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 이수지 씨가 출연하는 유튜브 채널 ‘핫이슈지’의 한 콘텐트. 유튜브 핫이슈지 캡처
정치 비대화 사회의 결말은 검열의 일상화일까. 연예인의 말 한 토막이 사상 검증의 도마에 오르고, 한 래퍼에서 비롯한 논란은 여당의 사실상 음원 ‘사전 검열’ 법안 발의로까지 이어졌다. 온갖 곳에 정치적 잣대를 대는 모습이다.
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일 음악산업진흥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음원 유통업자가 음원 공개 전에 청소년 유해 여부를 자체 검사하도록 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유통업자가 유해하다고 판단할 경우, 음원 제작자가 청소년인 경우 음원 유통을 금지해야 한다. 제작자가 성인이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될 수 있다는 점을 고지해야 한다.
음악계는 1996년 사라진 음반 사전심의제를 사실상 부활시킬 법안으로 보고 있다. 래퍼 이센스는 지난 11일 소셜미디어에 “검열을 부활시키면 안 된다. 기준을 누가 정하고 누가 결정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문화연대 등 7개 문화 단체는 13일 “대중문화 창작에 대한 사전 검열의 제도화”라는 비판 논평을 냈다. 음악 유튜버 이현파씨는 16일 “김 의원 법안 기준이라면 미국 팝스타 빌리 아일리시가 10대 시절 자살 충동 경험을 노래한 ‘에브리씽 아이 원티드(Everything I Wanted)’도 유통 금지를 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 총회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의원 법안은 정치적 논란에서 출발했다. 김 의원은 법안을 발의하며 “지난 5월 래퍼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욕하는 표현을 담은 공연을 개최하려다 공연장 측의 대관 거부로 취소된 바 있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을 모욕하는 가사로 논란이 됐던 래퍼 리치 이기가 노 전 대통령 서거일에 공연하려다 취소된 사건을 뜻한다. 노 전 대통령 모욕 가사가 ‘유해 음원 사전 검사’ 법안으로 이어진 셈이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정치 과잉의 결과”라는 점을 짚었다. 김 교수는 “명예훼손 등 다른 법으로 충분히 제재가 가능한 데도 정치적 논란이 있는 사안과 관련해서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해서라도 원점부터 차단하려는 방식의 반헌법적 태도”라고 비판했다.
한국 사회의 정치 과잉 분위기는 개별 문화 콘텐트까지 ‘사상 검열’ 방식으로 압박하고 있다. 15일 코미디언 이수지가 출연하는 유튜브 채널 ‘핫이슈지’ 제작진은 “해당 영상으로 인해 불편함과 실망을 느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내용의 사과글을 올렸다. 지난 14일 이 채널에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공무원 김지영 씨의 철밥통 지키기’ 영상이 올라왔다. 이수지가 새내기 공무원 역할을 맡았는데,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연기를 하는 가운데 “재선거”를 외치는 집회 참가자들의 목소리가 등장했다. 이를 두고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를 악성 민원으로 묘사했다는 비판이 나오자, 결국 제작진이 사과하고 해당 부분을 지웠다.
그룹 리센느가 1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캐릭터 라이선싱 페어 2026 개막식에서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런 형태의 논란은 최근 더욱 잦아지는 모습이다. 리센느의 사투리 ‘무섭노’가 촉발한 ‘일베 논란’을 비롯해, 지난달엔 유튜버 ‘1분요리 뚝딱이형’이 밀키트 가격 인상을 설명하며 환율 상승을 언급하자 “정부 비판하느냐”는 비판이 쇄도하기도 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우리 사회가 정치적으로 양극화되면서 대립이 첨예하다보니 문화 콘텐트의 작은 표현도 일상적으로 보지 못하게 된 것”이라며 “가볍게 볼 유튜브 영상 속에서도 피아를 판단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에 이수지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리센느 논란 때는 표현의 자유를 말하던 사람들”이었다고 덧붙였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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