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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라 Insight] 여성 배움의 터전 전주 기전중

지켜야 할 것을 위해 스스로 문을 닫았던 학교가 있다.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를 거부한 ‘전주기전중학교’의 선택이었다. 1900년 여학생 6명으로 시작한 기전은 학생들의 3·1운동 참여와 자진 폐교, 광복 이후 복교를 거치며 126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전라 Insight] 여성 배움의 터전 전주 기전중

전주 기전중학교

지켜야 할 것을 위해 스스로 문을 닫았던 학교가 있다.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를 거부한 ‘전주기전중학교’의 선택이었다. 1900년 여학생 6명으로 시작한 기전은 학생들의 3·1운동 참여와 자진 폐교, 광복 이후 복교를 거치며 126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여학생들의 배움터로 출발한 학교는 이제 남녀 중학생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으로 달라졌으나, 사람을 바로 세우는 교육은 계속되고 있다. 오랜 역사를 학생들에게 전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함께 살아갈 ‘기본’을 가르치는 것도 그 연장선이다. 이에 본보는 굴곡진 세월을 넘어 오늘의 중학생들과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전주기전중을 찾았다.

1904년도 기전여학교

■여학생 6명으로 시작된 배움

전주기전중학교의 역사는 대한제국 시기인 1900년 4월 24일 시작됐다. 미국 남장로교 최마태(Mattie Tate) 선교사가 여학생 6명을 모아 교육을 시작한 것이 출발점이다. 여성이 정규 교육을 받기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사진에는 곱게 머리를 땋고 한복을 차려입은 어린 여학생들이 교사와 함께 카메라 앞에 선 모습이 남아 있다. 오늘날 수백 명의 남녀 중학생이 생활하는 기전의 첫 시작이었다. 1904년 9월에는 전킨(전마리아) 선교사가 제1대 교장으로 취임했다. 1909년에는 학교 이름을 ‘전목사 긔렴여중학교(Junkin Memorial School for Girls)’로 정했다. 학교 이름인 ‘기전’에도 초창기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학교 측에 따르면 초대 교장 전킨의 이름을 거꾸로 배열해 ‘기전’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6명으로 시작한 배움은 조금씩 뿌리를 내렸다. 첫 졸업생을 배출했고, 교실을 채우는 학생들도 하나둘 늘어갔다. 하지만 기전의 교실은 배움에만 머물지 않았다. 나라를 빼앗긴 시대, 학생들은 결국 교문 밖으로 나서게 된다.

"이승만 대통령과 임영신 여성 최초의 상공부장관(3회 졸업)" "제1대 전마리아 교장 가족" "제1대 전마리아 교장" "1회 졸업사진" "1904년도 기전여학교" "기전중 현재 모습" "김우식 교장 사진(옛날사진)"

"이승만 대통령과 임영신 여성 최초의 상공부장관(3회 졸업)" "제1대 전마리아 교장 가족" "제1대 전마리아 교장" "1회 졸업사진" "1904년도 기전여학교" "기전중 현재 모습" "김우식 교장 사진(옛날사진)"

"이승만 대통령과 임영신 여성 최초의 상공부장관(3회 졸업)" "제1대 전마리아 교장 가족" "제1대 전마리아 교장" "1회 졸업사진" "1904년도 기전여학교" "기전중 현재 모습" "김우식 교장 사진(옛날사진)"

"이승만 대통령과 임영신 여성 최초의 상공부장관(3회 졸업)" "제1대 전마리아 교장 가족" "제1대 전마리아 교장" "1회 졸업사진" "1904년도 기전여학교" "기전중 현재 모습" "김우식 교장 사진(옛날사진)"

