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의 들녘을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풍경의 속도가 달라진다. 논과 밭, 낮은 구릉 사이로 이어진 길 끝에서 커다란 돌 하나가 시야에 들어온다. 누군가 잠시 내려놓고 간 바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 돌은 결코 평범한 바위가 아니다. 넓고 묵직한 덮개돌 아래에는 받침돌이 버티고 있고, 그 틈에는 수천 년 전 이 땅을 살았던 사람들의 시간과 노동, 죽음과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있다. 고창 고인돌 유적은 아산면 죽림리 매산마을을 중심으로 약 1.8㎞에 이르는 야산 기슭에 형성돼 있다. 이 구간에는 440여 기의 고인돌이 무리를 이루며 분포한다. 국가유산청 자료에 따르면 이 일대 고인돌은 기원전 500년에서 400년 무렵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만든 집단무덤으로, 당시 지역을 이끌던 족장층과 그 가족의 무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편집자
고인돌(이태규)
“이걸 정말 사람이 옮겼다고요?”
고창 고인돌 유적을 찾은 방문객들 사이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질문이다. 오늘날에는 대형 크레인과 굴착기, 운반 장비가 있어도 만만치 않을 거대한 돌이다. 그러나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손과 나무, 돌과 밧줄, 그리고 서로의 힘을 모아 이 거석을 옮겼다. 누군가는 산에서 돌을 떼어냈을 것이고, 누군가는 통나무를 굴려 길을 냈을 것이다. 힘센 사람만이 아니라 음식을 나르고, 작업을 지휘하고, 의례를 준비하던 사람까지 마을 전체가 움직였을 가능성이 크다.
고인돌 하나는 무덤이지만, 동시에 한 공동체가 만들어낸 거대한 협업의 결과물이다. 덮개돌 하나가 제자리에 올라가는 순간, 사람들은 한 사람의 죽음을 기렸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얼마나 큰 힘을 함께 낼 수 있는지를 확인했을 것이다.
고인돌공원(정태한)
“돌을 세운 일은 결국 사람을 모으는 일이었겠지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고창군 죽림리와 도산리 일대에 넓게 자리한 고인돌 군락을 천천히 걷다 보면, 이곳이 단순히 무덤 몇 기가 모인 장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들판과 낮은 야산의 자락을 따라 크고 작은 고인돌이 이어진 모습은 마치 선사시대 사람들이 남긴 돌의 행렬처럼 보인다. 돌들은 움직이지 않지만, 보는 이의 상상력은 끊임없이 과거로 향한다.
이곳 고인돌은 전남 화순, 인천 강화의 고인돌 유적과 함께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선사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표 유산이라는 평가다. 세계유산이라는 이름은 화려하지만, 고창 고인돌의 진짜 매력은 오히려 소박한 들녘 풍경 속에 있다. 도시의 거대한 건축물처럼 웅장하게 솟아 있지는 않지만, 수천 년을 견딘 돌의 침묵은 어떤 설명보다 깊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을 보는 것과는 느낌이 다릅니다. 여기서는 돌이 아직도 땅과 이어져 있다는 게 느껴져요.”
유적지를 찾은 한 방문객의 말처럼 고창 고인돌은 유리 진열장 안에 갇힌 과거가 아니다. 봄이면 들꽃과 푸른 새싹이 돌 주변을 감싸고, 여름에는 짙은 녹음과 논의 물빛이 고인돌을 비춘다. 가을에는 황금빛 들판 위로 덮개돌의 윤곽이 한층 선명해진다. 겨울에는 찬 공기 속에서 돌의 거친 표면과 묵직한 세월이 더욱 또렷해진다.
계절은 바뀌고 사람도 달라지지만, 돌은 같은 자리에 남아 있다. 그 변하지 않는 존재감 때문에 고인돌은 때로 웅장한 유적보다 더 가까이 다가온다.
“이 돌 밑에 왕이 있었을까요?”
관광객은 사진을 찍다가도 자연스럽게 걸음을 멈춘다. 아이들은 덮개돌을 올려다보며 “누가 여기 묻혔을까”라고 묻고, 어른들은 “옛사람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감탄한다. 짧은 감탄과 질문 속에서 선사시대는 교과서의 문장을 벗어나 살아 있는 이야기로 되돌아온다.
아이의 질문은 단순하지만, 고인돌 연구가 던지는 핵심과도 닿아 있다. 고인돌은 당시 사회의 계층과 권력, 공동체의 구조를 엿볼 수 있는 유산이다. 큰 돌을 운반하고 무덤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과 자원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인돌은 지역의 유력자나 공동체에서 중요한 위치를 지닌 인물을 위한 무덤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고인돌을 단지 권력의 상징으로만 읽을 수는 없다. 누군가의 죽음을 함께 애도하고, 조상을 기억하며, 땅과 삶의 질서를 이어가려 했던 사람들의 마음도 그 안에 담겼을 것이다. 돌 하나를 옮기는 일은 고된 노동이었겠지만, 동시에 공동체가 함께 치르는 의례이자 미래 세대에게 남기는 약속이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오늘 건물을 세우고 길을 내지만, 옛사람들은 돌로 기억을 세운 셈입니다.”
고창 고인돌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남기며 살아가고 있는가. 무엇을 함께 만들고, 어떤 가치를 다음 세대에 전할 것인가. 수천 년 전의 돌무덤이 현대인에게 여전히 의미를 갖는 이유는 바로 이 질문 때문이다.
고창은 고인돌을 단순한 관광지나 오래된 유적으로만 두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적의 가치와 의미를 알리는 해설, 체험 프로그램, 역사문화 자원과 연계한 관광 콘텐츠를 통해 고인돌을 보다 친근하게 만나는 길을 넓혀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유산을 화려하게 포장하는 데 있지 않다. 돌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오늘의 언어로 되살리고, 그 이야기가 지역 주민의 삶과 연결되도록 하는 데 있다.
“세계유산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매일 지나던 들길에 있고, 마을 가까이에 있는 돌 속에 있습니다.”
고창 고인돌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그 친근함에서 출발한다. 수천 년의 역사를 품었지만, 고인돌은 여전히 들판 한가운데 놓여 있다. 농부가 지나가고, 아이들이 뛰놀며, 여행객이 발걸음을 멈추는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세계유산이 특별한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일상과 함께 숨 쉬고 있다는 점은 고창만의 큰 자산이다.
해가 기울 무렵 고인돌 주변에 긴 그림자가 드리우면, 돌은 더욱 깊은 표정을 만든다. 이름도 남기지 못한 선사시대 사람들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함께 움직였던 손과 발, 땀과 숨결은 돌의 형태로 남아 있다. 말없는 돌은 오랜 시간 침묵해 왔지만, 그 침묵은 결코 비어 있지 않다.
고창 고인돌은 그렇게 우리에게 조용히 말하는 듯하다. 돌 앞에서 잠시 멈추는 순간, 우리는 아주 먼 과거의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동시에 지역이 지켜야 할 미래의 가치를 생각하게 된다. 고창의 들녘에 놓인 고인돌은 오래된 무덤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고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가장 단단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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