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 잘 나가도 주가는 제자리…‘중복상장’이 만든 지주사 저평가
“메리츠금융·알파벳·히타치 사례 참고해야”…기업·투자자 공생 필요
올들어 코스피 지수가 크게 오른 가운데 지주사 저평가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4월 1일 오전 급등한 코스피 지수 모습.<뉴시스>
정부가 저PBR 기업에 칼을 빼 들었다. 저평가 상장 기업이 국내 증시를 끌어내리고 있어서다. 이들은 어째서 시장에서 낮은 평가를 받게 되었을까. 그 뒤에는 시장의 불신이 있다. <인사이트코리아>는 저평가 기업을 크게 넷으로 분류했다. △좋은 자회사가 있어도 구조적으로 할인을 받는 지주사 △이익은 나지만 규제와 자본 제약에 묶인 금융·공기업 △자산은 많지만 효율이 낮은 기업 △불황기 기준으로 가격이 매겨지는 경기민감 기업이 그것이다. 각 유형별 핵심적 문제와 저평가 탈피를 위해 개선할 점을 총 4편에 걸쳐 분석한다.
SK하이닉스가 잘 나가도 SK는 덜 오르고, LG전자와 LG화학이 반등해도 LG의 주가는 늘 한 박자 늦다. 한국 증시에서 지주사는 ‘좋은 자산을 거느린 회사’이긴 하지만, 동시에 ‘그래도 할인해야 하는 회사’로 취급된다.
지주사 저평가는 단순한 시장 오해가 아니라 자회사 가치가 일반주주 가치로 전환되는 과정에 대한 구조적 불신에서 출발한다. 실제 국내 대표 지주사들은 우량 자회사를 다수 보유하고 있음에도 장부가치보다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3월 27일 종가 기준으로 시가총액 1조원 이상이면서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 기업을 분석한 결과, 주요 지주사의 PBR은 롯데지주 0.39배, GS 0.44배, LG 0.48배, 오리온홀딩스 0.62배, SK 0.73배였다.
PBR 1배 미만이란 기업의 순자산 총액보다 시가총액이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LG처럼 핵심 계열사 경쟁력이 높은 기업이 0.5배에도 못 미치는 평가를 받는 것은 단순한 저평가를 넘어 구조적 문제로 해석된다. 자회사의 가치가 지주사 가격에 반영되지 않는 구조적 장벽이 존재하는 것이다.
자회사 잘 나가도 못 오른다…지주사 만성적 할인 구조는?
지주사 가치는 단순히 자회사들의 지분 가치의 합으로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상장 자회사 가치가 본체 주가에 100% 반영되지 않고, 비상장 자산은 더 보수적으로 평가되며, 순차입금과 자본배치 불확실성까지 겹치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는 지주사의 저평가 정도를 ‘순자산가치(NAV) 할인율’로 측정한다. NAV란 지주사가 보유한 상장·비상장 자회사 지분 가치에서 순차입금을 뺀 수치다. 지주사 주가가 이보다 낮게 거래될 때 그 차이를 할인율이라고 부른다. 지배구조 리스크, 주주환원 미흡, 자회사 가치 반영 부족 등은 할인율을 높이는 원인이 된다.
SK스퀘어·SK·LG·한화·CJ 등 국내 주요 지주사의 합산 NAV 할인율은 2021년 이후 확대돼 65%대까지 올랐다가 지난해 50% 수준으로 낮아진 상태다. 그야말로 반토막난 할인가격에 거래된다는 얘기다.
지난달 중순 기준 개별 기업의 NAV 할인율은 SK 58%, LG 45% 등이다. 과거보다 떨어졌다 하더라도 여전히 높다. 일본 등 선진국의 지주사 NAV 할인율은 10~20%에 불과하다.
SK스퀘어·SK·LG·한화·CJ 등 주요 지주회사 합산 NAV 할인율 및 시가총액 추이.<유안타증권 리포트, 자료=각사, 에프앤가이드, Quantiwise, 유안타증권 리서치센터>
할인율 높은 이유?…‘중복상장’ 특히 문제
국내 지주사 할인율이 높은 이유는 복합적이다. 그중에서도 현재 가장 큰 문제로 지적받는 것은 ‘중복상장’이다. 중복상장은 지주사와 핵심 자회사가 동시에 상장돼 있는 것을 뜻한다. 지주사와 자회사가 동시에 상장돼 있으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굳이 지주사를 선택할 이유가 줄고, 이는 주가 할인으로 이어진다.
