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권이 긴 침체의 터널에서 빠져나오면서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과 고금리 장기화로 흔들렸던 업권이 1분기 실적 반등을 계기로 분위기 전환을 모색하는 가운데 상위사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포트폴리오 확장이나 개선에 나서고 있다.
OK금융그룹은 손해보험사 인수를 통해 저축은행 중심에서 벗어나 외연 확장을 노리고 있다. 페퍼저축은행은 13년 만의 최고경영자(CEO) 교체와 배구단 매각으로 비용 구조를 손보고 있다. 웰컴저축은행은 오너 2세를 CEO로 전진 배치하며 디지털·AI 중심의 새 성장 전략을 시험대에 올렸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OK금융은 예별손해보험 인수전에 뛰어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예별손보는 옛 MG손해보험의 부실을 정리하기 위해 예금보험공사가 세운 가교보험사다.
OK금융이 예별손보 인수전에 참여할 경우 저축은행 계열 금융그룹이 손해보험사 인수에 도전하는 첫 사례가 된다. 예별손보가 우량 매물은 아니지만 OK금융 입장에서는 손보사 라이센스를 확보하면 대출 중심 수익 구조에서 탈피해 보험, 캐피탈, 부실채권 투자까지 아우르는 종합금융그룹으로 외연을 넓힐 수 있다. OK금융은 OK저축은행, OK캐피탈, OK에프앤아이 등을 보유하고 있지만 주력은 여전히 저축은행이다.
OK금융은 이미 지방 금융지주 지분 투자로 보폭을 넓혀왔다. iM금융지주 지분 9.99%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JB금융지주 9.03%, BNK금융지주 지분 5.20%도 갖고 있다. 예별손보 인수까지 성사될 경우 저축은행업의 성장 한계를 넘기 위한 사업 다각화 전략이 한층 뚜렷해진다.
◆재무 개선 페퍼…지배구조 변화 웰컴
페퍼저축은행은 경영효율화에 방점을 찍었다. 페퍼저축은행은 장매튜 전 대표 후임으로 데이비드 유 드레이크 대표를 선임했다. 장 전 대표는 2013년 취임 이후 약 13년간 회사를 이끌었지만 경영 환경 변화와 조직 쇄신 필요성 속에 물러났다.
새 경영진 출범과 함께 재무개선 작업도 한창이다. 페퍼저축은행은 프로여자배구단 'AI페퍼스' 운영권을 인터넷 플랫폼 기업 SOOP에 매각키로 했다. 스포츠단 운영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왔지만, 최근 실적 부진이 누적되면서 비핵심 자산을 정리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이다.
페퍼저축은행은 지난해 55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건전성 지표는 일부 개선됐다. 부실채권을 뜻하는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지난해 말 10.6%로 전년 대비 3.58%p 낮아졌다. 그러나 적기시정조치 유예와 중간배당 논란을 거친 만큼 새 경영진은 수익성 회복과 자산건전성 개선을 동시에 증명해야 한다.
웰컴저축은행은 9년만에 지배구조 변화를 꾀하면서 안착을 꾀하고 있다. 웰컴저축은행은 올해 3월 말 손대희·박종성 각자대표 체제로 전환했다. 손 대표는 손종주 웰컴금융그룹 회장의 장남으로, 그룹 핵심 계열사인 웰컴저축은행 경영 전면에 나섰다.
웰컴저축은행의 올해 1분기 당기순이익은 452억원으로 전년 동기 130억원 대비 247.7% 증가했다. 지난해 연간 순이익이 63억원에 그쳤던 점을 감안하면 출발은 나쁘지 않다. 다만 이자수익은 1304억원으로 전년 동기 1358억원보다 줄었다. 대출금이자가 1240억원에서 1175억원으로 감소한 영향이다.
실적 개선을 이끈 것은 비용 절감이다. 1분기 이자비용은 340억원으로 전년 동기 424억원 대비 19.8% 감소했다. 정기예금이자는 326억원에서 234억원으로 28.2% 줄었다. 대손상각비도 지난해 1분기 520억원에서 올해 1분기 180억원으로 65.4% 감소했다. 지난해 4분기 대규모 대손충당금을 쌓은 뒤 비용 부담이 낮아진 효과가 반영됐다.
손 대표는 AI와 데이터 기반 신사업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다만 디지털 전환이 여·수신 등 본업 성장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1분기 실적은 비용 절감 효과가 컸던 만큼, 새 경영진의 성적표는 2분기 이후 본격적으로 드러날 전망이다.
◆순익 658% 뛰었지만…정상화는 아직 진행형
저축은행권의 1분기 실적 반등은 분명한 변화다. PF 부실 정리와 충당금 부담 완화, 유가증권 운용 성과가 맞물리며 지난해와는 다른 숫자가 나왔다. 한국투자저축은행은 1분기 980억원의 순이익을 냈고, 웰컴저축은행도 452억원으로 큰 폭의 개선세를 보였다.
그러나 실적의 질을 따져보면 업권 정상화가 완성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상당수 저축은행은 본업인 예대마진보다 유가증권 운용과 비용 절감에 기대 실적을 끌어올렸다. 가계대출 성장이 제한된 가운데 이자수익은 줄거나 정체됐고, 순이익 개선 폭은 비이자수익과 대손비용 감소에 좌우됐다.
상위사 쏠림도 부담이다. 상위 4개사가 전체 순이익의 약 72%를 차지한 것은 대형사와 중소형사 간 체력 차이가 더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대형사는 운용자산, 자금조달력, 리스크 관리 역량을 바탕으로 빠르게 회복할 수 있지만, 중소형사는 부실채권 정리와 신규 영업 회복이 더딜 수 있다.
업권 재편도 이 같은 양극화 흐름 속에서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자본 여력이 있는 금융그룹은 OK금융처럼 보험업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히려 할 수 있다. 반면 부실과 비용 부담이 큰 저축은행은 페퍼저축은행처럼 비핵심 자산 매각, 인력·조직 재편, 경영진 교체 등을 통해 생존 기반부터 다져야 한다.
저축은행권은 그동안 PF 부실과 연체율 상승, 조달비용 부담으로 수익성이 크게 흔들렸다. 1분기 순이익이 급증했지만, 이는 낮은 기저와 비용 감소의 영향이 함께 작용한 결과다. 앞으로는 이자수익 회복, 부실채권 감축, 대출 포트폴리오 재정비가 실적의 지속성을 가를 변수다.
금융권 관계자는 "저축은행권이 숫자상으로는 반등했지만 업권 전체의 정상화로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앞으로는 PF 부실을 얼마나 털어내고 본업 수익성을 되살리느냐에 따라 회사별 격차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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