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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라 Insight] 메모리 1등 국가를 만든 주연과 조연들

2026년 현재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1등 국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작업공간 역할을 하는 메모리(DRAM, NAND) 반도체 시장에서 약 70%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전라 Insight] 메모리 1등 국가를 만든 주연과 조연들

2026년 현재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1등 국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작업공간 역할을 하는 메모리(DRAM, NAND) 반도체 시장에서 약 70%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연산에 사용되는 HBM(고대역폭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약 80%를 차지하고 있다. 작년과 올해 AI 투자의 급증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호황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회사의 시가총액은 코스피 전체의 46.3%를 차지할 정도로 커졌다. 삼성전자 주가는 1975년 상장 당시 1,050원(액면가 5,000원)에서 26년 8월 7일 기준 231,000원(액면가 100원)으로 약 11,000배가량 올랐고, 시가총액은 31.5억 원에서 1,350조 원으로 계산이 어려울 정도로 커졌다.

한국을 메모리 반도체 분야 1등 국가로 만든 1등 공신은 누구일까?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라는 의견에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83년 2월 8일 東京 선언을 통해 삼성그룹의 메모리 반도체 분야 진출을 선언했고, 1983년 말 64K D램 개발, 1984년 256K D램 개발, 1986년 1메가 D램 개발을 성공시킴으로써, 오늘날 삼성전자가 시가총액 세계 10위권의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기여했다.

삼성전자는 1983년부터 1990년까지 추격자(Fast Follower) 입장이었지만, 1992년부터는 시장 선도자(First Mover)로서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이처럼 삼성이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과 일본을 빠르게 추격하고 이제는 시장을 선도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삼성 이병철 회장의 혜안과 기업가 정신, 해외 우수 인재의 영입, 전자산업에서 다져진 제조역량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삼성의 이병철·이건희 회장, SK의 최태원 회장 등 성공 신화의 주연들에 관한 게 아니다. 성공 신화에 묻힌 이야기, 주연 아닌 조연에 관한 이야기,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되새겨볼 의미가 있는 이야기다. 훌륭한 조연들이 있어야 주연도 빛난다.

먼저,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1983년이 아니라 1974년에 한국반도체(주)의 지분 50%를 인수하면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삼성반도체통신10년사>, 1987). 그리고,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1등 국가는 1960-70년대 박정희 정부의 전자공업 육성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요컨대, 메모리 반도체 1등 국가 도약의 주연들(이병철, 이건희, 최태원) 외에도 숨은 공로자들, 조연들이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박정희-전두환 대통령, 정주영 회장, 강기동 박사 등이다(아래 표 참조). 이분들은 “정책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정책 결정의 장에 열정적으로 참여”(Mintrom, 2020:1)했다는 점에서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정책선도자(policy entrepreneur)라고 부를 수도 있다.

먼저, 박정희 대통령이다. 반도체 1등 국가의 토대를 닦은 제도와 인프라, 정책을 준비했다.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설립, 1969년 「전자공업진흥법」 제정, 구미공단 등 전자산업 집적지 조성, 반도체 부품조립 관련 외국자본 유치, 1976년 한국전자기술연구소(KIET) 설립 등을 통해서. 특히, KIET는 1985년 ETRI(전자통신연구소)로 전환되면서, 우리나라 반도체와 통신 분야 민간기업의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공공 R&D 허브(거점)로서 기능했다.

둘째, 강기동 박사다. 1962년 美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반도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모토롤라에서 최첨단 반도체(C-MOS LSI) 개발과 생산에 참여했으며, 1974년 한국 최초의 웨이퍼 가공 및 전자 손목시계용 반도체 칩(KS-5001) 생산업체 한국반도체(주)를 설립했다. 당시 반도체 부품을 수입해 저임 노동력을 활용해 조립-수출하는 데 머물렀던 우리나라도 웨이퍼 가공과 반도체 칩 개발­양산-수출이 가능함을 한국반도체(주)를 통해 보여줬다. 오일쇼크로 인한 불황과 자금 경색, 경영수완의 부족으로 지분을 삼성에 넘기고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그 과정에서 “첨단의 반도체 기술을 한국에 이전”했다(<강기동과 한국반도체>, 2018).

