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학교전경
현재 적상초 전경
덕유산의 웅장함과 적상산의 붉은 치맛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싼 전북 무주군 적상면.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들녘 한가운데, 1923년에 개교해 무려 103년의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적상초등학교(교장 허윤종)가 자리하고 있다.
오랜 세월 지역 인재의 요람이었던 이곳도 농어촌 인구 감소의 파도를 피할 수는 없었다. 현재 적상초의 전교생은 단 15명이며 전체 학생의 약 47%가 이주배경학생(다문화 가정)이다.
도시의 거대한 학교들에 비하면 턱없이 작고 소외된 환경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교문을 들어선 적상초의 풍경은 그 어떤 대도시의 명문 학교보다 넓은 세계를 품고,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 있다.
적상초등학교는 농어촌 소규모 학교가 가진 공간적·문화적 한계를 첨단 에듀테크와 파격적인 글로벌 체험학습으로 돌파하고 있다. 공교육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학교의 롤모델을 제시한다.
월드 브릿지
월드 브릿지
- 위기를 기회로 바꾼 발상의 전환, 이중언어로 세계를 잇는 '월드브릿지’
△ 적상초 교육 혁신의 가장 큰 원동력은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에서 출발한다. 학생의 절반에 가까운 이주배경학생 비율을 학습 부진이나 적응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글로벌 시대를 이끌어갈 엄청난 무기이자 자산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교육부 요청 ‘이주배경학생 밀집학교 교육력 제고 정책연구학교’로 지정된 적상초는 『다! 이룸』 모델을 선도적으로 개발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사회적 교류 활동인 '월드브릿지' 프로젝트다. 3~6학년 학생들은 스스로 베트남어와 캄보디아어 이중언어 동아리를 조직해 원어민 마을 강사와 함께 실생활 회화를 배운다. 단순히 언어를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에듀테크 도구인 '채터픽스(ChatterPix)' 등을 활용해 직접 교육 콘텐츠를 제작하고 이를 비이주배경 친구들에게 가르쳐준다.
교실에서 싹튼 글로벌 역량은 바다를 건너 거대한 꽃을 피운다. 농어촌 아이들이 다양한 문화적 식견을 넓힐 수 있도록 매년 전교생 대상 '글로벌 미래체험학습'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 중국 상하이, 2025년 일본 오사카를 다녀온 데 이어, 올해 2026년 9월에는 베트남 다낭과 호이안으로 4박 5일간의 뜻깊은 여정에 오른다.
이주배경학생들은 동아리에서 갈고닦은 어머니의 모국어를 현지에서 직접 사용해 보고, 다른 학생들은 친구의 이중언어 실력에 감탄하며 자연스럽게 문화적 포용력을 배우게 된다. 다문화라는 배경이 아이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최고의 훈장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일본 수학여행
- 첨단 AI 시대, 가장 혁신적인 무기는 다름 아닌 '독서와 문해력’
△ 전북미래학교로 지정된 적상초는 패드와 노트북, 스마트 TV 등 최첨단 디지털 인프라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매일 아침 학생들은 리드포스쿨, 알공 등 AI 코스웨어에 접속해 개개인의 수준에 맞춘 수학, 영어, 국어 맞춤형 학습을 진행한다.
하지만 첨단 에듀테크 교육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으로 꼽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아날로그적인 '독서와 문해력'이다. 화려한 AI 기술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사고력이 탄탄하게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른바 디지털 인문학의 소양을 길러야 한다는 굳건한 교육 철학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적상초는 아침 10분 동안 오롯이 활자에 빠져드는 '아침 독서-그냥 읽어요' 시간을 운영하고, 전라북도교육청 추천도서 100선을 활용한 독서 교육을 실시한다. 나아가 도서관 연계 수업, 독서 행사, 독서 통장 등 일상이 되는 독서 문화를 정착시켰다.
특히 교과 학습에 필요한 학습도구어와 개념어를 깊이 있게 파고드는 '나! 이룸 어휘학습모형'은 그 백미다. 아이들은 자체 제작된 '나! 이룸 어휘공책'에 단어의 뜻을 유추해 적고, 퀴즐렛(Quizlet)이나 캔바(Canva) 등 디지털 도구를 활용해 어휘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자기만의 문장을 만들어 낸다. 그 결과 전교생의 문해력과 학업적 자기효능감이 상승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사계절 내내 깨어있는 교실 밖 배움터, '계절학교'와 '상상 미래 숲’
△ 농어촌 소규모 학교의 약점인 부족한 문화 인프라는 '교실 밖으로 나가는 용기'를 통해 완벽히 극복했다. 적상초의 일 년은 사계절의 흐름에 맞춰 다채로운 교육적 테마인 '계절학교'로 쉴 틈 없이 돌아간다.
따뜻한 봄에는 인권과 다문화, 더불어 사는 마음을 가꾸는 '함께! 봄학교'가 열린다. 여름에는 수영 교실과 야영을 통해 생태·안전을 체험하는 '놀자! 여름학교'가 운영되며, 가을에는 다양한 직업 세계를 탐색하는 진로 주간 '꿈꿔! 가을학교'로 이어진다.
특히 겨울에는 하얀 눈밭에서 동계 스포츠를 즐기며 심신을 단련하는 '튼튼! 겨울학교'로 마무리된다. 책상에 앉아 활자로만 세상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오감으로 세상과 부딪치며 체득하는 진짜 교육이다.
여기에 학생 주도적 진로 프로젝트인 '상상 미래(me來) 숲'은 아이들의 꿈을 구체화하는 마법의 캔버스다. 나를 찾는 '미(Me·美)', 미래와 만나는 '래(來)', 함께 성장하는 '숲'이라는 세 가지 철학적 테마다.
아이들은 스스로 적성을 탐색하고, 생성형 AI를 활용해 20년 뒤 자신의 모습을 인터뷰 영상으로 구현해 낸다. 아직 세상에 없는 미래 직업을 기획해 보며 차곡차곡 쌓은 디지털 포트폴리오는 연말 '다이룸 발표회'에서 한 권의 훌륭한 <꿈 책>으로 출간되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허윤종 무주 적상초등학교 교장
[인터뷰] 허윤종 무주 적상초등학교 교장
"작은 학교라고 해서 아이들이 꾸는 꿈의 크기마저 작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 적상초등학교는 전교생 15명의 작은 학교지만, 100년이 넘는 깊은 뿌리와 첨단 에듀테크라는 커다란 날개를 동시에 지닌 강하고 매력적인 학교입니다.
농어촌 소외 지역이라는 환경과 다문화 이주 배경을 아이들이 결코 자신의 한계로 느끼지 않게 해주고 싶습니다. 오히려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하고 두 가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다가올 미래 사회에서 앞서나갈 수 있는 강력한 '월드브릿지(World Bridge)'가 될 수 있습니다.
급변하는 인공지능 시대일수록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삶의 뿌리인 인문학입니다. 독서로 문해력을 탄탄히 다져주고, 그 위에 글로벌 체험과 사계절 학교라는 튼튼한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 바로 공교육의 참된 역할이라 믿습니다.
적상초등학교 15명의 보석 같은 아이들이 자기효능감을 바탕으로,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당당한 세계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사랑과 지원을 쏟아붓겠습니다./무주=김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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