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로보틱스와 인공지능(AI)을 미래 성장의 핵심축으로 재확인하면서, 자동차 산업의 ‘생산 시스템’ 변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피지컬AI 혹은 휴머노이드를 현대차 생산라인에 본격적으로 투입한다는 전략을 분명히 한 것이다.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1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한 호텔에서 열린 '2026 세마포(Semafor) 월드 이코노미' 행사장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반면에 현대차 노조는 사전에 노사합의 없이는 단 한 대의 피지컬AI도 생산라인에 투입할 수 없다는 초강경론을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정의선 회장과 현대차 노조가 피지컬AI의 생산라인 투입을 두고 첨예한 입장 차이를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의선 회장은 12일(현지시간) 미국 온라인매체 세마포와의 인터뷰에서 "로보틱스와 피지컬 AI는 모빌리티를 넘어서는 현대차그룹의 진화에 핵심적인 요소"라며 "우리는 인간과 협업하는 로봇을 통해 이 비전을 실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올해 1월 CES에서 발표된 인간 중심 AI 로보틱스 전략을 기반으로 오는 2028년까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생산 공정에 투입할 것이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연간 최대 3만대의 아틀라스를 생산할 예정이다.
정 회장은 이와 관련, "이러한 인간 중심 접근은 고객을 위한 것"이라며 "고객의 요구가 변화함에 따라 로보틱스와 AI는 제조 혁신과 최고 품질 제품 제공에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혁신을 실제 적용과 연결함으로써 현대차그룹은 인간과 로봇, AI가 협력해 생산성과 품질을 높이는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휴머노이드 아틀라스의 생산공정 투입을 ‘인간 중심 접근’으로 규정하고, 이는 고객을 위한 혁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대목이 주목된다. 정 회장 논리대로라면 아틀라스 투입에 대한 현대차 노조의 방어적 기류는 고객을 위한 혁신을 가로막는 요소에 불과하다.
정 회장은 1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개막해 17일까지 열리는 '2026 세마포(Semafor) 월드 이코노미'에 참석 중이다. 세마포 월드 이코노미는 미국 디지털 뉴스 플랫폼 세마포가 여는 행사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 선정 세계 500대 기업의 주요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각국 리더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경제 콘퍼런스다.
정 회장은 행사 주최측인 세마포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휴머노이드 투입 계획을 확인하고 그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정 회장이 인터뷰에서 핵심 시장인 미국으로의 투자 확대가 그룹 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확인한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에게 미국은 장기적인 회복력과 지속 가능한 성장의 핵심 기반"이라며 "2028년까지 총 260억 달러(38조원)를 투자해 장기 성장 기반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40여년전 미국에 진출한 이후 205억달러를 투자해왔다"며 "HMGMA(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의 소프트웨어 기반 제조 혁신 등을 통해 이러한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현대차가 40여년 동안 진행해온 대미투자보다 더 큰 금액을 2년 이내에 쏟아붓겠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따라서 현대차가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 진화하면서 생산기지의 중심축을 미국으로 이전할 가능성도 관측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인하 조건으로 미국내 생산확대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차의 미국 생산 기반 강화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가질 수 있다.
첫째, 트럼프의 관세 폭탄을 효과적으로 회피할 수 있다. 미국에서 생산된 현대차는 미국 자동차 메이커와의 가격 경쟁력 면에서 불이익을 최소화할 수 있다.
둘째, 생산시설에 휴머노이드를 투입하는 혁신의 실천 면에서 미국 제조공장이 국내 공장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미국 제조공장에는 노조가 없다. 휴머노이드 투입을 전제로 한 새 공장을 건설하거나, 기존 공장에 휴머노이드를 투입하는 데 조직적인 저항이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국내 공장의 근로자들은 민주노총이라는 막강한 산별노조를 배경으로 갖고 있다. 정 회장의 구상대로 아틀라스를 생산라인에 투입하는 게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틀라스를 한 대라도 울산 공장에 투입하려고 해도 현대차 노조가 전면 파업을 추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정 회장이 최근 미국·이란 전쟁 등으로 심화하고 있는 지정학적 불확실성 대응에 대해 "고객, 규제, 공급망이 지역별로 나뉘는 등 글로벌 시장은 점점 분절화됐다"면서 "(이를 극복하는 방안은) 글로벌 확장과 지역별 민첩성을 결합하는 것이다. 각 지역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구축함으로써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정 회장은 한국 생산기지, 미국 HMGMA, 미국 내 하이브리드 생산 확대, 인도 및 아시아태평양 지역 신규 생산 거점 등을 예로 제시했다.
한마디로 글로벌 확장과 현지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전략이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한국 생산기지의 비중을 줄여나가는 방향이다. 막강한 현대차 노조가 휴머노이드 투입을 저지할 경우, 국내 생산라인의 효율성과 가격경쟁력은 급격하게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생산기지는 미국이나 인도 및 아태지역 신규 생산 거점 대비 비교 우위를 완전히 상실함으로써 존립근거를 상실하게 되는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
현대차 노조의 휴머노이드 거부는 민주노총의 지원만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문명사적 대전환에 맞서려는 특정 노동자 계층의 집단이기주의가 성공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2028년까지 미국에 260억 달러를 투자하고,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생산 공정에 투입하겠다는 정 회장의 계획은 단순한 기술 투자 선언이 아니다. 현대차의 정체성을 바꾸겠다는 전략적 선언에 가깝다.
기존의 산업용 로봇을 넘어, 이동·판단·작업이 가능한 휴머노이드를 통해 생산라인 자체를 재설계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 자동화의 진화가 아니라, 인간 중심 생산 시스템을 AI 중심으로 전환하는 ‘생산 패러다임 교체’다. 정 회장이 강조한 ‘피지컬AI’는 결국 공장에서 인간 노동이 담당해 온 영역을 로봇으로 대체 가능한 구조로 재편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같은 전략은 정 회장의 독자노선이 아니다. 글로벌 경쟁 환경 변화와 맞물려 있다. 테슬라가 완전 자동화 공장 구축을 가속화하고, 중국 BYD가 저비용 대량 생산으로 시장을 잠식하는 상황에서 기존 방식으로는 경쟁이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여기에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이후 생산 거점의 ‘현지화 압박’까지 겹치면서, 현대차는 미국 중심의 AI 기반 스마트 제조 체제로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260억 달러 투자 계획 역시 단순한 시장 확대가 아니라, 생산·기술·데이터를 결합한 ‘AI 제조 인프라 구축’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는 휴머노이드 도입을 단순한 설비 투자로 보지 않는다. 휴머노이드 도입을 곧바로 고용 축소와 직결된 사안으로 규정한다. 사실 기존 자동차 생산라인은 숙련 노동자를 중심으로 운영되며, 이들이 노조 협상력의 기반을 형성해 왔다. 그러나 휴머노이드가 투입되면 생산직 인력의 역할은 축소되고, 공정 운영은 소수의 엔지니어와 데이터 기반 시스템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현대차 노조가 향유해온 고용 안정, 높은 임금 구조, 생산 통제력 등과 같은 권력이 일거에 흔들릴 수 있다. 아틀라스 투입이 본격화되면, 생산 중단을 통한 압박이라는 기존 파업 전략도 그 효과가 미약해질 전망이다. 현대차 노조 입장에서는 휴머노이드 도입이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조직의 생존 기반을 흔드는 문제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불구하고 “현대차 노조가 AI대전환의 시대에 걸맞는 혁신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다면 밝은 미래는 없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양준서
댓글
0