셋째, 전두환 대통령이다. 1981년 전경련 초청 특강에서 반도체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회장을 청와대에서 접견하고, 1982년 반도체산업 육성 및 국산화 정책을 발표했다. 1986년에는 반도체 3사와 ETRI가 참여하는 초고집적 메모리(4M DRAM) 반도체의 공동 연구를 지원했다.

인공지능(AI)에게 물었다. 박정희 정부부터 현재까지 최고의 반도체산업 정책은 무엇이었나? 전두환 정부의 1986년의 4M DRAM 공동 연구개발 정책이라고 답했다.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1)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현대전자·금성일렉트론까지 메모리 기술경쟁에 참여시켰고, (2) 정부·출연연(ETRI)·대학·기업의 위험과 비용을 공동 부담했으며, (3) 선진기술을 도입하고 추격하는 단계를 넘어 신기술(4M DRAM)을 독자 개발하는 단계로 넘어갔고, 16M·64M·256M DRAM으로 이어지는 기술학습의 출발점이 됐기 때문입니다.

넷째, 정주영 회장이다. 한국반도체를 삼성에 넘기고 미국으로 되돌아갔던 강기동 박사를 통해 메모리 반도체 분야 진출과 64K D램 개발을 추진했다. 1983년 현대전자(주)를 신설하고 손수 사장에 취임하여 지휘함으로써 삼성-현대의 양자 구도, 1989년 이후 삼성-현대-LG의 3자 경쟁 구도를 촉발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현대전자는 LG반도체와 합병하여 하이닉스가 되었지만, 늘어난 부채와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2012년 SK그룹으로 넘어갔다. 그래서 아쉽게도 조연이다.

역사의 발전은 대부분 직선이 아니고 곡선이다. 한국 메모리 반도체의 역사도 삼성 이병철 회장의 1983년 2.8 東京 선언 이후 일직선으로 순조롭게 발전한 게 아니다. 1965년 이후 60여 년에 걸친 ‘축적의 시간’이 있었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전진과 후퇴, 성공과 실패가 나선형 궤적을 그리며 힘들게 쌓아 올린 성취였다.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발전은 크게 4단계로 나눌 수 있다(아래 <표 4> 참조). 먼저, 조립·패키징 단계다. 1965년 고미반도체를 필두로, 시그네틱스 코리아, 페어차일드 코리아, 모토롤라 코리아, 아남산업, 금성전자, 한국전자 등 반도체 부품조립(後공정)에 주력했던 10여 년이 있었다. 2단계로, 웨이퍼 가공 및 칩 생산 단계다. 1974년 한국반도체(주)의 설립으로 웨이퍼 가공과 칩 제조 등 반도체 前공정을 경험했다. 3단계로, D램 개발 및 선진국 추격 단계다. 1983년 삼성전자의 VLSI 메모리 분야 진출과 64K DRAM 개발 선언을 시작으로, 현대전자(1983)와 LG반도체(1989)가 잇달아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진출했다. 메모리 반도체 3사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미국과 일본의 선진기술을 빠르게 추격했다. 4단계로, 시장 선도 단계다. 1992년 64메가 D램의 세계 최초 개발 이후 시장 선도자의 위치로 올라섰다.

추사체를 완성한 대가(大家) 김정희도 칠십 평생 “열 개의 벼루를 갈아 구멍 냈고, 천 개의 붓을 몽당붓으로 만들었다.”(마천십연 독진천호, 磨穿十硏 禿盡千毫), 고 했다. 메모리 1등 국가와 같은 대단한 성공 뒤에는 60여 년에 걸친 실패와 시행착오, 축적의 시간, 조연들이 빛나고 있다.

전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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