(보물 제476호) 보수 과정에서 원형을 잃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이복수가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일부 복원이 이루어졌지만, 복원된 벽화마저 보수 공사 과정에서 다시 소실되면서 원형과 복원된 모습 모두를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하나의 작품이 두 차례에 걸쳐 사라지는 이 과정은, 물리적 대상이 얼마나 쉽게 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보존의 취약한 현실을 드러낸다.
이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기록이다. 이복수는 벽화가 훼손되기 이전, 이미 그 화면을 직접 옮겨 기록으로 남겨 두고 있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원형을 충실하게 따라 그린 이 자료는 단순한 모사나 재현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기록 행위였다. 이러한 기록은 이후 복원의 근거로 활용되었으며, 원형이 사라진 이후에는 그 작품을 짐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단서로 남게 된다.
이복수의 기록은 의도된 대비라기보다 자연스러운 축적의 결과였다. 그러나 그 기록은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그것은 더 이상 개인의 작업 자료가 아니라, 사라진 작품을 다시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하나의 기반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처럼 기록은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라진 것을 다시 사유하게 만드는 매개로 기능한다.
이 사례는 문화재 보존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무엇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 그리고 남겨진 것은 어떤 방식으로 이어질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물리적 원형은 훼손되거나 사라질 수 있지만, 그것을 기록한 흔적은 다른 형태로 지속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록이 존재할 때, 우리는 완전히 소실된 대상조차 일정한 방식으로 다시 접근할 수 있다.
이복수의 작업은 바로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는 단지 이미지를 제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남기는 방식까지 함께 수행한 인물이었다. 그의 기록은 결과적으로 작품의 일부가 되었으며, 사라진 이후에도 그 작품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또한 그는 전북 미술사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데에도 큰 기여를 했다. 다양한 도록과 기록을 모아 후대에 전달한 그의 활동은, 개인의 창작을 넘어 지역 미술의 기반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는 한 작가의 작업이 단순한 개인의 영역을 넘어, 공동의 기억을 구성하는 요소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이복수를 다시 바라본다는 것은 한 작가의 생애를 정리하는 것을 넘어, 미술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남겨지는가를 다시 묻는 일이다. 보이는 작품은 사라질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기록과 시간의 축적은 또 다른 방식으로 지속된다. 그리고 그 축적이 모일 때 비로소 하나의 미술사가 형성된다.
대적광전 벽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벽화를 기억하게 만드는 근거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 작가가 남긴 기록이 있다.
사라진 것을 완전히 되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기억할 것인가는 남겨진 기록에 의해 결정된다. 이복수의 작업은 바로 그 사실을 보여준다. 그는 그림을 그린 화가였지만, 동시에 사라진 이후까지를 이어주는 흔적을 남긴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은 이제 하나의 작품이나 업적을 넘어, 사라진 이후에도 무엇이 남을 수 있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기준으로 읽힐 필요가 있다.
전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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