■교실을 나와 거리로…독립을 외친 학생들

배움의 터전을 넓혀가던 기전은 일제강점기 역사의 한복판에 서게 된다. 1919년 3월, 전국을 뒤덮은 독립만세의 함성이 전주에도 번졌다. 기전여학교 학생들도 교실을 나와 거리로 향했다. 같은 해 3월 13일 전주에서 펼쳐진 3·1운동에 기전여학생들이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 13명이 붙잡혀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나라를 빼앗긴 현실 앞에서 어린 여학생들도 물러서지 않았다. 배움을 위해 모였던 학생들이 이제는 거리에서 독립을 외친 것이다. 일제의 탄압은 이후 학교까지 향했다. 1930년대 신사참배 강요가 거세지면서 기전도 선택의 기로에 섰다. 학교를 계속 운영하기 위해 일제의 요구를 따를 것인지, 문을 닫더라도 신앙과 교육의 뜻을 지킬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기전의 선택은 후자였다. 1937년 10월 5일, 학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스스로 문을 닫았다. 여학생 6명으로 첫 수업을 시작한 지 37년 만이었다. 닫힌 교문은 광복과 함께 다시 열렸다.

제1회 졸업식

■9년 만에 복교...그 이후

기전은 일제 패망 이듬해인 1946년 11월 26일 복교했다. 폐교한 지 9년 만이었다. 학생들이 다시 교실을 채우면서 끊겼던 배움의 맥도 이어졌다. 1962년 학교법인 호남기독학원 체제로 개편된 뒤 오랜 기간 여학교의 전통을 이어갔다. 또 한 번의 변화는 2004년 찾아왔다. 현재의 교지로 신축 이전하면서 교명을 전주기전중학교로 바꾸고 남녀공학으로 전환했다. 터전은 바뀌었지만 100년 넘게 쌓아온 역사까지 두고 오지는 않았다. 교정에는 전킨관을 비롯해 최명희관과 믿음·소망·사랑관 등 저마다 이름을 가진 건물들이 자리한다. 학교가 지나온 역사와 정체성을 공간 곳곳에 새긴 것이다. 과거의 역사는 오늘의 학생들에게도 이어진다. 입학식 등 주요 행사 때면 3·1운동에 참여한 선배들과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교문을 닫았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독교계 학교의 교육 전통도 시대에 맞게 달라졌다. 매일 아침 6~10분가량 갖는 경건회에서는 삶과 인성에 관한 좋은 이야기와 음악으로 하루를 연다. 한 달에 한 차례 함께하는 시간도 종교적 형식보다 학생 참여와 인성교육에 무게를 둔다. 학교의 규모도 몰라보게 커졌다. 6명으로 출발한 기전중은 올해 28학급, 737명의 남녀 학생이 생활하고 있다. 지금까지 배출한 졸업생은 2만 4948명에 달한다. 여섯 명으로 시작된 배움은 그렇게 126년을 건너 오늘의 중학생들에게 이어지고 있었다./조은우

김우식 전주기전중 교장

■미니인터뷰|김우식 전주기전중 교장

“126년 역사에 걸맞은 ‘명품 학생’…기본 갖춘 사람으로”

김우식 전주기전중 교장은 126년의 역사가 학생들에게 자부심이 되길 바란다. 오래된 학교에 다닌다는 데 그치지 않고 그에 걸맞은 생각과 행동을 갖추는 것까지가 ‘기전의 학생다움’이라는 생각에서다. 김 교장은 “명품학교에 다니는 학생인 만큼 행동도 달라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며 “아이들이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중학교 3년 동안 학생들에게 심어주고 싶은 것도 이와 맞닿아 있다. 성적이나 지식에 앞서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이다.

그는 “성인이 돼서도 기본에 충실한 사람이 됐으면 한다”며 “기본이 갖춰지지 않으면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사회생활을 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매일 아침 좋은 이야기와 음악으로 하루를 여는 것도 같은 이유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보다 3년 동안 차곡차곡 쌓인 시간이 학생들의 생각과 행동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를 기대한다.

졸업생들이 교사들을 만나러 다시 학교를 찾는 모습에서도 교육의 의미를 확인한다. 졸업생들이 “중학교 때가 좋았다”고 말할 때면 학교에서 보낸 시간이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기전이 오랫동안 이어온 기독교 정신도 결국 ‘사람’으로 향한다. 김우식 교장은 “이웃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이 됐으면 한다”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이 가진 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 줄 아는 아이로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조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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