국내는 해외에 비해 중복상장이 훨씬 많다. 이날 유안타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4년 시가총액 기준 한국 중복상장 비율은 18.4%로 일본(4.4%), 미국(2.0%), 대만(3.2%) 등에 비해 현저히 높다. 올해 2월 말 기준으로 국내 중복상장 기업 비중은 22.5%에 달한다. 코스피만 놓고 보면 중복상장 비중이 32.7%까지 올라간다.
이외에도 ▲비상장 자산의 불투명한 가치 평가 ▲자사주 보유 관행 등이 지주사 저평가 원인으로 꼽힌다. 지주사가 보유한 비상장 자회사나 부동산, 브랜드 등 가치는 정확한 측정이 어려워 주가 반영이 어렵다. 또 그간 지주사가 자사주를 대주주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활용해 주주가치를 훼손한 것도 할인에 영향을 줬다.
자사주 소각 확대만으로는 부족
최근 지주사에는 3차 상법 개정을 계기로 자사주 소각 바람이 불고 있다. 3차 상법 개정안은 신규 취득 자사주의 1년 내 소각과 기존 보유 자사주의 1년 6개월 내 소각을 규정했다. 이에 SK, 롯데지주 등도 자사주 소각을 발표했다. 이번 개정안 통과 후 보름 정도 기간에 자사주 소각을 발표한 기업은 48개, 규모는 약 7조원이다.
시장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SK는 자사주 소각 소식에 주가는 5% 넘게 급등했다. 하지만 이같은 상승을 재평가 시작으로 보기는 이르다. 지주사들의 PBR은 여전히 1배 미만에 머무르고 있다. 롯데지주의 경우 롯데케미칼·롯데쇼핑 등 주요 계열사의 업황 부진이 지속돼 자산 자체의 수익성에 대한 의구심도 여전히 남아 있다.
시장에서는 구조적 문제 해결 없이 단기적인 주주환원 정책만으로는 할인 해소가 어렵다고 보고 있다. 지주사가 좋은 자산을 보유한 것과 주주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지주사는 자회사 지원, 신규 투자 등 다양한 자본 배치 결정을 내릴 수 있어 투자자 입장에서는 자금 사용 방향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안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SK 자사주 소각 발표 후 보고서를 통해 “자회사 지분 매각을 통해 확보한 현금 사용처와 신규 투자 과실이 SK의 주주로 이어질지가 (앞으로의 주가 향방에)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즉 자회사를 통해 확보한 이익이 주주에게 이어진다는 신뢰가 있을 때 지주사 저평가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메리츠금융그룹의 지배구조.<KIND 밸류업 공시>
재평가 조건은 구조 변화와 신뢰 회복
전문가들은 지주사 재평가를 위해서는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중복상장 해소, 자회사 지분 구조 단순화, 자사주 소각 확대, 배당 정책 강화 등이 주요 조건으로 꼽힌다. 특히 중복상장을 해소하고 지배구조를 단순화한 메리츠금융의 주가 상승을 예시로 들며 이 같은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메리츠는 메리츠금융지주 밑에 증권·보험 등을 완전 자회사로 편입해 상장사를 지주 하나만 남겼다”며 “이를 통해 메리츠 내 어떤 비즈니스 유닛에서 실적이 발표돼도 지주 주가에 바로 반영되는 구조가 마련됐다. 한국식 지주사 할인을 해소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도 이러한 사례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예컨대 글로벌 검색엔진인 구글은 지주사인 알파벳 밑에 구글 등 모든 핵심 계열사를 자회사로 편입하고, 알파벳만 상장사로 두고 있다. 일본 종합 전자 기업인 히타치는 과거 20여개 상장 자회사를 거느렸으나, 이를 편입·매각해 1개만 남기는 선례를 남겼다.
김 교수는 “국내 지주사들의 중복상장 문제가 해소되는 데는 굉장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일본 사례처럼 장기적으론 가능한 시나리오”라며 “이제는 기업이 투자자와 함께 가야 하는 시대가 됐고, 한국 자본시장이 한 발짝 더 도약하려면 기업들도 투자자와의 공생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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